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서 ‘질빵’을 찾으면 명사로 ‘짐을 걸어서 메는 데 쓰는 줄. ’멜빵‘의 제주도 사투리.’로 나와 있다. 사위질빵의 줄기를 보면 바로 그 질빵과 비슷한 모양의 줄로 되어 있다. 질빵은 제주도 사람들과 깊은 인연이 있다. 본토에서는 물건을 나를 때 보통 남자는 주로 지게에 얹어서 나르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나르는데 비해 제주사람들은 여자나 남자나 대부분 등에다 지고 다니기 때문에 늘 질빵과 더불어 살았다.
그렇지만 거친 것을 많이 짊어질 때에는 그냥 짚으로 만든 ‘짐패’를 사용한다. 물론 어린애들은 어깨가 아플까봐 질빵으로 바꿔주는 집이 있으나 천이 어렵던 시절엔 질빵도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짐패로 단련시키기도 한다. 또, 질빵은 작업복인 갈옷을 입었을 때가 아닌 고운 옷을 입었을 때 옷이 헐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보자기에 싸고 있다가 물건을 나를 일이 있으면 꺼내서 지기도 한다.
어제는 친구 녀석 부인의 민요창 공연에 다녀왔다. 찬조 출연도 좋은 내용이 많고, 모처럼 들어볼 수 있는 노래들인데, 하필이면 노천인 탑동공연장에서 열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비가 하염없이 내린다는 것이다. 나누어준 1회용 비옷을 입고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 옛날 이야기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셨다. 이 사위질빵을 올리며 어머니 아버지의 짐을 덜어 드리기 위해, 학교 갔다와 저무는 날에 질빵을 들고 마중 나가던 때가 불현듯 그리워진다.
사위질빵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낙엽 덩굴식물로 3m까지 자란다. 잎은 3장의
잎으로 이루어진 겹잎으로 마주난다. 잔잎 가장자리에는 조그만 톱니들이 있고, 잎
뒷면 맥 위에 털이 있다. 꽃은 여름에 잎겨드랑이에서 나오는 취산꽃차례 또는 원
추꽃차례로 무리지어 하얗게 핀다. 꽃잎은 없고 4장의 꽃받침잎이 꽃잎처럼 보이며
수술과 암술은 많다.
열매는 9월에 수과로 익는데, 털이 난 암술대가 열매에 달려 바람에 날린다. 양지바른
길가에서 흔히 자란다. 봄에 어린잎을 나물로 먹기도 하나, 독이 들어 있으므로 유의
해야 한다. 할미밀망은 사위질빵과 거의 비슷하나 잎 가장자리의 톱니가 크며, 꽃이
잎겨드랑이에 3송이씩 무리지어 피는 것이 다르다. (브리태니커 백과에서)
♧ 사위질빵 새순에게 - 김상현
깨금발로
튀어 나온 아기야
폴짝 뛰어 하늘을 잡아라
하늘이 멀면
사계절 푸른 소나무를 잡아라
눈이 부시거든
개망초 꽃대궁이라도 잡아라
꽃대궁에 오르면
폴짝 뛰어 구름을 잡아라
구름이 없으면
바람이라도 잡아라
어느 날 네 삶이 무겁거든
툭
네 질빵을 끊어라.
♧ 헛나이 - 권오범
진종일 식물도감 뒤적이며
생면부지 얼굴들과 상봉하다 보니
입때껏 멍텅구리가 시 쓴답시고
깝죽거린 것 같아 남세스럽다
며느리밑씻개 미꾸리낚시 꼭두서니
중대가리나무 광릉요강 소경불알 털개불알꽃
사위질빵 까치수염 장구채 노루오줌
비짜루가 풀이름인줄도 몰랐네
지천에 널브러진
자연의 밑절미도 분간 못하면서
백일몽에 취해 괴발개발 해놓고
동천지감귀신인척 한 숙맥
석수장이 눈깜작이부터 배운다는데
알량한 게꽁지로 생판에 뛰어든
철들긴 다 틀린 붕어사탕
어느 세월에 걱정가마리 면할는지
♧ 들꽃 사랑 - 양명호
무관심의 바다에서
결코 살려고 발버둥치지 않았다
흑백칼라 뒤엉킨
험한 세파 속에서
온 몸으로 그려낸
한 폭 그리움의 수채화
비싸게 팔려고 광고하지도 않았다
이슬 먹고 자라난
그리움의 향기
바람 따라 모두 모두 사라질지라도
나지막한 진리의 언덕에 기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내일 시들어 한 줌 흙이 되어도
줌으로써 이미 넉넉한 가슴
고난이 밟고 지나 간 자리마다
소망의 향기 닿는 곳마다
다시 피어날 들꽃의 꿈
♧ 소금강 춤사위 - 김영호
계곡물이 하늘 향해 옥색 저고리를 벗어 올리니
구름이 무지개 치마를 펼쳐
한판 흥겨운 춤사위를 보인다.
방울새와 바이오렛 꽃들이 무지개 치마 속으로 들어가니
산물소리가 초야의 실내악이다.
이 꽃과 새의 내방 음악을 카메라에 담아
현상을 하니 별들이 학춤을 춘다.
이 천연의 춤사위를 표구하여 벽에 거니
사철이 거문고 병창소리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아무도 전화가 없는 밤
그 소리 차를 달여 마시면
달이 옥양목 저고리의 눈을 털며
방문을 여는 것이다.
♧ 빛을 기다립니다 - 유소례
방안에 또 하나의 방,
벽도 없고 문도 없으나
이곳에 앉으면
살포시 세상 문을 닫고
영혼으로 흘러드는 빛을 기다립니다
세상에서 얻은
음습하고 병든 영혼육을 위해
마음을 쏟아놓고 당신을 부르며
성령의 불이 번지기를 기다립니다
하루의 첫 시간
당신이 틀어주실 보금자리에
평화와 기쁨과 소망의 말씀을
가득 채울 이 새벽
나는 맑고 밝고 환한 은총을 기다립니다
햇살 반짝이는 아침 정원에
하얗게 물들인 눈발처럼
내 영혼의 갈피갈피
사랑의 축전을 꽂아
축복이 넘치기를 기다립니다.
♧ 소리꾼 - 천양희
목소리 하나로 산을 휘어잡은 새들은
타고난 소리꾼이다 바람보다 먼저 산을 깨우고
계곡 아래 물살도 산정으로 당긴다 당기듯이 소리친다
소리치며 산 그림자를 가볍게 놓아버린다 숲 속이
숲의 속이 오래 떨린다 저 떨림은 아무래도
절필한 소리꾼의 재창이다 곡비의 환생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저토록 산이 속으로 울리겠나
울겠나 속으로 우는 것들은 울음도 힘이 된다는 걸
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던 시인 랭보는
지옥에서 한 철을 보내고도 어떻게 시 하나로 한 세상을
휘어잡은 것일까 아무것도 휘어잡지 못하고
남은 자들은 절창 한 소절 표절이나 해서
휘몰이 휘몰이 휘몰이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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