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속리산 법주사를 찾아서

김창집 2013. 10. 1. 01:13

* 설명 안된 사진들은 모두 법주사 경내 풍경입니다.

 

 

 

♧ 2013년 9월 29일 일요일 비

 

  2박 3일의 답사 마지막 날. 숙소였던 수안보를 떠나 비 내리는 산천을 일별하며 괴산군 37번 도로를 달린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친환경 농산물의 보고’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화양동 계곡이나 쌍곡 계곡 같은 수려한 계곡과 첩첩이 쌓인 소백산맥의 산 위를 넘나드는 안개와 구름이 동양화 같다고 환성을 지르는 일행이 있었지만, 일정 때문이라는 이유로 차는 무심하게 달린다. 가로수와 전선이 스쳐 차창 너머로 사진 찍는 것도 용납지 않아 욕심 부리지 않고, 가슴 속에만 담아두기로 했다.

 

 청천면에 이르렀을 때, 우선 35명의 우의를 사기로 하고, 차를 길 한 구석에 세웠다. 비는 더욱 굵어지는데, 대단위로 버섯을 파는 곳이 있어 구경하러 달려 가보니, 보고 싶어 하던 오리궁뎅이버섯이나 희귀버섯은 다 나갔다 하고 커다란 능이를 볼 수 있었다. 송이에 대해 물었더니 올해는 이상하게 가뭄이 들어 송이가 적게 나서 거래가 잘 되지 않았다 하며, 우리에게 보여주는 걸 보니, 아주 상품은 같지 않고 저울에 달아본 즉 700g이 되어 26만원어치란다.

 

 혀를 내두르고 있는데, 아줌마가 덜 핀 놈을 하나 골라 깨끗이 씻고 반에 잘라 먹어보라고 권한다. 쪽쪽 찢어먹어야 한다고 먹는 법까지 일러준다. 기사와 반쪽씩 나누었지만. 어디 회장 혼자서 꿀꺽할 수 있겠는가? 콩 한 쪽도 나눠먹는다는 마음으로 가지고 차에 돌아와 정말 눈꼽만씩 찢어 34인에게 맛을 보였다. 정말 그걸 기꺼이 받아 먹어주신 어르신들과 제공해준 인심 좋은 충청도 아줌마에게 감사드린다.

 

 

 

♧ 정이품송을 지나 법주사로

 

  그러는 사이에 차는 괴산을 지나 보은으로 들어섰다. 비는 그칠 줄 모르는데, 차창 너머로 을씨년스럽게 비를 맞고 우두커니 서 있는 정이품송은 오다 볼 걸로 하고 그냥 지나친다. 세조에게 정이품을 하사받고 귀한 대접을 받던 화려한 시절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태풍에 찢기고 솔잎혹파리에게 시달려 가지가 많이 잘려나간 체 추레하게 서 있는 600여년 된 나무가 볼 때마다 안쓰럽다.

 

 충청북도에 답사 와서 법주사를 빼면 되겠느냐고 제주도에는 하나도 없는 국보가 3개나 있는 법주사를 넣은 것이 이번이 세 번째고, 더구나 나는 지난 5월 속리산 문장대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들렀지만, 가까이 다녀갈 때마다 몇 번이고 좋아하는 보물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는 것도 문화보존회랍시고 이름한 단체의 유적답사에서는 꼭 필요하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첫날 점심은 메기매운탕과 버섯전골, 어제는 강원도 정선으로 건너가서 곤드레밥과 손두부를 먹었는데, 오늘은 무엇을 먹으면 좋겠느냐는 기사의 걱정에 산채비빔밥에 더덕구이를 곁들이기로 하고, 식당 아저씨에게 주문하며 비가 너무 와서 관람료를 받는 입구까지만 차가 갈 수 있도록 교섭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가까운 곳까지 차를 타고 갔다.  

