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라 그런진 몰라도
바람의 온도가 꽤 내려갔다.
밖에 세워놓은 차를 탔을 때
데워진 자리가 꽤나 뜨거웠는데도
문을 열고 달리니 시원하다.
일요일 한낮, 원고 때문에
오름에도 가지 못하고
결혼식 피로연에 다녀와 글을 올린다.
그곳에서 만난 홍성운 시인이
생각나 가을 시편을 골랐다.
♧ 석류
오래 생각을 담은
탱탱한 말풍선이다
불경기 늦가을에 떨이 된 석류 한 알
동박새
속말을 털 듯
층층이 시어를 쏟네
사랑도 그런 거지
너와 나 당긴 줄에
봄, 여름, 가을의 맘, 꼭지꼭지 앉히다 보면
끝물은 고추잠자리
네 속눈썹 파르르 떤다
♧ 쑥부쟁이
철없네요
늦가을
따라비오름 햇살에
삼삼오오
무릎치마 입은
우리 동네 계집애들
모르게
향수도 뿌렸는지
건듯
꽃향기 나네요
♧ 담쟁이
위험해요
맨손으로
벽을
타오르는 건
믿음이지요
한 가닥 자일에
목숨을
내맡기는 건
기어이
쏟아 붓네요
서늘한 별빛 몇 섬
♧ 귀뚜라미 한 마리가 붙잡은 새벽하늘
마른 울음으로 가을을 끌고 온다
떡갈나무 숲바람이 툭툭 치는 곁가지 끝
밤 새워 실톱 하나로 내 꿈을 가르더니
어디서 음파 띄워 내가 지금 감지하나
귀뚜라미 한 마리가 붙잡은 새벽하늘
늦별이 불빛 거두며 낮은 대로 살자 한다.
♧ 종달리 저녁 바닷가
일곱물에는 종달리 앞바다가 환하다
여름 해 놓아주어 느슨한 수평선이
일몰의 낮은 휘장을
백사벌로 끌고 온다
썰물 앞에 서면 생각도 설핏해라
물결이 키워 낸 처녀지 모래톱을
화전에 첫 삽을 뜨듯
발기는 떨림으로
그렇다, 조개는 은밀함에 사는 거야
새조개 맛조개 참조개, 순이 걔 보조개
요 며칠 물 잦는 소리
맘껏 벙그러진
섬에도 땅 끝은 있어 팻말 같은 지미봉이
한 뼘 노을 자락에 얼굴을 붉히는데
빙긋이 초저녁달이
어깨 짚어 떠오르는데
♧ 가을 밤나무 숲
생밤 쩍쩍 벌어지는 밤나무 숲에 서면
집단 무의식의 환장스런 오르가슴
배란기 야생 밤꽃이 환장케 부풀더니
수액 빨던 잎맥이며 번들거리던 이파리도
가을새 한 마리가 끌고 온 바람 타고
불혹에 새치를 뽑듯 초록물을 빼고 있다
♧ 나비 8
그냥 앉아본다
상수리나무 이파리 끝
눈먼 생각으로
풋잠이나 꿈꿀 때는
예민한 제주 바람이
놓아주질 않는다
섬바람 타는 법은
살다보면 체득되네
이 땅의 들꽃들이
목숨 하나 꼭 붙잡듯
기류가
역류한대도
내 뜻대로 나는 거다
♧ 이슬
풀잎
팽팽히
시위 트는 아침 이슬
건듯
바람 불어
장력(張力)이
끊기면
지상은
울음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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