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에 올라 숲을 걷다보면
흔히 만날 수 있는 이 버섯
찾아보니, ‘메꽃버섯부치’로 나와 있다.
한여름 짙푸른 숲 속은 햇볕이 안 들어
꽃이 별로 없는데
죽은 나뭇가지에 꽃처럼 핀 버섯
이를 어찌 꽃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랴?
꽃이 아니면서도 꽃인 척하는 것도 있는데.
♧ 숲의 그늘에서 자리는 버섯 - 김용범
숲의 힘은 그늘에 있다. 버섯들이 은밀하게 자라나는 내 숲의 그늘. 버섯의 포자들이 음험하게 파고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다. 버섯은 어둠의 힘으로 자란다. 어둠이 싹을 먹으며 시나브로 제몸을 키우며 독기를 만들고 있다. 숲은 하늘을 가리고 가려진 하늘은 그늘을 만든다. 모종의 음모처럼 그늘에서 버섯의 힘은 길러지고 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마다 그늘이 있다. 그늘마다 독기를 품은 버섯이 자란다. 겉모양이 유순한 버섯일수록 반드시 맹독 있다.
♧ 독버섯 - 김귀녀
낮이나 밤이나
활짝 웃는 저 웃음은
저 빨간 입술은
거짓이다
저 거짓에 홀린 적 있다
낮이나 밤이나
내 가슴에 떠돌던
바람에 온 몸 맡기고
핏빛으로 울다 간 이여!
♧ 버섯 F - 김경희
그것은
상식적인 식용이 아닙니다
송이나 표고 느타리도 아닌
식물과 동물의
변이된 이후 같습니다
섬뜩하게 말 없는
섬광 직전의
대기된 화려한 이마아쥬,
666바코드 무늬에 꽂핀
익명의 보고서 같습니다.
탐욕의
멈출 수 없는 바퀴
문명 , 그 우후에 돋은
어이없을 핵우산 같습니다.
발효된 경고 같습니다.
♧ 검버섯 - 김은자
새 아파트로 이사 오던 날
번쩍 번쩍 하던 욕조도
시간이 지날수록
비린 물때로 얼룩져
실리콘 여기저기
검버섯 피듯 피어난다
비누 거품을 내어
박박 닦아 보지만
검버섯 지워지지 않고 늘어만 간다
화이트 크림을 발라 보지만
여전히, 검은 점백이
세월의 자국으로 남아 있다
어느 날인가
휴지에 락스를 발라 둔 채
하룻밤 지나고 나니
곰팡이가 죽었는지
실리콘은 새것처럼 하얗게 되었다
육신의 이곳저곳 검버섯 필 나이
곰팡이 없애듯
검버섯에 락스라도 뿌려 없애버리고 싶다
삶의 자국 늘어 갈 때마다
검버섯에 대한 집착이
깨달음 같은 나이
♧ 버섯 - 김기홍
밤이 되면 피었다.
아무렇게나 살 수 없는 몸
욕망도 소망도 버리고
가까스로 숨쉬는 이 그늘
키 큰 것들 햇살 다 차지하고
억센 것들 바람 다 차지하고
질긴 생명 버릴 수 없어
밀려온 곳 울 밑이나 퇴비 속
잎은 피워 무엇하랴
꽃은 피워 무엇하랴
귀는 틔워 무엇하랴
꽃숲에서도 꽃이 될 수 없고
풀밭에서도 풀이 될 수 없는
우리 홀씨로 남아
침묵의 소리로 이 세상 보나니
햇살이나 막아다오.
바람이나 막아다오.
그대 감상 한 자락 흔들릴 때
슬픔만 모아 삭혀 피어나리니
썩은 몸 속 향기 지녀 피어나리니
누가 음지의 독버섯이라 이름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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