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고흥 팔영산 산행기

김창집 2012. 4. 30. 13:16

 

▲ 2012년 4월 28일(토) 오전 8시20분.

 

  쓸데없이 마음만 분주했던 몇 달. 작정하고 일상 탈출을 시도했다. 그런 사람은 나만이 아닌 듯, 함평 나비축제로, 불교 사찰 답사로, 고창 선운산으로. 대합실 안은 일행을 못 찾을 만큼 북적거렸다. 빈 2등실 칸에 먼저 들어가 버텼다. 승무원은 15명뿐이라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밀어붙이려 한다. 허나 선운산에 간다는 제주중앙고 22회 동창생들이 들어오면서 같이 쓰기로 해 머물 수 있었다. 지금은 50 중반 줄에 들어선 졸업생들. 아는 얼굴도 있고 모르는 얼굴도 있다. 내가 처음 교편을 잡았을 때, 고3 학생이어서 수업을 안했기에 서로 얼굴을 모르는 졸업생도 있는 것이다.

 

  한라산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생각처럼 날씨가 맑지 않아 희뿌연 안개로 산의 윤곽이 뚜렷하지 못하다. 수 차례 배타고 나올 때마다 별러 보지만 늘 같은 그림이다. 그런 대로 몇 컷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다 보니, 바깥에 술자리를 벌여놓은 팀이 몇 군데 보인다. 안에서 음식을 못 먹게 하기 때문에 아예 밖으로 나온 것이다. 바닥에 카펫을 깔아놓아서 청소가 힘들어서 그럴 것이나, 배타고 여행하는 재미는 반감된다.

 

 

  요 며칠은 이것저것 원고를 쓰노라 바빠서 오름도 얼마간 못 다녔으니, 찌뿌둥하고 감기 기운이 있어 몸도 무겁다. 저번 천관산에 갈 때처럼 술을 많이 마셨다가 산에 오르기 힘들까봐 부어주는 막걸리 몇 잔으로 그치고 배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이번 답사는 오름해설사 3기 행사인데, 전에 월출산 오를 때 같이 오르기로 계획 세웠다가 우천으로 월출산과 무등산을 올랐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기획한 것이다.

 

  11시 50분. 일행 15명은 완도에서 배에서 내려 전세 버스로 갈아탔다. 차량비는 많이 들지만(봉사료까지 이틀에 100만원) 자리를 넓게 차지할 수 있어 편하긴 하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기사분께 양해를 얻어 차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웠다. 완도는 물론 우리가 가는 길에서 보이는 산들은 벌써 초록으로 빛난다. 진달래는 이미 지고 산철쭉만 여기저기 보이고, 논밭에 자운영이 예쁘게 피었다.

 

 

  해남, 강진, 장흥을 거쳐 고흥반도(高興半島)로 들어선다. 파랗게 패기 시작한 보리가 논밭을 장식하고 있다. 전라남도 동남부에서 남해안으로 돌출한 반도인 고흥반도는 고흥군에 속하며 보성군에도 일부 소속된다. 고흥군 도화면에서 보성군 벌교읍까지 남북으로 약 95km 뻗쳐 있고, 우리가 가는 팔영산이 최고봉으로 609m이고, 그 외에 천등산(550m)과 운람산(487m) 등 500m 내외의 산이 여럿이다.

 

  드디어 도착한 팔영산 입구. 화장실에 먼저 들른 뒤 기념 단체 사진을 찍고 산행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성기리 능가사 - 흔들바위 - 제1봉~제8봉 - 정상을 거쳐 팔영산 자연휴양림으로 내리는 약 5시간 코스다.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은 1시 50분경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초입에 할머니들이 음나무 잎 같은 각종 나물과 농산물을 팔고 있다. 시간 때문에 능가사를 들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조금 아쉽다.

 

 

  능가사(楞伽寺)는 고흥군 점암면에 위치한 절로, 신라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말이 전하고 있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한때 팔영산 부근에 40여개의 암자를 거느려 호남 4대 사찰의 하나로 꼽혔으나, 정유재란 때 모두 소실되어 그 면모를 잃고 말았다. 그때까지는 보현사라 불렸는데, 조선 인조 때 중창하면서 능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능가사 대웅전은 보물 제1307호이고, 정문격인 사천왕문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4호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다. 능가사에는숙종 24년(1698년)에 주조 된 높이 1m, 무게 약 900kg의 범종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 헌병이 이 종을 헌병대로 옮겨 타종해보니 종이 울리지 않아 할 수 없이 다시 돌려보냈다는 일화가 있다. 오래된 사찰답게 부도가 많다.

