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봄호의 시와 민백미꽃

김창집 2014. 6. 6. 00:11

 

모처럼 올라갔던 한라산

6월 첫날인데도

민백미꽃이 피었다.

 

김순남 시인이 이번에 발간한

산문집 ‘섬, 바다의 꽃잎’에 꽃말을 찾아보니,

‘그대 곁에 머물고 싶어요’다.

 

민백미꽃은 박주가릿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높이 30~60cm로, 줄기를 자르면 흰 젖 같은 유액이 나온다.

잎은 마주나고, 5~7월에 흰 꽃이 산형 꽃차례로 달린다.

뿌리는 한방에서 해열제나 거담제(祛痰劑)로 쓰인다.

우리나라, 일본, 만주 등지에 분포한다.

 

 

 

♧ 통영에 앉아서 - 김수열

 

동짓달 초사흘 달이 솜털 같이 따스한

어느 시인의 죽일 듯 사랑한 통영에 와서

아구수육에 낮술 한 잔

옛 장수가 은하에 병장기를 씻고 싶다던

큰집에 들러 시원스레 똥을 누고

어스름한 다찌집에서 두 잔 그러다가 또 한 잔

 

다음날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

동피랑에 올라 어묵 두 개 유자차 한 잔

보길도 시인이 소개한 중앙시장 물메기집에서

맑은 해장술 한 잔 다시 한 잔

 

해는 아직도 중천에 그저 그렇게 떠 있는데

어느 영화감독이 사랑한

바다가 보이는 나폴리에 비스듬히 앉아

이렇게 되도 않은 시 나부랭이를 끄적이면서

문득 산다는 게 지나치게 행복하지도 앉지만

그렇다고 마냥 불행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통영에서도 그렇지만 내가 사는 바다에서도

바다는 늘 바다였고

나는 언제나 나였으니까

너도 그렇고 

 

 

♧ 싹아지 많은 사람들 - 양영길

 

싹수가 푸르등등하고 싹아지가 많은 사람들이

싹수가 노랗고 싹아지 없는 것들에게

‘어림도 없다’, ‘택도 없다’고 큰소리를 친다

잘 먹고 때깔 고운 사람들일까

 

싹수가 노랑하면 어떻고

싸가지가 없으면 또 어떠랴

 

‘택’인지 ‘어림’인지

좀 있는 사람 몇이 머리를 맞대고

싹수가 노란 이야기로 궁시렁거리더니

‘국물도 없다’고 목청을 높이다가

멱살을 잡거니 발길질을 하거니 넘어지고 뒹굴고

아!수라장이다

 

허파에 바람 든 사람일까

날로 먹으려던 사람들일까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들고

연신 고개를 숙여대며

전화질이 한창이다

 

바지저고리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일까

오지랖을 넓히려는 사람들일까 

 

 

♧ 파격(破格) - 김광렬

 

물속에 나무 서 있고

다소곳이

초승달 내려앉았다

 

바람이 발뒤꿈치 들고

사분사분 걸어갈 때

물살이 사르르 흔들렸다

 

나무도 초승달도

살짝 이마를 찡그렸다

내 눈살도 찌푸려졌다

 

허나, 미워하지 마라

 

때로는 파격(破格)이

살짝 삐쳐나간 눈썹처럼

고울 때 있으니 

 

 

♧ 혼자 - 김규중

 

가족 네 명이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작업복을 입은

한 남자가 들어와

국밥을 시키고 후닥닥 먹고 간다

 

나도 여러 번

저런 적 있다 

 

 

♧ 매화차에 손 끝은 붉고 - 김세홍

 

푸슴,

눈발이 날리는 창 앞에

흐드러진 능수매화 촉이 붉고

간밤에 찾아온 벗을 맞아

젊지 않은 벗이

옹알이하려는 것들을 몇 줌씩 놓아

찻잔 속에 끓는 물을 붓는다

자전의 소용돌이 따라

양지의 날 수를 다 셈하는 봉오리가

천천히 코끝에서 만개하고 있다식은 햇볕에 흐느적이는 연분홍

 

이 참살이 애틋하다

우린 좀 더 늙어도 되겠지

수 분의 침묵으로 세상일에 달관한 척,

말하고 싶은 것을 견뎌낸

목구멍에서 망울진 고백으로

둘 사이에서 피고 지는 시간이 총명하다

 

어떤 눈물석임은

보름달을 짜부라지게도 하고

어떤 흐릿한 눈은 반달을

만월로 만드는 마술을 펼쳐 보인다

나에게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은

늘 잘 닦인 것만은 아니여서

어떤 날은 흐리게 봐야

붉게 물든 손끝이 보일 때가 있다 

 

 

♧ 세상을 듣다 - 김문택

 

새는 오늘도

아파트 옆 공원 나무에 앉아 노래 부르지만

내 귀는 안으로 굳게 닫아 걸었다

 

나뭇가지를 흔들며 비밀인 양

누락된 골목을 낱낱이 털어 놓는다

집이 거기 있다고

들어가면 따뜻하다고

 

내가 찾는 건 집이 아니다

집으로 가는 길 동행자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너는 늘 문 앞에 와서

세상을 지껄이지만

닫아 건 내 귀는 한밤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