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할미꽃 핀 오름에서

김창집 2014. 3. 24. 00:18

  

며칠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오름에 할미꽃이 피었다.

 

봄이 되어 이 꽃을 맞으러 가는

궁대악, 돌미, 뒤굽은이, 낭끼오름

돌미에서는 한 일주일 전쯤부터 피었는지

벌써 자세가 흐트러진 꽃들도 보인다.

 

요즘 100세 시대를 맞아

시대를 반영하는지

아주 꼿꼿이 서서

햇볕을 즐기는 할머니도 있다.

 

마른 잔디의 포근한 품속에서

서둘러 피어난 꽃.

 

 

♧ 할미꽃 - 이남일

 

따뜻한 손길이 시리다면

얼마나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까요.

가슴에 묻는 것만으로 목이 마르다면

그 눈빛 얼마나 오래 마주해야 할까요.

지나온 세월만으로

마디마디 굽어버린 작은 꽃

조팝꽃 하얀 산비탈 밭이랑은

그리움이 훑고 간 강물만큼 패였지요.

마주하는 사랑만이 만남은 아니듯이

저 먼 길도 이별이 아닙니다.

당신과 나 그 사이길 어지러이

사랑이 해를 넘어 지천에 다시 피는

올해도 어머니

하늘빛이 무거워 굽어보는 당신 

 

 

♧ 할미꽃 - 김선우

 

 

 키 작은, 햇볕을 탐하지 않아 아주 작은 그녀는 발목 밑을 떠도는 바람의 한숨을 듣지

  

 하필 무덤가 같은 곳에서 그녀와 마주칠 때 사람들은 말하지 다소곳한 자태! 더러는 그녀에게서 외진 데 거하는 이의 슬픔을 읽기도 하지 그럴 때면 그녀는 어깨 더욱 곱수그려 삐딱하게 머리채 흔들며 킬킬, 혼자 웃는다네

 

 약속을 위해 꽃잎을 떨구지 않지 그녀는 하르르 눈물로 지는 꽃들을 경멸한다네(···)태어나자마자 늙어버리길 소망한 그녀, 바위를 쪼개며 생장하는 뿌리를 거부한 그녀가 어느 날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네(···) 

 

 

♧ 할미꽃 - 원영래

 

외로워 마라

살아간다는 것은

홀로서기를 배워 가는 것이다

잠시 삶에서 어깨 기댈

사람이 있어 행복하였지

 

그 어깨 거두어 갔다고

서러워 마라

만남과 이별은

본래 한 몸이라

엊그제 보름달이

눈썹으로 걸려있다

더러는 쓰라린 소금 몇 방울

인생의 참 맛을 일러 주더라

 

외로움이

강물처럼 사무칠 때에는

산기슭 외딴 무덤가

허리 굽어 홀로 피어 있는

할미꽃을 보라

이른 봄 꽃샘추위 서럽더라도

담담히

인고(忍苦)의 강을 건너는

허리 굽어도 아름다운

할미꽃을 보라. 

 

 

 

♧ 할미꽃 - 김선옥(운경)

 

 

할미꽃은 주인없는 무덤에 핀다

무덤의 주인이 할미인양

허리가 꼬부라져 청승맞다

생노병사가 한줌 바람이란다

 

누가 보아 주기나 하나

아무도 찾지않는 깊은 산골

산새의 울음에 토혈을 한다

적자색 선혈로 물든 꽃잎에

보송보송 돋아난 털들은

홍조를 띤 처녀의 뺨인양 하다

 

단 꿈에 젖은 꽃술엔

흰 나비가 거꾸로 메달려

달콤한 봄날을 즐긴다

할미꽃은 그제사 자기도 꽃임을

깨닫고 환히 웃는다  

 

 

♧ 할미꽃 - 조향미

 

다시 보지 못한 꽃

다시 살지 못한 땇

천천히 노을은 지고

그리운 노래 한 곡조

들릴 듯 말 듯

 

처음 내 목숨 기대었던

따스한 동산의 잔디

깊고 잔잔한 저 건너 못물

살아 생생 가슴 속에

반짝이며 찰랑이는데

 

지금은 어떤

풀꽃과 붕어 새끼

자라고 있는지

큰 빌딩 한 채 들어서

다 밀어 버렸는지 메워 버렸는지

 

그리운 듯 부끄러운 듯

솜털 보소소 수그린 그 얼굴

동산에 홀로 앉아

다시 보고 싶은 꽃

다시 살고 싶은 땅  

 

 

 

♧ 할미꽃(37) - 손정모

 

퍼런 실바람 나부껴

지열 아직 차디찬데

시린 풀숲에 서서

혼자 우는 너

 

너무 쇠진하여

잠시 눈을 감았는데

계절 바뀐 벌판에

봄 하늘만 남실거린다.

 

지기들 사라진 벌판에

서러운 게 외로움이더라고

먹먹한 눈빛에 떨며

하염없이 흐느끼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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