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비가 와서
눈밭에 가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 산책로가 잘 되어 있는
수산봉으로 가서
비옷을 입고
오름을 한 바퀴 돌았다.
비가 개이고 나자
'그래, 바다로 가보자.' 하고
내 고향 곽지 해변으로 옮겨
정자에서 차를 한 잔 마신 다음
한담동까지 열어놓은 해변 길을
걸으면서 바라본 겨울바다 모습이다.
♧ 겨울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던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겨울바다 - 오경옥
무슨 말이든 전할 수 없을 때
어떻게든 주어진 상황과 마음을 표현할 수 없을 때
기다림에 가슴 먹먹하도록 그리워질 때
침묵해야 한다고 생각될 때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다름과 차이 앞에서 혼란스러울 때
존재에 대한 정체성 앞에서
갈등과 번민에 휩싸일 때
그래도 견디어야 한다고 생각될 때
달려가곤 했었지
무작정
♧ 겨울바다 - 남경식
춥고
춥기만 했던
보랏빛 시대
그 겨울바다를 생각한다
격랑으로 밀려오는 좌절
높은 단절을 견디지 못해
찾던 바다는
나의 바다는 아니었다
얼마나 춥던지
머리 속은 온통 진공
바다는 생각을 멈추게 한다
오직 파도만이 사나웁게
허공을 울음 울고 있었다
실패도
고통도
욕망도
춥고 깊은 바다에 버리라고
바다는 나무라고 있었다
깊은 깊은 마음 안에서
수없이
수없이
희망은
허우적거렸다
스스로 어둠을 깨라고
이날 얻은 결론이었다.
♧ 겨울바다 - 서경원
파아란 하늘이
살포시 내려와 앉은 바다
촘촘한 햇살들 은빛 물결 위에 춤추고
속살 드러낸 바다 까르르 웃을 때마다
창백한 낮달 한 발자욱씩 멀어져 간다.
갈매기 한 쌍
소금기 어린 날개 부비며
목이 쉬도록 부르는 겨울 연가
파도에 실려
그대 계신 꽃섬까지 날아가려나
온 몸에 푸른 상처를 내며 파도는
모래를 쓰다듬고
바위를 끌어안는다.
사랑은 가고
그리움만 남은
빈 바다
은빛 햇살만 출렁거린다.
♧ 겨울바다 - 정군수
너의 창에
눈이 쌓이는 밤에
겨울바다는 잠 못 들고
얼어오는 몸살 출렁이며
꽃눈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도 무너진 절벽
해풍에 씻긴
꽃눈 뜨게 하려고
쓰린 눈 젖어
한밤 내 춤을 추었다
너의 창에 흰 눈 걷어가고
제비 오는 날 꽃은 피어
바람을 따라 너는 또 손짓을 하고
겨울에서 돌아온 바다는
절벽에 머리 부딪히며
잠을 이루지 못하겠지
너희 창에 눈이 내릴 때까지
잠 못 들고 출렁이겠지
♧ 겨울바다 - 김영호
눈발에 업혀 숨가쁘게 찾아간 동해바다
바다가 오늘은 가슴에 빗장을 쳤다.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는다.
또 와서 울려거든 돌아가라 한다.
당신의 문을 열기 전, 바다는,
나의 강물을 먼저 열어 보이라 한다.
바다를 보기 위해
바다에 올 것 없다 한다.
나의 문이 열리면
방안에서도 당신을 보리라 한다.
빗줄기 속에서도 보리라 한다.
사람들이 모두 풀꽃으로 보이고
정치인도 사람으로 보인다 한다.
눈발에 업혀 와 발을 구르는 나의 멜랑꼴리를
바다는 이렇게 문 밖으로 쫓아냈다.
아니, 꼭 닫히니 나의 가슴을
바다는 온몸으로 두드렸다.
또 와서 울려거든 돌아가라
나도 아직은 더 울어야 한다,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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