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홍성운의 시와 으아리

김창집 2013. 9. 12. 14:17

 

주말까지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지만

이곳 제주는 비는 없고

날씨만 흐릿하다.

 

그 동안 게을렀기로

밀린 원고를 쓰며

류현진의 야구 경기를 본다.

 

매번 잘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해설자가 말을 하지만

한 열흘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맥 빠지는 경기를 했다.

 

6이닝 10안타 3실점

퀄리티스 스타트를 했다고는 하나

타자들이 못쳐 패전 투수가 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그만하면

잘 던졌다는 말을 하면서도

자꾸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는 거다.  

 

 

♧ 노랑턱멧새

 

치자

꽃물 먹은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그해 가을

상행선에

몸을 싣던 그대여!

 

오늘

숲 그늘에 와

먼 이름을 흘리십니까? 

 

 

♧ 흑룡만리*

 

누군가 그리워 만 리 돌담을 쌓고

참아도 쉬 터지는 이 봄날 아지랑이 같은

울 할망 흘린 오름에

눈물이 괸 들꽃들

 

차마 섬을 두고 하늘 오르지 못한다

그 옛날 불씨 지펴 내 몸 빚던 손길들

목 맑은 휘파람새가

톱아보며 호명하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한뎃잠을 자야한다

그래서 일출봉에 마음은 가 있지만

방목된 저녁노을이

시린 발을 당긴다

 

섬에 가두어진 게 어디 우마뿐이랴

중산간의 잣성도, 낙인된 봉분들도

먼 왕조 출륙금지령으로

그렇게 눌러앉았다

 

---

*흑룡만리 : 제주의 현무암 잣담을 이르는 말. 

 

 

♧ 종다리 사설

 

심심한 봄 하늘에 한 소절 사설을 푸니

 

그것도 세상 말빚

 

묵언수행하려는데

 

풀둥지

 

소리가 뜬다

 

비비쭁쭁 노란 부리들 

 

 

♧ 고로쇠나무에게

 

  2월 한기 가신 날

  너의 체액에 내가 취했다

 

  예전에 너를 몇 번 만났어도 그냥 단풍나무라 여겼다. 어느 친구가 고로쇠나무라 귀띔한 순간, 두툼한 면장갑을 낀 듯 입맥 사이사이 살점이 보였다  

  아쓱한 계곡 바람에도 홍조를 띠던 네가 용케도 전라로 겨울을 났구나. 저 중동에 전운이 감돌던 2월, 점령군처럼 나는 너의 물관에 드릴을 댔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 눈물이다. ‘헌혈 한번 못해본 내가 수액을 빨다니……,’ 구토다. 마른 잎 짓이겨 상처를 막았다. 무너진 도시의 3월, 신음이 멎었는지 가지가지 혈색이 핀다. 눈웃음 같은 이파리들 무성히 돋아날까

 

  나무야 정말 미안하다

  너를 채혈해 갈증을 풀다니

 

 

♧ 마른 산수국

 

  온 섬에 폭설이 내려 길이 모두 지워진 날은 사려니숲길을 천천히 걸어가 보라 산수국 마른 꽃잎들 결로 남아 흔들린다

  산에 든다는 건 마음을 비우는 일, 그러기에 야생화도 마른 꽃이 되기에는 바람에 향기를 풀고 색소까지 내줘야 한다

 

  요즘 길섶에는 겨울 나비 한창이다 오가는 사람들의 동공 가득 묻어나는 가벼운 꽃의 날갯짓, 지난여름 꿈의 잔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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