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달아 노피곰 도드샤

김창집 2012. 10. 2. 02:15

 

올해 결혼한 둘째딸과 사위가 오는 바람에

예정에 없이 식구가 함께 오름 나들이를 가게 되어

오후 3시에 미리 약속된 달맞이 산행을 하기로 하고

차를 밖에 세워둔 채 급하게 옷을 갈아입으면서

휴대폰을 벗은 옷에 둔 채로 차에 타는 바람에

세상과의 소통이 얼마나 필요한지 느낀 날이었다.

 

옛날 집전화만 있던 시절에는 전화번호도

여럿 외웠었는데, 저장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기에

일행의 번호는 하나도 몰라서, 중간에 전달도 했고 

이건 뭐 속수무책이라 막살한 채, 평소 하던 대로

해마다 가는 오름에 올라, 늘 모이던 장소, 시간에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며 사진 찍기를 몇 시간,

아는 사람들도 왔다 가버리고, 종내는 올라오는 사람들이

없어, 내려가면 어디 되겠지 하고, 그냥 내려왔다.

 

아직까지도 노래자랑은 하고 있었으나

세화리 주민들만 남았고, 마침 네 사람이 제주시로

오는 것을 보고 동승을 요구했으나

가다가 어디 들를 거라고 정중하게 거절하고 가버린다.

차는 하나둘 사라져가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직도 막걸리를 마시며 신나게 놀고 있는 세 분이 있어

아무케나 제주시까지 태워달라고 요청하자, 쿨하게 그러마고

하면서 마시던 막걸리 한 잔까지 권한다. 너무 고마웠다.

 

 

그래 아직도 세상은 살만하고,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며 제주시까지 와서,

꼭 막걸리 한 잔을 사 드릴려고 했는데

굳이 마다시며 오름을 좋아하다보면

다시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집 가까운 곳에서 내려준다.

 

언젠가 꼭 만나

호의에 보답할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그런 걸 보면, 올해 나의 일도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고,

너무 흐뭇해서 잠도 잘 안 온다.  

 

 

♧ 한가위 보름달 - 김선태

 

한가위 보름달 떴다

어린 시절로 돌아온 듯 뒷동산에 올라

‘동무들아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 외쳤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다

밤이 흥청 깨어지도록 즐겁게 뛰놀던 기억의 자리에

낯선 무덤들이 여럿 웅크리고 있다

꽉 찬 보름달 텅 빈 뒷동산

내려오는 길목 늘어선 빈집들에는

어둠만 무겁게 도사리고 있을 뿐

아무도 살지 않았다

추억은 오래 전 뿔뿔이 쫓겨 갔다

쫓겨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한가위 달밤에 - 강대실

 

어머니!

앞산 마루 두둥실 달밤

땀에 저린 일상 뒤안에 내려놓고

맨드라미 고운 잎

송당송당 썰어 넣어

둥근 달로 지진 전

한사코 입에 넣어 주셨지요

곱기도 하다며 보라시던 보름달

이 밤엔 어머니 얼굴로 솟아

솟구치는 그리움에

호올로 바라봅니다

어머니!

자식 앞에 보이지 않으려 했던

뺨 위 두 줄기 눈물

달빛에 너무도 선연했습니다

그 의미 지금도 알 수 없어나

이 자식 가슴속에

살아서는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흐릅니다.   

 

 

♧ 추석달을 보며 - 문정희

 

그대 안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보다.

 

지난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봄의 온갖 가시덤불 속에서도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올랐구나.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

 

참으로 옥양목같이 희고 맑은

우리들의 살결로 살아났구나.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오늘은 한가윗날.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

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다.

 

가혹한 짐승의 소리로

녹슨 양철처럼 구겨 버린

북쪽의 달, 남쪽의 달

이제는 제발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 놓고

 

나의 추석 달은

백동전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고 싶다.   

 

 

♧ 추석달 - 정희성

 

어제는 시래기국에서

달을 건져내며 울었다

밤새 수저로 떠낸 달이

떠내도 떠내도 남아 있다

광한전도 옥토끼도 보이지 않는

수저에 뜬 맹물달

어쩌면 내 생애 같은

국물을 한 숟갈 떠 들고

나는 낯선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보아도 보아도

숟갈을 든 채 잠든

자식의 얼굴에 달은 보이지 않고

빈 사발에 한 그릇

달이 지고 있다   

 

 

♧ 한가위 풍경 - (宵火)고은영

 

플라타너스 나무는 살아 있는 내내

몇 천 번의 수피를 벗을까

나이만큼 벗어내는 걸까

높아진 담청색 하늘에 구름 들은

흩어졌다 다시 모인다

 

만월의 밤이면 소곤거림에

점점 무르익어 비워내야 할 것이

무엇임을 아는 자연의 소리

고통을 지나온 걸음은

비로소 행복에 근접하는 것이다

 

거기 말할 수 없는 진실로 엎딘 풍경도

마지막 고단한 열매를 달고 고열로 헉헉거리다

한가위 보름달에 그리움을 풀어내며

지극히 평화롭고 고요한 종을 울릴 것이다  

 

 

 

♧ 대보름달 - 이향아

 

아파트 베란다에 보름달이 찾아왔다

들판과 바람 속을 거슬러 오느라

달이 창백하다

달이 어색하다

보름달은 피고처럼 떠 있다

 

세상의 어디로도 갈 수 없어서

만민의 소원이 밀물 같아서

얼굴을 붉히고 귀를 막았는지

눈치를 보면서 덩두렇게 떠 있다

 

다 안다, 걱정하지 말거라

동네 개들은 짖지 말거라

오늘 밤은 다만 대보름달을

넋 놓고 오래오래

바라만 보련다

당신이신가

달이신가

대보름 달이신가

미안해서 미안해서

올려다만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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