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남 산문집 ‘섬, 바다의 꽃잎’을 읽다보면
여기저기 꽃시들이 나온다.
그녀가 얼마나 꽃을 사랑하는지와
또 그의 삶과 문학이 얼마나
들꽃과 밀착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 시를 여섯 편 빼어내 올리면서
하나하나 이름과 맞는 사진을 붙여 올리는 게
자연스럽겠으나
찾기도 쉽지 않고 시기에도 안 맞아
요즘 주변에 하얗게 피어난
산딸나무 사진으로 대신한다.
♧ 돌매화
와흘 어디 농원길
어머니의 다리품 절뚝이며 가는 길
내 밟아보기 전에는
흔들리지 않으리.
사는 게 만만치 않아
가슴 저미는
떼 바람이 몰려와도
싱겁게 드러눕지 않으리
저 혼자 메아리 울리는
달빛을 움켜쥐고
아흔아홉골 ‘말없는 사원’을 걸어가기까지는
더 이상 내려서지 않으리.
♧ 한라구절초
찬 이슬 또르르 굴리며
한 아름 바람 꺾어들고
산을 내려 왔지
버릴 것 다 버리고
여든일곱 내 어머니의
아릿한 눈빛 너머
흰 옷의 신부로 있고 싶었지
아스팔트 위를 황량하게 떠도는
자동차 바퀴들을
순하디 순한 꽃잎의 이름으로
덮어주고 싶었지
♧ 설앵초
마음은 이미
수만 말의 콩을 볶았다지요.
사랑도 미움도
전농로 왕벚나무 하얀 꽃비 날리 듯
지우고 나면
그대 마음에 깊은 강물로
흐르고 싶었다지요.
그래요
탐라계곡 푸른 이끼를 딛고 서는
작은 꽃잎의
발그레한 외로움도 괜찮지요
그런 호사도 어디에요
그만하면
내 영원한 잠마저 흔들어 깨워
오라동 웃세오름 언덕을
기꺼워 내려서겠습니다.
♧ 하늘말나리
줄게 없어도
자꾸만 줄 것을 찾아 내다가
주근깨만 얼굴 가득
피워내는 사람아
뜨거운 햇살이 차마 부끄러운
들녘에서
그대 사랑이 타고 있는 것을
보네.
♧ 개요등
참아라, 참아라
아니다, 참지 말아라
누가 네 발목을 잡고 올라타거든
에잇 쌍! 하고
걷어차 버려라
아무도 네 피맺힌 목구멍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가거라
구질하게 뒤엉켜 잊지 말고
네 좋은 곳으로 가서
룰루랄라
살아보거라
♧ 꿀풀
진드르 곳자왓에
할애비 고장
혼저 혼저 서둘지 말앙
쉬멍 놀멍 하라고
4.3 때 먼저 간 이가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할애비 고장 꽃방석에 꿀향기를
채왔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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