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강아지풀이 흔들릴 때

김창집 2012. 10. 1. 00:42

 

초특급 태풍 17호 즐라왓이

일본을 강타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옛날 추석을 망쳐놓은

사라호 태풍을 떠올린 추석날 아침.

 

지난 세 차례의 태풍에 이래저래 피해를 입고

아직도 기상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삶을 살며 

농사를 짓고 있는 친척들

이번에 다행히 바람을 피하고 그런대로

추석 차례를 제대로 지내고 모인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과 한핏줄의 정을 느낀 하루였다.

 

금요일 상잣성 숲길을 걷다 전망대에서 쉴 때

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풀을 보고

카메라를 꺼내 찍어본 이 녀석들에게는

바람이 차라리 낭만으로 비쳐진다.  

 

 

♧ 강아지풀(Setaria viridis)은

 

외떡잎식물 벼목 화본과의 한해살이풀로 흉년이 들었을 때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씨앗을 수확해서 먹는 구황식물(救荒植物)이다. 뿌리에서

몇 개의 줄기가 곧추서서 나온다. 잎은 마디마디에 1장씩 달리며 길이는

5∼20㎝ 정도이다. 연한 초록색 또는 자주색 꽃은 여름철에 줄기 끝에 달리는

이삭꽃차례에 모여 피는데, 강아지 꼬리처럼 부드럽다.

 

들이나 밭, 길가에서 흔히 자라는 식물로 구미초(狗尾草) 또는 낭미초(狼尾草)

라고도 부르며 9월에 뿌리를 캐어 말려서 촌충을 없애는 데 쓰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식물로 금강아지풀과 밭에 심는 작물인 조가 있다. 강아지풀의

꽃말은 동심, 노여움이다. (신현철)  

 

 

♧ 강아지풀, 가을 그리고 여인 - 이순복

 

살랑거리는 바람에 가느다란 꽃 털로

나를 유혹하는 강아지풀

 

철없는 강아지 꼬리 흔들듯

온몸을 흔들며 나를 반긴다

 

귓불 스치는 가을바람은

꽃향기로 조용히 다가와

그리움만 한 움큼

가슴에다 던져 놓고 떠나간다

 

동네 길섶 들꽃들 속 한 여인

어느새,

두 뺨의 좁은 골 따라

그리움의 눈물은 흐르고

 

여인의 가슴에는

계절마다 찾아오는

가슴앓이의 전율이 일어나고 있다

 

조용히….   

    

 

 

♧ 강아지풀 - 김승기

 

정말 흔들렸을까

가냘픈 모가지에 수백 사랑의 씨를 달고

힘겨워 잠시 비틀리며

툭 건드린 것뿐인데

하늘이

땅이

얼마나 흔들렸을까

가슴 뿌리까지 떨려오네

여름 내내 하늘에서 꿈꾸는

별빛이 내려와

이슬이 내려와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가꾸어 온 사랑

 

단단하게 맺혀진 열매를

무슨 바람 들었다고

한 순간 비틀거림으로 흔들릴 수 있을까

나뭇잎 떨구려고 밤새 수선 피우던

빗소리에 멍든 산천이

이 고요한 가을 아침

떠오르는 햇덩이를

착시 현상으로 눈 깜박했을 뿐

쿵, 가슴에 내려앉는 낙엽 하나에도

놀라서 머리 치켜올리는 강아지풀을

그렇게 몰아세우지 말게나  

 

 

♧ 강아지풀 - 박용래

 

남은 아지랑이가 홀홀 타오르는

어느 역 구내 모퉁이

어메는 노오란 아베도 노란 화물에 실려 온

나도사 오요요 강아지풀.

목마른 침묵은 싫어

삐걱 삐걱 여닫는 바람 소리 싫어

반딧불 뿌리는 동네로 다시 이사 간다.

다 두고 이슬 단지만 들고 간다.

땅 밑에서 옛 상여소리 들리어라.

녹물이 든 오요요 강아지풀.  

   

 

♧ 강아지풀 - 김명석

 

길 잃은 철새도 흔하게 날아오른다던

텃새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콘크리트 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리면서 세상은

처음부터 그러려니 생각했습니다.

하지夏至 작열하는 뙤약볕에 입술은 말라들어 갔지만

뿌리조차 비틀어져 허리를 굽치고 지탱하고 있지만

더 큰 고통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리면서 가는

낮선 단어와 진지한 웃음이었습니다.

 

현기증과 미열에 비몽사몽 어둠이 오면

하늘에 떠 있는 반짝이는 수많은 별과

아늑한 미소로서 내려다보고 있는 달

그리고 실바람 질감으로 별과 달 아래 날아가고 있는

구름, 구름을 보다가

구름 타고 서녘 끝으로 달렸습니다.   

 

 

♧ 강아지풀 - 신현정

 

손바닥에 강아지풀을 올려놓고 본다

 

강아지풀이 기어간다

 

팔에다도 올려놓아 본다

 

기어간다

 

나는 간지럽다

 

강아지풀은 달아나려 한다

 

나는 마냥 간지럽다

 

강아지풀을 엄지와 검지로 살며시 집어올려서는

 

내 생의 한복판에 내려놓아 본다

 

강아지풀은 달아나려 한다

 

요오놈의 강아지풀,

 

그래그래, 내 생의 끝까지에라도 기어가거라

 

나, 죽어서도 간지럽게.  

 

 

♧ 강아지풀 - 고정국

 

바람이 분량만큼

허리 굽혀 살아온 그대

묻지도 않은 말에

고분고분 답하는 그대

아무 일, 아무 일 없다며

꼭꼭 눈물 삼키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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