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미국자리공은 이 땅에서

김창집 2012. 6. 23. 00:21

 

 아무도 허락하지 않았을 빈터에

미국자리공이 자리를 잡고

무성하게 퍼져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것이 먼 이국땅까지 와서

우리 땅을 지켜주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구나.’ 하고

어떤 사람은 또

‘저것이 무슨 때문에 이곳에 와서

주인 행세를 하는 거야.’ 한다.

 

모두 생각하기 나름이다.

 

 

♧ 미국자리공 - 강세화

 

마침내 스스로 소멸하고 말거야

산성비를 빨아먹고 싱싱한 잎줄기는

용쓰다가 제풀에 독을 품고 쓰러져서

몽혼 상태에 빠지며 깊은 잠에 들 듯

 

마침내 우리도 그리 되고 말거야

슬그머니 건너와서 독뿌리를 내릴 때

우리가 그르친 일을 이제사 따져본들

머리통이 사막으로 변해버린 듯   

 

 

♧ 미국자리공 - 전정순

 

햄버거만한 이파리

과속으로 질주하는 줄기

일년초 미국자리공이 오년생 굴참나무를 가볍게 추월하네

풀은 나무 아래 자라야 한다는

근린공원의 불문율을 지키지 못해

미국자리공, 독초라 불리우네

 

자랄수록 줄기가 붉어지네

공원 가슴팍에 한 점 주홍글씨가 새겨지네

딤즈데일 목사의 설교가 푸른 조경으로 이어질 때

붉은 불륜 한 포기, 더욱 싱싱해지네

독초란 아무 데도 기대지 않는 것

거름 없이 버팀목 없이 군락도 없이

미국자리공 홀로 무성해지네

 

구청 직원들의 전기톱날과

인부들 푸른 낫은 피했지만

<토양산성화의 표지, 미국자리공>이 방영되자

누군가 장신의 한 허리를 분질러놓았네

독초란 또 쉽사리 눕지 않는 것

꺽인 줄기가 시드는 동안에도

거듭 남은 곁가지들을 밀어 올렸네

 

뿌리 속에 단단한 낯가림이 맺히고

환약 같은 열매가 익어가네

미국자리공

다친 짐승 한 마리가 웅크린 채 상처를 핥고 있네

산성의 피가 천천히 스며 나와

벌겋게 공원 흙을 부식시키네

 

♧ 망해사(望海寺)에서 처용가를 - 김태수

 

울산 망해사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 바람 몇 바다 쪽에서 와서는

잠시 머물다 옹아리 한 타래 풀어놓고는

대웅전을 한바퀴 돌아 나간다 무심코

푸른 솔바람과 몸 섞고 바다로 간다

 

아직도 동해 바다를 희망이라고 했는가

보지 않아도 안다 적조와 폐유 뒤엉켜 누운 바다

검붉게 시든 돌미역과 이름 모를 바다풀을

아직도 닦아내고 있을 늙은 어부의

굵은 눈 주름을 타고 눈물이 흐를 것이다

 

그 옛날 아련했을 안개와 구름은 어디 갔을까

처용이여 그대의 땅은 온통 공장 굴뚝만 무성하고

매운 연기 지천에 가득하다 병든 들판은 불임 중

저녁답 소슬바람에도 눈을 감는다

미국자리공의 붉은 대궁에 황혼이 내린다

 

그래, 서울 밝은 달에 밤새도록 노닐다가

돌아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가

본래 내 것이지만은 빼앗긴 것은 어찌할거나

 

망해사에서는 끝끝내 바다를 볼 수 없다.   

 

 

♧ 다시 또 달빛에 대하여 - 문효치

 

양수리 어디께 와서

달빛 한 마리 건져 올렸다.

 

아가미에 슨

검은 녹을 닦아내고

갈대들, 더운 입김으로

꽃을 만들어 올렸지만

피어오르는 것은

연기에 그슬린 검덩이었다.

 

저만치 언덕 기슭에

미국자리공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 매천 황현 - 백우선

   ―세상에 글 아는 사람노릇어렵기만 하구나<황현 ‘절명시’ 중>

 

그의 광양 영모재永慕齋는 마을 지나 콘크리트 길 끝, 외딴 산기슭에 있다

미국자리공은 벌건 줄기로, 조락조락 달린 열매로 뜰 한 귀퉁이를 다 차지하고 있다

방문을 열자 벌들의 시체가 즐비하다, 봉기蜂起 대신 자결을 택한 것일까

방바닥에는 아편 찌꺼기 같은 것들도 흩어져 있다

오른쪽 방에는 근시 안경을 낀 눈길이 오른쪽으로 꺾어졌다는 상반신 모습이 있고

그 영정 아래 부분에는 일본인의 주소와 성명이 써져 있다

이렇게 - ‘日本 山梨縣 甲府市 鹽部 3-1-2, 共田一郞’

지난 번 참배 때의 문간방 감자는 다 나눠 먹었는지 하나도 없고

농약 분무기도 병해충 구제에 쉴 틈이 없는지 보이지 않는다

재 앞 잔디마당은 반이나 밭이 되어 김장거리 파종을 기다리고

그 옆 고추, 콩, 옥수수, 참깨, 고구마도 잘 자라고 있다

바로 위 묘와 석비는 범부의 그것, 비문은 ‘愛國志士黃玹之墓’애국지사황현지묘   

    

 

♧ 동강을 보며 - 김종익

 

통증을 호소하는

등 굽은 물고기

 

개울에 가재 도룡뇽

사라진지 오래다

 

강둑에 공해에도끄떡 없는

미국자리공 무성한데

 

마음은 관절염 환자

처럼

쑤시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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