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제비동자꽃 피던 날

김창집 2013. 7. 18. 08:01

 

제민일보 ‘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취재차

애월읍 붉은오름에 다녀왔다.

숲을 걷는 동안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와 씨름하고 있을 시내의 친구들을 생각하면

너무 분에 넘치는 호강을 하고 있구나 하며

온통 푸른 숲길을 걸어 능선에 이르렀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넓은 시야가 온통 초록 세상이다.

오늘 따라 구름 한 점 없는 한라산이 너무 깨끗하여

그 묵직한 몸집을 카메라에 한껏 담아본다.

 

하산하여 점심을 끝내고 들른 한라수목원

한쪽 귀퉁이에서 뜨거운 여름 대낮의 햇볕을 즐기고 있는

시원치 않은 내 눈 깊숙이 들어온 제비동자꽃.

 

제비동자꽃은 석죽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50~80cm로, 잎자루가 없는 피침형의 잎이 마주나고

7~8월에 짙은 홍색 꽃이 취산꽃차례로 핀다.

삭과는 긴 타원형이며 끝이 다섯 개로 갈라지며,

우리나라의 대관령 이북 및 일본, 만주 등지에 분포한다.

 

 

 

 

♧ 동자꽃 - 김승기

 

장대비 같은 햇살 머리에 이고

찾은 절간에서

동자야

때 묻은 세상살이 주름진 얼굴

청산에 흐르는 냇물로 씻어

곧게 펼 수 있을까

가슴앓이

그 팔만사천의 번뇌를 지우고

맑은 詩를 쓸 수 있을까

지친 사람들 어깨 위에

엉킨 실타래처럼 얹혀진 억지들

지금이라도 술술 풀 수 있는

동심 되찾아

따뜻하게 온 누리 빨아 널 수 있을까

합장하였더니

저만치 샘물 곁에서

흐르는 냇물 들끓는 번뇌 그대로 두고

엉킨 실타래도 그대로 두고

물 한 모금으로

마음이나 씻으라 손짓하네  

 

 

♧ 여름 노트를 덮으면서 - 함영숙

 

여름 노트 속에는

 

노란 황매화 꽃잎 머리 디밀고

만나지 못해 길 엇갈린 상사화

어긋맞겨 고개 돌리고

삶 허리 끊어진 돌 틈에

패랭이꽃 팽그르 돌고 있다

 

자유 그리워 주저앉은

며느리밥풀꽃은 배고파 울고

부모 잃은 동자꽃은

겨드랑이 사이로 숨 쉬고

 

나팔꽃 봉선화 분꽃은

여자의 맴시 뽑내려하여

붉은 색 남기고 스며든 향기

 

여름 노트 속에는

바다에 밀려난 외로운 꽃사랑

노트 속 갈피마다 꽁꽁 숨어

흔적을 남기려하여

압사당하네  

 

 

 

♧ 동자꽃만 보고 왔네 - 정군수

 

월정사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나자

속세의 안개가 마음을 빠져나와

석탑 돌사자와 논다

안개 몰래 오대산을 오른다

적멸보궁 부처님 진신사리

손에 닿을까 마음 비우고 오른다

안개 안개

사리탑 오르기도 전에

안개가 먼저 올라와

적멸보궁을 감싸고 보여주지 않는다

오대산 꼭대기에 오르면 손에 닿을까

안개 더불어 오른다

동자꽃 동자꽃 동자꽃

적멸보궁 진신사리 못 보아도

큰스님 기다리다 굶어 죽은 동자스님

오대산 꼭대기에서 엎드려 사는 동자꽃

큰스님보다 먼저 얼굴 씻고 사는 동자꽃

동자꽃만 보고 왔네

동자스님만 보고 왔네

동자스님만 가슴에 안고 내려왔네

안개 두고 내려왔네 

 

 

♧ 운주사 - 김정호(美石)

 

운주사 와불의 깊은 숨소리가

하늘을 울린다

천년 역사가 다시 시작되는가

다른 전설을 수태하려는지

5층탑의 젖은 눈에 반사되는

밤하늘이 눈부시다

장고한 세월의 두께로 뒤덮은

천불천탑의 잔해 속에

슬픈 전설을 간직한 동자꽃이

부끄러워 가녀린 꽃망울을 떤다

법당 안에는

산사의 하루를 여는 법고소리에

세상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다른 깊은 가르침을 주려는지

참선을 하는 고승의 얼굴은

해탈을 한 듯하다  

 

 

 

♧ 늦가을 - 김남극

 

옥수수 글거리만 엉크런 텃밭에서 깻짚 타는 소리가 잠결에 들린다

 

천천히 일어나

마당가 분유통에 심은 동자꽃 씨방이 터져 꽃씨가 시든 돌나물 속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오줌 누러 다녀오고

 

마당에 넌 쥐눈이 콩 깍지 자그락거리며 벌어지는 소리, 콩알 멀리뛰기하여 착지하는 발소리 들으며 늦은 점심을 먹고

 

뒤란에 메주콩 삶는 아궁이 속 장작불 참나무 결 갈라지는 소리가 탁 탁 솥뚜껑을 치는 저녁녘

덜 마른 고추를 거둬들이고

 

종종걸음으로 달리기 시합을 하는 천장 위 쥐들 발자국 소리처럼 어머니 맷돌에 도토리 타개는 소리 문지방 넘어오는 초저녁

창밖에 뜬 눈썹달을 내다보다가

 

벌레 소리도 잠든 밤

이불 속에서 듣는

별들 마당가 꽃사과에 앉자 꽃사과 툭툭 떨어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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