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북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이 녀석들이 보고 싶어
별도봉엘 들렀더니
한 때 풀을 깎으며 없어졌는지
뭉툭하게 꼬리 짤린 놈들이 많다.
이 녀석들은 나에게
두 가지 의문을 던진다.
까치수염을 왜 까치수영이라고도 부르는지?
까치수영과 큰까치수영은 어떻게 구별하는지?
까치수염은 앵초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50~100cm이며 몸 전체에 잔털이 있다.
원줄기는 원기둥 모양으로 끝 부분에 붉은빛이 돌고
가지가 약간 갈라지거나 없다. 잎은 어긋나며,
6~8월에 흰 꽃이 원줄기 끝에 핀다.
어린잎은 식용하는데,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까치수영이라고도 한다.
♧ 까치수영 - 김윤현
뿌리 하나만 남겨둔 채 모두 버리고
겨울을 거뜬히 견디는
까치수영의 인내를 배우고 싶다
하얀 이를 소복이 드러내고 해맑게 웃는
까치수영의 명랑을 간직하고 싶다
꽃을 피우려는 꿈 이외에는 욕심이 없고
다가서는 이들에게는 향기를 베푸는
까치수영의 사랑을 닮고 싶다
벌이 날아와 꿀을 물고가도 탓하지 않고
바람이 불어와도 얼굴 찡그리지 않는
까치수영의 여유를 가지고 싶다
잔돌이 박혀있는 길가나 물기 없는 비탈에서도
성공을 바라기보다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가는 까치수영의 의지를 따르고 싶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줄기를 뻗으려는 마음도 꽃을 피우려던 마음도
또다시 다 비우는 까치수영의 겸허와 함께
♧ 사랑은 까치발로 다가 온다 - 우공 이문조
사랑은 몰래 몰래
그렇게 그렇게
까치발로 다가 온다
꿈나라 헤매이는
고운 그님 잠 깨울세라
조심 조심
까치발로 소리 없이
새하얀 세모시에
쪽빛 물이 들듯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어
어느새 내 마음을
핑크빛으로 물들인다.
♧ 헛나이 - 권오범
진종일 식물도감 뒤적이며
생면부지 얼굴들과 상봉하다 보니
입때껏 멍텅구리가 시 쓴답시고
깝죽거린 것 같아 남세스럽다
며느리밑씻개 미꾸리낚시 꼭두서니
중대가리나무 광릉요강 소경불알 털개불알꽃
사위질빵 까치수염 장구채 노루오줌
비짜루가 풀이름인줄도 몰랐네
지천에 널브러진
자연의 밑절미도 분간 못하면서
백일몽에 취해 괴발개발 해놓고
동천지감귀신인척 한 숙맥
석수장이 눈깜작이부터 배운다는데
알량한 게꽁지로 생판에 뛰어든
철들긴 다 틀린 붕어사탕
어느 세월에 걱정가마리 면할는지
♧ 무등산 산행 그리고 비 - 김영천
평등보다 더 낮다는
무등의 허리께로
빼아시 푸러렁
빼아시 푸러렁
우중에 희롱하는 새소리인가
규봉암 해우소
正因 스님 도닦는 소리인가
유심하여 돌아보니
남겨 둔 세상조차 보오얗게
이마 벗으며 다가서네
남강 빛 산수국도 우루루 피어나고
까치수염
하늘말나리
다투어 맞는데
젖은 내 구두 속에서
오호라, 퉁퉁 분 그리움이
훌쩍 가벼워져서는
한 자락 운무로 피어나려는가
쏜살같이 지나가는 세상을
간섭하며
빼아시 푸러렁
빼아시 푸러렁
♧ 친구의 수염 - 강남주
선장이라 부르지 말고 어부라고 부르라던
친구의 해풍에 바랜 수염을 생각한다.
파도밭을 뒹굴며 머리를 손으로 빗어 올리며
대구 명태와 뒤엉켜 보낸 그의 청년시절을 생각한다.
파도가 뱃전을 질금질금 넘도록 우왁스레 고기를 싣던
그의 북태평양같은 뱃장을 생각한다.
그물에 송장이 올라왔던 때를 말하며
사람 값이 물고기 값보다 싸서야 되겠냐던 그의 말을 생각한다.
충무동 어판장에 배를 들이댄 뒤는 남포동에서 밤새껏 퍼마시던
그의 주량을 생각한다.
로프 줄을 걷어 올려 긴 뱃고동을 끌고 남부민동 방파제를 넘어가던
그의 호기를 다시 생각한다.
바다에서 해가 뜨고 바다에서 달이 지니까
바다가 지구의 중심이라고 말하던 그를 생각한다.
이 세상 제일가는 예술이 바다에서 고기잡는 일이라며
예술가가 되어 가던 그를 생각한다.
선장이라고 부르지 말고 어부라고 부르라던
친구의 해풍에 바랜 탈색된 수염을 다시 생각한다.
♧ 검은 수염 아저씨 - 정민호
내 어릴 적 큰장 날에 보이던
검은 수염 아저씨가 보고 싶다.
싸전이나 어물전 입구에 멍석을 펴고
6전 소설이나 千字文을 팔던
검은 수염 무성한 책장사 아저씨는
지금 무얼 하는지 알고 싶다.
할머니나 아이들을 장판에 모아 놓고
장한몽, 유충렬전, 조웅전, 옥루몽을
얼음에 박 밀 듯 읽어 주더니
세상의 지혜를 토정비결에 묻어두고
점잖은 목소리로 점을 쳐주던 아저씨는
세월의 그늘 속에 묻혀 사라져 갔다.
섣달 그믐 대목장날에는
초조한 목청이 더욱 높아 가더니
가난하고 마음씨 좋은 책장사 아저씨는
그의 검은 무명베 두루마기 자락에 싸여
불어오는 바람에 수염 펄럭이더니.
♧ 수염을 깎으며 - 강상윤
털이 뽀얀 아기 오리 한 마리가
양볼 구석에서 턱을 거쳐 인중까지 부드럽게 콕콕
어린 오리 한 마리 어미 오리가 되어 괙괙거리며
얼굴 여기저기 걸어 다닌다 엉덩이 뒤뚱거리며
오리 한 마리가 오리 다섯 마리 열 마리 스무 마리가 되어
얼굴 물가로 헤엄쳐 나간다 흰색 갈색 청둥색 오리가 되어
자맥질을 한다 보리새우가 걸리고 지난 태풍에 떠밀려 온
은빛 멸치도 걸린다
오랜만에 수염을 깎으니
얼굴 가득
눈이며 코며 귀며 입에까지
수십 수백 마리 오리를 풀어 놓은 느낌이다
이제 새봄이 온다고 오리떼들 왈왈
이사할 채비를 차리는 무렵,
오리떼보다도 먼저
하늘을 날고 있는 얼굴,
한 마리 오리가 되어 나에게 묻는
너는 도대체 누구인가 꽥꽥.
♧ 수염 깎기 - 박덕중
불모지의 언덕
씨도 뿌리지 않은 자리
검은 잡초
무성히 자라는
거꾸로 사는 生法을
쓸어 눕힌다
너로 인한
세월 먹은 내 몰골
가면을 벗기 위해
털털한 지난 시간 같은
너를
즐거운 마음으로 싹싹 깎고 나면
새로워지는
하루
뒤로 물러가는
세월
그 자리
환한 젊음이 와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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