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제주작가’ 봄호가 나왔다.
사단법인 제주작가회의가 발간하는 이 책은
어느덧 40호의 지령을 맞았다.
특집은 ‘제주작가의 작가’로
역대 신인상 수상자의 작품을 모았다.
13년 동안 발굴된 작가는 총 27명
앞으로 왕성한 활동을 기대하며
발표된 글 중 시와 시조 4편을 골라
그제 낮에 별도봉에서 찍은
미나리아재비와 함께 올린다.
♧ 강술 - 강창범
아버지는
뉴스를 볼 땝마다
이놈의 세상 한번 뒤집어져야지
하시면서
강술을 드셨는데
끝내 아버진
뒤집힌 세상이 오기도 전에
눈을 감으셨는데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딸이
에비씨가 뭐
나도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면서
졸라대는데
이제 경우 36개월짜리가
한글도 채 배우지 못한 녀석이
영어 한다고 달려드는데
이놈의 세상 한번 뒤집어져야지
한밤중에 일어나
20여 년 전 아버지처럼
강술을 마시고 있는데
뒤집히라는 세상은
끄떡도 하질 않고
속만 뒤집어지는데
♧ 어떤 기도 - 김순선
바닷가 24시 편의점 앞
야외 테이블 위에 막걸리 한 병 올려놓고
컵도 안주도 없이
고개 숙인 남자
경직된 경건함이 흐른다
새벽 어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왔는데
아직도 그 남자
기도중이다
기도소리 들리지 않지만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그의 절절함이
막걸리 속에서 익어가고 있다
말 못하는 그의 분노가
그의 실패가
그의 좌절이
새 노래로 숙성되어
따스한 햇살로 번지길 기원한다
새벽바람에 비릿한 얇은 미소
그의 입가에 일렁이는 듯
♧ 노을 - 홍경희
꽉 깨문
이별 앞에
턱까지 차오른 말
미어지다
미워지다
뒤돌아
그리움이지
빗금 간
그 이름만으로도
붉어지는
사람아
♧ 봄비 2 - 김진숙
새벽밥 지으시나
하늘나라 내 어머니
식구들 단잠 깰까 수문 살짝 여시고
창가에 파 송송 써는 소리
봄비소리
참
좋다
뒷마당 애기풀꽃들
살짝 얼굴 내밀어
김 오름 양푼밥 가득 절로 입맛 도는
어머니 데불고 온 비
토닥토닥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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