 

 

  흰 산철쭉 꽃이 너무 고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몇 컷 챙긴 후 신록이 우거진 산길로 접어든다. 우리 일행 말고 몇 명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따라간다.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조그만 냇가를 따라 올라가다 애기나리를 발견하고 다시 몇 컷 찍는 동안에 어느덧 흔들바위다. 첫 봉우리인 유영봉까지는 약 800m로 되어 있다. 조금 쉬면서 사진을 찍은 다음 다시 출발이다.

 

  각시붓꽃과 구슬붕이가 간혹 보이고, 참꽃은 이미 졌는데, 높은 지대에 하나둘 남아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1봉인 유영봉(儒影峰)을 올랐다. 491m인데 선비의 그림자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것 같다. 바위산이라 절벽도 험하고 많다. 옛 코스를 택해 열심히 오르니, 다도해의 풍경이 다 드러난다. 화창한 날은 아니지만 이만하면 되지 않느냐 하면서 모두들 희희낙락이다.

 

 

  제일 위 그림처럼 높이 608.6m의 팔영산(八影山)은 8개의 봉우리가 남북 일직선으로 솟아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중국의 위왕이 세수를 하다가 물그릇에 비친 8개의 봉우리에 감탄하여 신하들에게 찾게 하였으나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어 우리나라까지 오게 되었는데, 왕이 몸소 이 산을 찾아와 제를 올리고 팔영산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산은 600m급밖에 안되지만 산세가 험준하고 암벽이 변화무쌍하여 암벽을 무서워하지 않은 사람들은 스릴을 만끽하며 오르내릴 수 있다. 바위에 박아 놓은 쇠줄과 고리가 너무 심하다고 할 정도로 깊숙이 박혔다. 사다리도 타고 암벽을 기어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다도해 풍경과 막 돋아난 신록이 눈을 즐겁게 한다. 맑은 날에는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하나 오염으로 안개가 잦아 그렇게 볼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2봉은 성주봉(聖主峰)으로 538m다. 팔봉을 지켜주는 부처 같은 성인바위인 것이다. 곳곳에 남아 있는 산철쭉과 참꽃, 그리고 올벚나무 꽃을 보며 웅장한 산을 오르내리는 맛은 오름을 오르내리는 것에 비해 스릴이 있어 좋고, 내 다리를 이용하니, 그리 힘이 들지도 않는다. 차례로 3봉인 생황봉(笙簧峰, 564m)은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 모양을 닮았다는 것이고, 4봉은 사자봉(獅子峰, 578m) 사자같은 위용을, 5봉인 오로봉(五老峰, 579m)은 다섯의 늙은 신선이 놀았다는 곳이다. 6봉인 두류봉(頭流峰, 596m)은 통천문이 있어 사방으로 통한다는 뜻이며, 7봉은 칠성봉(七星峰, 598m)으로 북두칠성처럼 벌려 있는 봉들을 이름이다.

 

  7봉에서 짐을 덜자고 드디어 회장이 무겁게 지고 다니던 막걸리를 풀어 한 잔씩 나누었다. 아직도 시원한 것이 땀 흘리고 난 등산객들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제까지 마신 막걸리 중에서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맛있다. 기운을 차리고 8봉인 적취봉(積翠峰, 591m)에 올랐다. 초록의 겹겹이 쌓인 산봉우리를 표현한 말이리라. 8봉을 내려와 깃대봉이라고도 부르는 608m의 팔영봉으로 간다.

 

 

  수많은 안테나가 세워진 정상 봉우리를 안타깝게 생각하며 기념촬영을 끝내고, 다시 돌아와 팔영산 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간다. 매우 가파른 비탈을 내려 야영장으로 내려가는데, 야영장에 이르러 피나물 꽃이 곳곳에 피어 있다. 아쉬운 것은 저녁이 다 되어 꽃을 오무려버린 것. 더 내려오다 만난 민눈양지꽃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곳곳에 심어놓은 금낭화가 한껏 피어 있다는 것이다.

 

  병꽃은 아직 일러 제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저러나 꽃에 취해 시간을 지체하고 나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 내려와 차에 올랐다. 7시반이 넘어 있는 것이 근 6시간 산행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웠던 여덟 봉우리가 눈에 삼삼해, 누구든 입이 벌어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사량도 지리망산 때는 비가 조금씩 내려 주변 풍경이 아쉬웠지만, 오늘은 좋은 날씨로 눈의 호사를 누린 산행이었다.    

 

 

♧ 바위산 - 김영호

 

바람소리 물소리

먹빛으로 한 획을 친 山

비온 뒤의 깔끔은

그대로 아버지의 삶

그 뒷모습이다.

 

있어도 없음

없어도 있음의 푸른 말씀.

 

굳게 닫힌 큰 입

바다만한 기침이 발등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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