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5월 10일 일요일 맑음
오후에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에도 아침은 밝고 맑다. 어제 도착해 일출산채식당에서 하룻밤을 잔 일행 오나야(오름해설사 4기) 여섯 명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해먹고 주먹밥을 쌌다. 오늘은 반선에서 뱀사골 계곡을 따라 화개재에 오른 다음 연하천대피소에 이르는 13.4km 코스를 걷는다.
어제 일찍 도착해서 이곳 반선(伴仙)에서 등산로 입구와 계곡을 둘러보았는데, 두 계곡이 합쳐지는 지점이라 물이 많고 아름답다. 일행 중에는 이렇게 공기 맑고 아름다운 곳에 묻혀 살고 싶다고 했다. 식당가에서는 산채로 쓸 나물들을 다듬어 데쳐 널고 있었는데, 고사리나 연한 뽕잎 같은 것과 자리공도 있다. 자리공을 검색해보니, 유독성 식물인데도 잎을 데쳐 먹기도 하고, 뿌리를 신장염 치료 및 이뇨제로 사용한다고 한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냇가로 나섰는데, 산철쭉이 유난히 붉다. 이곳의 산철쭉도 수달래(水丹花)라 부르고 있어 찾아 봤더니, 다른 곳에서도 그렇게 부르는 곳이 있다. 수달래는 원래 경북 청송의 주왕산 계곡인 주방천에 피는 꽃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주왕이 후주천황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주왕산의 주왕굴에서 마장군의 화살에 맞아 죽을 때 흘린 피가 주방천을 붉게 물들이며 흘렀는데, 그 이듬해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꽃이 물가에 피어 있었다고 한다. 보통 산철쭉과 다른 점은 꽃잎에 20여 개의 검붉은 반점이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서도 여순사건 때 많은 사람의 피를 흘려서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닐까?
♧ 뱀사골의 유래
반선의 등산로 입구에는 ‘뱀사골의 유래’가 적힌 게시판이 서 있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지금의 지리산북부사무소 자리에 송림사(松林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실상사(實相寺)보다 100여년 앞선 대찰이다. 1년에 한 번씩 스님 한 분을 뽑아 칠월백중날 신선바위에서 기도드리게 하면 신선이 되어 승천한다 하여 이 행사를 해마다 계속하였는데, 이를 기이하게 여긴 고승이 독약이 묻은 옷을 스님에게 입히고 신선바위에 올라 기도드리게 했다.
그 날 새벽 괴성과 함께 기도드린 스님은 간 곳 없고, 계곡 용소에는 용이 못된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 그 후 이 계곡을 뱀이 죽은 골짜기라 하여 뱀사골이라 부르게 되었고, 억울하게 죽은 스님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절반의 신선의 준말로 이 마을을 반선(伴仙)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뱀사골에 얽힌 지명 유래는 다른 것도 있다. ‘정유재란에 불타버린 석실 부근의 배암사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지리산 북사면의 계곡으로 돌돌골이라고도 하여, 물이 뱀처럼 구불구불 흐른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 등이 그것이다.
♧ 깨끗하고 아름다운 뱀사골을 따라서
지리산 북부사무소에서 8시경에 출발한 우리는 자연관찰로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옆으로 시멘트 포장길이 나란히 있었지만 모처럼 맞는 경치와 깨끗한 물을 보며 물소리를 벗 삼아 걸으니, 무거운 배낭도 힘들게 느낄 수 없었고, 피로감도 느끼지 못했다고나 할까? 건강을 체크해 보고 싶었던 것이 이번 종주에 참가하는 한 가지 이유였는데, 조금 걱정했던 것과 달리 발걸음이 가볍다.
뱀사골은 만수천 계곡 주변으로 산내면의 전체를 포함한다고 했다. 산내 삼거리에서 운봉과 인월로 빠지는 남천과 실상사를 지나 남동진하는 남천의 부근을 빼고 나면 나머지 산내면은 모두 뱀사골 내에 있을 정도라고 한다. 산내면 덕동리, 부운리, 내령리, 입석리, 장항리가 뱀사골 내에 포함된다.
