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봄호 나오다

김창집 2013. 4. 13. 07:02

 

계간 ‘제주작가’ 봄호가 나왔다.

사단법인 제주작가회의가 발간하는 이 책은

어느덧 40호의 지령을 맞았다.

 

특집은 ‘제주작가의 작가’로

역대 신인상 수상자의 작품을 모았다.

13년 동안 발굴된 작가는 총 27명

앞으로 왕성한 활동을 기대하며

발표된 글 중 시와 시조 4편을 골라

그제 낮에 별도봉에서 찍은

미나리아재비와 함께 올린다. 

 

 

♧ 강술 - 강창범

 

아버지는

뉴스를 볼 땝마다

이놈의 세상 한번 뒤집어져야지

하시면서

강술을 드셨는데

 

끝내 아버진

뒤집힌 세상이 오기도 전에

눈을 감으셨는데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딸이

에비씨가 뭐

나도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면서

졸라대는데

 

이제 경우 36개월짜리가

한글도 채 배우지 못한 녀석이

영어 한다고 달려드는데

 

이놈의 세상 한번 뒤집어져야지

한밤중에 일어나

20여 년 전 아버지처럼

강술을 마시고 있는데

 

뒤집히라는 세상은

끄떡도 하질 않고

속만 뒤집어지는데

 

 

♧ 어떤 기도 - 김순선

 

바닷가 24시 편의점 앞

야외 테이블 위에 막걸리 한 병 올려놓고

컵도 안주도 없이

고개 숙인 남자

경직된 경건함이 흐른다

 

새벽 어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왔는데

아직도 그 남자

기도중이다

기도소리 들리지 않지만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그의 절절함이

막걸리 속에서 익어가고 있다

 

말 못하는 그의 분노가

그의 실패가

그의 좌절이

새 노래로 숙성되어

따스한 햇살로 번지길 기원한다

 

새벽바람에 비릿한 얇은 미소

그의 입가에 일렁이는 듯  

 

 

♧ 노을 - 홍경희

 

꽉 깨문

이별 앞에

턱까지 차오른 말

 

미어지다

미워지다

 

뒤돌아

그리움이지

 

빗금 간

그 이름만으로도

붉어지는

사람아  

 

 

♧ 봄비 2 - 김진숙

 

새벽밥 지으시나

하늘나라 내 어머니

식구들 단잠 깰까 수문 살짝 여시고

창가에 파 송송 써는 소리

 

봄비소리

좋다

 

뒷마당 애기풀꽃들

살짝 얼굴 내밀어

김 오름 양푼밥 가득 절로 입맛 도는

 

어머니 데불고 온 비

토닥토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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