 

 

 

 

♧ ‘호서제일가람’ 법주사

 

  비가 안 올 때 같으면 청설모를 찾아보며 자연관찰로를 걸었겠지만 비포장이라 바른 길로 들어간다. 얼마 못가 일주문을 바로 마주하는데 현판이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다. 바로 어제 찾았던 ‘의림지’를 기준으로 하여 그 서쪽을 호서지방으로 부르는데, 충청남북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호서의 기준을 김제벽골제나, 금강을 기준으로 한다는 설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속리산 법주사(俗離山 法住寺)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의신조사는 불법을 구하고자 머나먼 천축국으로 유학을 떠나, 공부를 마친 후 흰 나귀 한 마리에 불경을 싣고 신라로 돌아왔다. 의신조사는 귀경길에 절을 지을 만한 터를 찾고 있었는데, 나귀가 지금의 법주사 터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고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범상치 않은 생각이 든 스님은 주변을 살펴보고 수려한 산세가 가히 절을 지을 만한 곳이라 여겨 그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절 이름은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 즉 ‘부처님의 법(法)이 이곳에 머물렀다(住)’는 뜻에서 ‘법주사’라 했다고.  

 

                                                                           * 법주사 일주문

♧ 수리중인 법주사 팔상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금강문으로 들어서자 다른 절과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사천왕이 아닌 금강역사(나라연금강, 밀적금강) 혹은 인왕역사라 불리는 호법신장과 사자를 타고 앉아 있는 문수보살상과 코끼리를 타고 앉은 보현보살상을 배치한 게 특이하다.

 

 다시 들어가 사천왕문을 지나면서 보니, 바로 눈앞에 팔상전(捌相殿)이 사방으로 둘러쳐져 있다. 올 때 누군가가 수리중이라는 말을 했는데, 정말이다. 문화재청은 팔상전 맨 꼭대기의 상륜부가 기울어짐에 따라 이를 보수하기 위해 최근 5층 지붕과 상륜부를 해체했다고 한다.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해 수리한 것이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있어 팔상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붕은 꼭대기 꼭지점을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을 가진 사모지붕으로 만들었으며, 지붕 위쪽으로 탑 형식의 머리장식이 달려 있다. 

 

                                                                   * 수리중인 팔상전

♧ 쌍사자석등과 석연지

 

  그곳에 붙여놓은 여러 가지 글을 읽어보며 뒤에 있는 쌍사자석등을 찾았다.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은 신라 성덕왕 19년(72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 10척에 이르는 8각 석등으로 두 마리의 사자가 마주 서서 뒷발로 복련석을 딛고 앞발로 양련석을 받들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신라시대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신라시대 석조예술품 중 뛰어난 걸작 중의 하나로 평가받았기에 일찍 국보로 지정될 수 있었을 터.

 

 이번에는 돌아가 석연지(石蓮池)로 가본다. 국보 제64호로 지정되어 잇는 석연지는 신라 성덕왕 19년(72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서, 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 괴임을 만들고 다시 복련을 두른 굄돌을 올렸으며, 그 위에 구름을 나타낸 동자석을 끼워 연지를 받치고 있는 구조다. 원래 이 석연지는 법주사의 본당이었던 용화보전이 있었을 때 그 장엄품을 설치했던 것으로 극락정토의 연지를 상징하며 화강석으로 조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국보인 쌍사자석등(위)과 석연지(아래)

 

♧ 금동미륵대불

 

  돌아서서 금동미륵대불을 우러른다. 법주사에 올 때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원만한 상호(相好)가 ‘저 중생이 잊지 않고 다시 왔구먼.’ 하는 듯 하여 아는 체를 하고 머쓱해진다. 금동미륵대불은 용화정토에 이르러 깨달음의 법을 설하시는 미래의 부처님의 현존을 의미한다. 화강석으로 만든 높이 약 8m의 기단 위에 다시 높이 약 25m의 거대한 모습으로 만들어 국내 최대 규모이며, 소요된 청동만 해도 약 160톤에 이른다.

 

 조성 당시 불신을 13등분하고 다시 4조각으로 나누어 52조각을 용접으로 이어붙이며 올리는 수법으로 조성했다고 하니 그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렇게 6년 동안의 발원으로 조성공사 후 점안의식을 행하는 과정에서 세 차례에 걸쳐 하늘이 환하게 열리며 5색의 서광이 하늘을 수놓고, 흰빛이 미륵불로부터 치솟았다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불제자들이 전하고 있다. 기단부 아래에는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도솔천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용화전(龍華殿)이 있으며, 그 후 많은 신도들에 의해 개금불사가 이루어졌다. 여기 들어간 금은 3㎜ 두께로 84kg이 들어갔다고 써있다.

