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9월, 그리고 짚신나물

김창집 2012. 9. 1. 18:28

 

영 올 것 같지 않던 9월이다.

대수산봉과 소수산봉을 갔는데

두 번의 태풍이

나무에 수많은 생채기를 남겼다.

 

아무래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소금기가 배었는지 유린당한 잎들이 완전히 말라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잎사귀는 다 말라버리고

익다만 열매들만 바닥에 남은

참외밭과 수박밭이 9월을 맞고 있었다.  

 

 

♧ 9월에 부르는 노래 - 최영희

 

꽃잎 진 장미넝쿨 아래

빛바랜 빨간 우체통

누군가의 소식이 그리워진다

 

망초꽃 여름내 바람에 일던

굽이진 저 길을 돌아가면

그리운 그 사람 있을까

9월이 오기 전 떠난 사람아

 

지난해 함께 했던

우리들의 잊혀져 가는

그리움의 시간처럼

타오르던 낙엽 타는 냄새가

올가을 또 한 그립지 않은가

 

가을 오기 전

9월,

9월에 그리운 사람아.   

 

 

♧ 가을의 창 9월 - (宵火)고은영

 

밤새 누군가 다녀간 발자국마다

가을이 군데군데 고여 있다

참새들은 얼마나 맨드라미꽃을 좋아하는지

아침이면 와인 빛 맨드라미 꽃씨를 쪼아 먹는

참새 떼들이 줄지어 날아오르고

계절의 약속은 풍요를 이끌고

생명의 땀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힌 대지

마른 바람 춤사위 버석이는 눈길로

서러운 가을 채색에 바쁘다

 

사랑이 떠나기도 전

철 지난 사랑의 아쉬움과

미리 달려오는 9월의 언덕 위에

말없이 늙어가는 숨결들은 심약하고

고요히 지난 추억을 반추하는

정직한 순수와 창작을 멈춘 꿈들은

다시 황혼의 자락에 고개 숙이는

풀들의 조용한 떨림과 기도소리를 듣는다

 

타르냄새 코를 찌르던 열정을 뒤로하고

결실로 치닫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 빛에

발그레 홍조 띤 열매들은 황금빛 밀어에 황홀해도

서늘한 까마귀 울음 저 먼 산 캔바스에

아침과 저녁을 아스라이 여울져 흐른다   

 

 

♧ 9월도 저녁이면 - 강연호

 

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

 

괄호 속의 숫자놀이처럼

노을도 생각이 많아 오래 머물고

 

하릴없이 도랑 막고 물장구치던 아이들

집 찾아 돌아가길 기다려 등불은 켜진다.

 

9월도 저녁이면 습자지에 물감 번지듯

푸른 산그늘 골똘히 머금는 마을

 

빈집의 돌담은 제풀에 귀가 빠지고

지난여름은 어떠했나 살갗의 얼룩 지우며

 

저무는 일 하나로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밥상 물리고 이부자리를 편다.

 

9월도 저녁이면 삶이란 죽음이란

애매한 그리움이란

 

손바닥에 하나 더 새겨지는 손금 같은 것

지난여름은 어떠했나

 

9월도 저녁이면 죄다 글썽해진다.

  

 

♧ 9월 - 오세영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모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 가을 엽서 - 성낙일

 

가을이 물들고 있습니다

산과 들만 물들이는 게 아니라

가을은 사람의 마음까지도

물들이고 있습니다

 

물든다는 건

닮아 간다는 것

가만히 가을을 맞고 있으면

어느새 나도 가을을 닮는 것을 느낍니다

 

폭풍의 여름을 견뎌낸 이는

가을에 고개를 숙이고

제 몸을 온전히 그에게 맡깁니다

가을은 더욱 성숙해 질 따름

늙고 병드는 이는 없습니다

 

비로소 사람들에게

향기가 납니다

비로소 나는

사람들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 9월의 기도 - 문혜숙

 

나의 기도가

가을의 향기를 담아내는

국화이게 하소서

 

살아있는 날들을 위하여

날마다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한쪽 날개를 베고 자는

고독한 영혼을 감싸도록

따스한 향기가 되게 하옵소서

 

나의 시작이

당신이 계시는 사랑의 나라로

가는 길목이게 하소서

 

세상에 머문 인생을 묶어

당신의 말씀 위에 띄우고

넘치는 기쁨으로 비상하는 새

천상을 나는 날개이게 하소서

 

 

나의 믿음이

가슴에 어리는 강물이 되어

수줍게 흐르는 생명이게 하소서

 

가슴속에 흐르는 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로

마른 뿌리를 적시게 하시고

당신의 그늘 아래 숨쉬게 하옵소서

 

나의 일생이

당신의 손끝으로 집으시는

맥박으로 뛰게 하소서

 

나는 당신이 택한 그릇

복음의 사슬로 묶어

엘리야의 산 위에

겸손으로 오르게 하옵소서   

 

 

♧ 9월의 시(詩) - 함형수

 

하늘 끝없이 멀어지고

물 한없이 차지고

그 여인 고개 숙이고 수심(愁心)지는 9월.

기러기떼 하늘가에 사라지고

가을잎 빛 없고

그 여인(女人)의 새하얀 얼굴 더욱 창백하다.

눈물 어리는 9월.

구월(九月)의 풍경은 애처러운 한 편의 시(詩).

그 여인은 나의 가슴에 파묻혀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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