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노로오름의 단풍

김창집 2014. 10. 27. 00:20

 

오늘 맨 처음으로

향우회 식구들과 오름 가는 날

단풍을 기대하며

조금은 높은

노로오름으로 차를 몬다.

 

햇빛이 밝은 덕에

숲은 노랑에서 빨강까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단풍은 아직

그리 신나게 붉진 못했는데,

제주에서 한라산을 빼고

그렇게 새빨간 단풍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일교차가 20도가 안되는데다가

기온까지 갑자기 내려가지 않고

중요한 것은 몇 차례의 태풍에

잎에 긁힌 상처로 바이러스가 침투해

제대로 붉게 만들지 못한다.

 

찍고 와서는 이 정도뿐이지만

현장에서는 제법 풍성하였다.

   

 

♧ 단풍 - 권순자

 

그림자 서성이는 산자락

잎새마다 빛들이 다투어 비집고 들어서네

 

누구의 갈망이 저리도 뜨겁게 달아올라

산마다 붉게 적시고 있는지

 

살 에이는 차가운 그리움이 허공을 맴돌다가

잎새마다 진하게 번져드는지

 

뒤척이는 누군가의 아픔이

흥건하게 밤을 새워 산마다 적시고는

 

남은 미련 몰래 태워

나무마다 붉게 걸쳐 놓고 있네

   

 

♧ 단풍 길 따라가다 - 목필균

 

달리다가

뛰어내리고

뛰어내리다가

부서지고

부서지다가

주저앉고

주저앉다가

다시 일어서서

가는 길

 

곡선으로도

직선으로도

길이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오르막길

지지고 볶는 숨소리

늘 푸를 것 같은

아우성이었는데

 

안부도 느슨한 이즈음

내리막길에서 돌아보면

나이만큼 물든 내가

단풍 길 따라가고 있다  

 

 

♧ 단풍무정 - 임영준

 

별로 해 놓은 것도 없이

한심하게 세월만

깨물어 먹은 것처럼 보이나요

그렇다고 그렇게 노골적으로

볼 붉히며 비난만 하면 어떡합니까

게다가 그리도 처절하게

하루라도 더 버텨보려고

안간힘을 다해 부여잡고

핏발을 세우고 있으니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부끄럽기만 한 나는 정말 어쩌라 구요

   

 

♧ 단풍 - 권도중

 

지난 그 햇살들을 다 받아서 간직타가

한 줄기 빛 뽑아서 안개 속을 가고 가고

문득 저 벼랑에서도 붉게 타는 네 안부

 

그 인연 바람 되어 구름으로 흐르다가

한 하늘 가득하게 네 눈빛 저리 깊고

가을로 다시 돌아와 곱게 타는 이 빛에

 

한 역사 끝난 후에 한 점 붉은 꽃이 피면

우리 이 젊은 한때 울고 싶은 사람아

목울대 울대 속으로 네 생각이 메인다

   

 

♧ 내 마음에 단풍들면 - 허명(허광빈)

 

그대 오는 길목 어귀에

남루한 매무새 바삭이며

항가새 꽃잎처럼 화장발 까칠한

황홀한 빛깔이 아닐지라도

이토록 그리던 사람 만나는데

내 어찌 마음의 진실 아낌없이 주지 않겠는가

 

살아온 아픔 하나씩 내려놓으며

그대 안아 씻기고

닦아 보듬으며

그대 마음의 갈피에 차곡차곡 끼워

그리움의 세월 젖은 몸 말려

내 모든 것 불태워보리라

 

단풍잎 혹여 달빛처럼 쏟아지는 날

한줌의 눈물 아름답게 흘려보리라.  

 

 

♧ 단풍 지는 가을 - (宵火)고은영

 

지리한 기다림에 가을은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설렘을 저울질하다

단단히 닫아 건 가슴을 월장하고

해일처럼 밀려 온 것이다

 

낙하하는 것들은

험한 세상의 침묵을 깨트리지는 못해도

나약한 군상들의 식어버린 마음을 움직이고

굳은 가슴에 돌을 던지는 것이다

찡한 파문이 올 때까지

 

아, 어느 여백의 한 귀퉁이를 허물며

다시 쓸쓸한 어둠의 사각지대로

흥건히 젖어 오감을 적시는 낙엽은

팔랑거리다 쌓이는 것이다

날마다 한적한 창가에 배부른 그리움을

하나씩 게워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푸른 혈맥을 빨며 촘촘히 돋아났던 날개들이

하나씩 외롭게 부서져 가는 기로엔

햇살 든 단풍이 영혼에 가시로 박히고

사레든 목 울대로 메마른 기침만 수시로 콜록대는 것이다

발열의 불꽃들이 적조한 시간마다 빨간색으로

뜨겁게 뜨겁게 떼지어 꽃을 피우는 것이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주나뭇잎과 가을 시편  (0) 2014.11.03
권경업 ‘꽃을 피운 바람의 독백’  (0) 2014.10.31
섬 바람이 분다, 소리왓 공연  (0) 2014.10.26
한라구절초의 순결  (0) 2014.10.22
가을 숲길에 나도송이풀  (0) 2014.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