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창화 시집 ‘바람의 섬’

김창집 2014. 1. 3. 12:41

 

김창화 제2시선집

‘바람의 섬’이 나왔다.

 

첫 시집 ‘바다와 어머니’에 이어

두 번째인 이 시집은

도서출판 제주문화에서 발간했다.

 

총 5부로 짜인 시집은

제1부 계절

제2부 연민

제3부 삶

제4부 여행

제5부 고향(제주어 시)과

끝에 양영길의 해설을 실었다.

 

시 몇 편을 골라

한겨울을 밝히는

사철나무 열매 사진을 곁들인다.

   

 

♧ 공간 메우기

 

마루 출입문 맞은편 벽이

기울기가 심하다며

아내는

대나무와 난을 심는다.

 

하얀 한지에 묵향으로 심는

오죽과 한란

완성된 두 쪽 병풍이

주위 모든 것들을

열정적으로 껴안으며

기울어진 마루 공간의 벽을 받친다.

 

창 열어 맞는 봄바람

하르르… 바람에 걸린

오죽과 한란이 보내는

사각사각, 하늘하늘,

매혹적인 소리와 용자(容姿)

마루의 빈공간은 황홀하리만치

그윽한 묵향의 군자로

입주(立柱)하고 있다.

 

 

♧ 장송(長松)은 울고

 

늘 나와 지척에서 마주하는

하 세월 먹은 너분숭이* 장송들

바람 불어오면

아직도

말 못한 사연, 그 한(恨) 둘둘 말아든 채

쉬쉬 쉬… 소리로 우는

벙어리 속울음,

 

총소리 산울림 되어 구름 속에 흩어지던

무자년(戊子年)* 그날

그 애달픈 모습

바로 눈앞에서 있었다 하네.

봤어도 장님이 되고

트인 귀머거리가 되고

입 다물어 벙어리 되어

심지어 잠꼬대도 해서 안된다는…

하여

눈물 얼룩진 청맹과니 세상살이,

 

가는 세월

오는 세월

청송가지 솔잎만큼 숱한 가슴앓이 사연

해마다 불어드는

4월의 한(恨)바람 지날 때

맺힌 가지마다 쉬쉬… 쉬

서슬 퍼런 그 속울음

진정 침묵의 아우성이리.

---

* 너분숭이 :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4.3학살터(기념관)

* 무자년 그날 : 1949년 1월 17일. 북촌주민들이 학살된 날.

  

 

♧ 애월(涯月)에 가면 3

 

물가에 뜬 달

애월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시가 된다.

 

고내봉과 과오름 기슭의

초승달 모양 해변, 갯마을

가없는

물너울소리, 물새소리, 숨비소리, 뒷산의 솔바람소리,

쪽빛바다에 깔리는

금빛 노을,

달빛 흐르는 밤

선창의 벽파(碧波)소리,

밤마다 해상도시의 불빛,

소리와 빛만으로도 사람들 모두에게

시인이 되게 한다.

 

멍에 벗은 우마(牛馬)들

술렁술렁 들판으로 나가듯

탁 트인 바다머리 저편

돌올하게 솟은

큰 관탈, 작은 관탈섬에 눈 맞춘

닻 걷은 어선들 항로 자유롭고

사람들이래야 촌사람 어질고 순박한 심성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도 미더운 세상이네.

 

한담동의 술막, 대포사발에 담겨지는

노을 금빛,

선창가에서 소주잔에 감도는

은 달빛,

쪽빛, 금빛, 은빛, 솔향기…

빛과 향으로 빚은 술

뒷산의 솔바람 향기 소반(蔬飯)삼아

불콰한 얼굴로 그대와 마주하는

그윽한 한 잔의 술 내 사양치 않으리.

  

 

♧ 환해장성

 

가을 햇살과 고요로 꽉 찬

북촌리 서동해변

아직도 지켜내야 할

그 무엇이 남아 있는 듯

장성은

늙고 쇠약한 몸 사행(蛇行)처럼 누워

망각의 세월을 보듬고 있다.

 

삶의 터전을 지켜내야 했던

침묵으로 가리키는 그 기억의 길

그 어떤 살벌한 무력도 이 성을 넘지 못했고

다만 있다면 물새와 바람과 파도소리 뿐이라고.

 

세월에 떠밀렸지만

장성이 느긋한 세월과의 밀회

장구한 세월

사람들 망각으로 허물어지다 버틴

늙은 성담 위로 찔레열매 붉어

한 사내 가슴에 봉화 지피고 있다.

  

 

♧ 경주에서의 하루

 

황룡사구층석탑 기층의 균열 사이

깜깜한 검은 공간

그 안에 담긴 고도 천년의 반월성 역사

침묵의 푸른 이끼 위로 흐르는 달빛 따라

덩달아 흘러간 월명 스님 피리소리

아련하게나마 들릴 듯 말 듯,

 

첨성대 유연한 곡선으로 비치는

은하수 은 별빛

그 별빛 흐르는 길 따라

말달리며 부르던 혜성가(彗星歌)

화랑도 풍류 속 가무 보일 듯 말 듯,

 

달 밝은 밤의 처용은

아직도 살아 우리들 곁에 있고

경주사람 신라사람

신라말(言) 경주말(言)

내가 지금 신라 반월성 속에 들어와

우주판타지에 녹아든

신라인들의 가락

반월성에 흐르던

그 가무(歌舞)의 소리들을 가늠하고 있네.

 

 

♬ 제주 바다 - 이여도 사나(소리왓 14회 정기공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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