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홍성운의 시와 흰꽃나도사프란

김창집 2012. 9. 2. 15:14

 

9월이라 그런진 몰라도

바람의 온도가 꽤 내려갔다.

 

밖에 세워놓은 차를 탔을 때

데워진 자리가 꽤나 뜨거웠는데도

문을 열고 달리니 시원하다.

 

일요일 한낮, 원고 때문에

오름에도 가지 못하고

결혼식 피로연에 다녀와 글을 올린다.

 

그곳에서 만난 홍성운 시인이

생각나 가을 시편을 골랐다.   

 

 

♧ 석류

 

오래 생각을 담은

탱탱한 말풍선이다

 

불경기 늦가을에 떨이 된 석류 한 알

 

동박새

속말을 털 듯

층층이 시어를 쏟네

 

사랑도 그런 거지

너와 나 당긴 줄에

 

봄, 여름, 가을의 맘, 꼭지꼭지 앉히다 보면

 

끝물은 고추잠자리

네 속눈썹 파르르 떤다

 

  

 

♧ 쑥부쟁이

 

철없네요

늦가을

따라비오름 햇살에

삼삼오오

무릎치마 입은

우리 동네 계집애들

모르게

향수도 뿌렸는지

건듯

꽃향기 나네요  

 

 

♧ 담쟁이

 

위험해요

맨손으로

벽을

타오르는 건

믿음이지요

한 가닥 자일에

목숨을

내맡기는 건

기어이

쏟아 붓네요

서늘한 별빛 몇 섬   

 

 

♧ 귀뚜라미 한 마리가 붙잡은 새벽하늘

 

마른 울음으로 가을을 끌고 온다

 

떡갈나무 숲바람이 툭툭 치는 곁가지 끝

 

밤 새워 실톱 하나로 내 꿈을 가르더니

 

어디서 음파 띄워 내가 지금 감지하나

 

귀뚜라미 한 마리가 붙잡은 새벽하늘

 

늦별이 불빛 거두며 낮은 대로 살자 한다.   

 

 

♧ 종달리 저녁 바닷가

 

일곱물에는 종달리 앞바다가 환하다

여름 해 놓아주어 느슨한 수평선이

일몰의 낮은 휘장을

백사벌로 끌고 온다

 

썰물 앞에 서면 생각도 설핏해라

물결이 키워 낸 처녀지 모래톱을

화전에 첫 삽을 뜨듯

발기는 떨림으로

 

그렇다, 조개는 은밀함에 사는 거야

새조개 맛조개 참조개, 순이 걔 보조개

요 며칠 물 잦는 소리

맘껏 벙그러진

 

섬에도 땅 끝은 있어 팻말 같은 지미봉이

한 뼘 노을 자락에 얼굴을 붉히는데

빙긋이 초저녁달이

어깨 짚어 떠오르는데  

 

 

♧ 가을 밤나무 숲

 

생밤 쩍쩍 벌어지는 밤나무 숲에 서면

 

집단 무의식의 환장스런 오르가슴

 

배란기 야생 밤꽃이 환장케 부풀더니

 

수액 빨던 잎맥이며 번들거리던 이파리도

 

가을새 한 마리가 끌고 온 바람 타고

 

불혹에 새치를 뽑듯 초록물을 빼고 있다  

 

 

♧ 나비 8

 

그냥 앉아본다

상수리나무 이파리 끝

눈먼 생각으로

풋잠이나 꿈꿀 때는

예민한 제주 바람이

놓아주질 않는다

 

섬바람 타는 법은

살다보면 체득되네

이 땅의 들꽃들이

목숨 하나 꼭 붙잡듯

기류가

역류한대도

내 뜻대로 나는 거다  

 

 

♧ 이슬

 

풀잎

팽팽히

시위 트는 아침 이슬

건듯

바람 불어

장력(張力)이

끊기면

지상은

울음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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