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사람주나뭇잎과 가을 시편

김창집 2014. 11. 3. 00:33

 

모처럼 오름 식구들하고

산으로 나들이 갔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시간이다.

 

이른 아침에는

날이 좋았었는데

모이는 시간이 되어서야

비가 내리고 을씨년스럽다.

 

그래도 서귀포 쪽에는 맑을 것이라 기대하며

5.16도로를 넘는데

길가에 차를 세워둔 것을 보면

비 내리는 한라산에 많이도 올랐다.

 

숲터널에도 제법 울긋불긋

나무들이 예쁘게 물들었다.

 

우리는 남원읍 한남리

머체 숲길을 걷기로 하고

차를 세우고 출발하는데

바람이 제법 세다.

 

숲으로 들어가

상록수와 낙엽수가 섞인 길을 걸으며

색이 변한 잎사귀들에게 눈길을 준다.

 

이곳은 남쪽인데다가 지대가 높지 않아

이 사람주나무만 제일 도드라지고

다른 것들은 아직도 시퍼렇다.

 

시간이 없어 먼저

사람주나무 고운 잎을 뽑아

가을 시편과 함께 올린다.

   

 

♧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가을 강 - 김근이

 

아이야

가을이 한끝 짙어 가는 구나

이 가을을 바라 볼 때는

마음 가득히

그리움을 깔고 그려 보아라

그러면 가을은

외진 길에서 만나는

코스모스 꽃잎만큼 이나

애틋한 느낌으로 다가 올 것이다

 

저녘 햇살에

익어가는 당풍 잎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호들갑을 떨면서 날리는

하늘 자락은

왜 저리도 슬픈 색깔일까

 

저 하늘 끝자락을 잡고

돌아가던

소녀의 뒷모습이

코스모스 꽃잎위에 내려 안는 구나

 

아무래도 가을은

우리네 마음속으로

흘러드는 강물인가

그 강물을 따라

나는 지금도 그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구나.  

 

 

 시월 마지막 밤 - 최영희

 

생각에 잠긴 가을이

또, 한 잎의 낙엽을 지우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허(虛)한 가슴으로 돌아눕는 가을아

난, 오늘 밤 네게

한 편의 시를 보내고 싶다

 

풀벌레 소리마저

잦아드는,

누군가 낙엽 밟는 소리도

이제는 차라리 평화롭지 않은가

어둠마저 평온한 창밖엔

고요가 내리고 있다

 

아! 이제는 떠나는

내게서 떠나는 사랑까지도

사랑하고 싶다.

   

 

 10월 끝자락에서 - 김덕성

 

떠나는 아쉬움이

전율로 흐르는 고즈넉한 가을밤

 

찬바람과 함께

깊어가는 밤

불일 듯 일러나는

마지막 남은 진한 그리움

 

세월이 안겨준

그녀와 만나

꿈인 양

나눈 달콤한 사랑 이야기

익어 가는데

 

어느 새

붙잡을 틈도 없이

가버리고

흔적만 남기려 하는구나

 

기어코

내 가슴에

또 하나의 사랑의 불꽃을

지피고 떠나려는가.

10월이여!

   

 

 가을은 홀로 아름답지 않다 - 송정숙(宋淑)

 

가을은 일상적인 하루를

멋지게 만들어 준다.

거리를 걷고 싶고

창가에서 차를 마시고 싶고

떠나고 싶고

잊혀졌던 사람이 그립다.

 

가을은 일상적인 하루를

멋지게 만들어 준다.

책 한 권이라도 읽어야 될 것 같고

미웠던 마음도 사라지고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곁에 누군가 두고 싶다.

 

가을은 그렇게 홀로

아름답지 않고

모두를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 가을 산행 - 노태웅

 

산에 오르다가

잠시 머문 자리

낯선 그림자 마주하며

비켜 앉은 길섶에

삶이 무거운

짐 하나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에 오른다.

 

유독 너만이

마음 붉은 단풍 되어

뜨거운 사랑의 흔적 남기고

툭툭 가슴 치며 다가오는

붉은 단풍의 환호 속에

나는 가을 산을 오른다.

   

 

♧ 가을 그리움 - 오보영

 

그립다

모든 게 다

 

그저 막연히

 

그리워진다

 

그때

정성으로 기울이던 그 일도

진솔하게 주고받던 마음도

편안하게 쉼을 얻던 그 곳도..

 

그립기만 하다

 

할 수만 있다면 한 번 더

그 때

그 곳

그 느낌으로

 

돌아가서

 

함께 하던 사람들과

 

마음으로 통하는 진실한 사랑을

 

한껏 나누고 싶다

   

 

♧ 가을 엽서 - 목필균

 

입추를 넘어선 바람이

벚나무를 붉게 물들이네요

어느새

은행잎도 노랗게 물들어가고

 

내리막길처럼

가파르게 단풍드는 이즈음

몸살기는 없는지요

 

독감예방주사로 겨울을 준비하고

바바리코트를 꺼내듭니다

 

가을 들녘을 바라볼 여유는

사치였던 그 시절

커피 한 잔의 대화로 만족했는데

 

이제 주름진 세월 사이로

빠져나간 사랑의 느낌표들이

시린 손끝에 잡히네요

잘 지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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