보통 등산로로 말하면 반선에서 반야봉까지의 계곡 약 14㎞를 뱀사골이라 한다. 뱀사골 등산로는 완만하고, 나무가 울창하여 여름에는 기온이 낮고, 수많은 폭포와 소와 반석, 절벽 등이 전설과 함께 나타나 뛰어난 경관미를 보여준다. 소룡대, 탁룡소, 뱀소, 병풍소, 간장소, 단심폭포 등의 명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야봉은 오르지 않고 화개재에서 동쪽 토끼봉으로 오를 예정이다.
♧ 얼레지와 봄꽃의 향연
보통 숲과 마찬가지로 때죽나무와 서어나무가 많고 신갈이나 떡깔나무, 졸참나무 등이 보인다. 특이한 수피 탓인지 노각나무가 눈에 많이 뜨이고, 함박꽃이 봉오리를 맺은 채로 많이 보인다. 붉은병꽃은 아래쪽에는 한물갔고, 찔레꽃이 한창이다. 왜갓냉이가 하얗게 무더기로 핀 것도 있다.
탁룡소, 뱀소, 병소, 병풍소를 거치다 길과 만나는 곳에 민가가 하나 있었는데, 간단한 음식과 차를 파는 곳 같다. 울타리에 하늘매발톱꽃과 금낭화를 심어 놓았는데, 꽃이 한창이다. 한쪽 밭에는 취나물, 참나물, 산마늘 같은 산나물 들을 심어 놓은 것이 한창 물이 올라 있다. 금낭화는 집에 심는 걸로만 알아왔는데, 야생도 많다.
거의 화개재에 이를 무렵부터 병꽃과 철쭉이 제색으로 남아있고, 말발도리와 얼레지를 만나게 되었다. 이후 치밭목을 거쳐 무제치기폭포까지 이르는 동안 계속해서 우리에게 힘을 준 것은 얼레지였다. 마침 제철을 맞아 매혹적인 색을 뽐내는 이 꽃을 우리는 제 때에 만나 생전 볼 것을 다 본 셈이다.
그와 더불어 우리를 반긴 꽃은 피나물 노란꽃, 가다오다 또 동이나물 꽃, 봄맞이꽃, 별꽃, 현호색, 애기나리, 구슬붕이 등이었다. 현호색이 그렇게나 다양한 보랏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이번에 깨달은 바였다. 제승대, 간장소, 막차를 거쳐 뱀사골대피소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그 주변에 핀 민들레 군락은 에석하게도 서양에서 들어온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 지리산 산행 - 김경숙
-뱀사골에서
거침없이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에
멀어져 간 귀가 열리고
반짝이는 푸른 물빛에
어두워진 눈을 씻는다
젖은 몸 낮추어 물살 헤치고
무거운 그림자 끌고 다닌 발 담그면
몸 속 깊이 박혀있던 독소들 하나씩 빠져나와
흐르는 물 따라 줄행랑친다
아, 무릉도원이 여기던가
산이 좋아 산 찾아 길을 나서지만
산다는 것은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오르막, 내리막 크고 작은 고개를
몇 개씩 넘으며 가뿐 호흡을 고르는 것이다
앞만 보고 조급한 마음으로
정상을 향해 바삐 걸었다면
이제는 숲도 나무도 눈여겨보고
숲에서 나는 작은 소리도 귀담아 들어
무수히 많은 발자국 아래
힘없이 스러져 간 작은 미물들도
다 살아가는 이유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 마중 - 강상윤
뱀사골 산장 쇠물푸레 나무
수많은 잔가지들이
칼날 잎사귀들을 물고 있다 이끼비를 맞고 있다
엷은 이끼비가 나무 색깔마저 풀어 놓는지
회록색이다 새벽 빛깔이다
희뿌연 새벽마다 다리를 절뚝이며
걸어오는 아버지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풀이 아니라 나무이고
아버지는 들이 아니라 산이라는 걸
나는 지리산에 와서야 알았다
쇠물푸레 나무 한 그루
산장 마당에 서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들을 기다린다
산장 굴뚝의 밥짓는 연기가 아버지를 기다린다
쇠물푸레 나무 칼날 잎사귀에서
빗방울이 눈물처럼 떨어진다
수많은 잔가지에 물린 칼날들이
하나하나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이끼비에 온몸이 혼곤하다
어디선가 아버지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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