 

                                                                  * 금동미륵대불

♧ 대웅보전과 원통보전

 

  대불을 보고나서 걸음을 옮겨 원통보전으로 향했다. 원통보전(圓通寶殿)은 보물 제916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로 법주사 창건 당시 의신조사(義信組師)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776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중창하고, 임진왜란 떼 소실된 것을 1624년 벽암대사(碧巖大師)가 다시금 복원했다. 전각 내부에는 앉은키 2.8m, 허리둘레 1.9m의 거대한 목조의 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1호)이 자비가 넘치는 상호로 봉안되어 있다. 정방형의 특이한 건축양식으로서 조선 중기의 미묘하고도 화려한 건축미를 보여주면서, 주심포계(柱心包系)의 단층 건물로 사모지붕에 절병통으로 조성된 특유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은 보물 제915호로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인조 2년(1624년)에 벽암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총 120간, 건평 170평, 높이 약 20m에 이르는 대규모의 건축물이다. 안에는 앉은키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3신불(三身佛)이 안치되어 있다. 중앙에 봉안한 불상은 진실로 영원한 것을 밝힌다는 진여의 몸인 법신 비로자나불상 이고, 좌측에 안치한 불상은 과거의 오랜 수행에 의한 과보로 나타날 보신의 노사나불(아미타불)상이며, 우측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화신으로 나투신 석가모니불이다.

 

                                                                            * 대웅보전

♧ 사천왕석등과 마애여래좌상

 

  대웅보전 앞에 자리한 사천왕석등(四天王石燈)은 보물 제15호로 신라 성덕왕 19년(720년)경 제작된 우리나라 석등의 정형이라고 할 수 있는 8각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높이 3.9m에 이르는 이 석등은 지대석, 하대, 중대(간주), 상받침대, 상대(화사석),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 중요한 상대의 각 면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어 그렇게 불린다.

 

 나오면서 본 마애여래의상은 보물 제 216호로 사리각 옆 추래암(墜來岩) 암벽에 조각되어 있는 불상이다. 연꽃을 의자삼아 새겨 놓았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듯하다. 둥근 얼굴과 감은 듯이 뜬 눈, 그리고 두툼한 입술, 반듯한 어깨, 유난히 잘록한 허리 등 비사실적 추상성을 띠고 있다. 의자가 된 연봉은 연꽃잎이 불상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며, 발아래 지면에는 절반만 조각된 연화문상석이 놓여 있다.

  

                                                                         *  마애여래좌상

♧ 그 밖의 보물들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약속된 점심시간이 되어 일행을 재촉하여 나오기로 했다. 불심이 깊은 회원들은 가는 곳마다 축원을 드렸겠지만, 나를 포함한 보통 사람은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3개의 국보와 10개의 보물, 그리고 절 너머로 보이는 속리산의 풍광을 즐겨도 좋았으리라. 법주사를 중심으로 속리산의 천황봉과 관음봉을 연결하는 일대가 사적지이자 명승지이기 때문이다.

 

 돌아보지 못한 보물로는 조선 영조 42년(1766년)에 제작된 길이 14.24m, 폭 6.79에 이르는 초대형 괘불탱화(제1259호), 신라 33대 성덕왕 19년 (720년)경에 조성된 입상으로 향로를 머리에 이고 부처님께 향불을 공양하고 있는 희견보살상(보물 제1417호), 신라 성덕왕 때 주조되었다고 전해오며 높이 1.2m, 직경 2.87m, 두께 10.8cm의 거대한 쇠솥인 철확(보물 제1413호),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 병풍(보물 제848호), 법주사대웅전 소조삼불좌상(보물 제1360호),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1호), 복천암수후암화상탑(보물 제1416호), 복천암학조등곡화상탑(보물1418호) 등이 있다.

 

 

 

♧ 비 오는 법주사 - 나태주

 

참, 연꽃 같네

이내에 포근히

쌓인 가람

비를 맞으며 웃고 계신

금동미륵부처님

하늘 끝 휘어져 올라간

법당의 추녀

버선코

바다 밑에 노니는

순한 물고기 떼인 양

오가는 사람들

차암, 편안하네

예가 바로 깊고 아늑한 지구의

자궁 속일세.

 

 

○ 천수경 - 삼보사(三寶寺)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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