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들른 김영갑 갤러리
뒤편으로 들어가
개모밀덩굴 자리를 보았더니
많이 줄어
건물 벽 쪽에만 조금 남았다.
처음 보았을 때
이런 것도 다 있다싶어
한참동안 나의 걸음을 붙잡던 것이
이제는 너무 익어
보고 싶은 것이 되었다.
아 어쩌랴
세상은 이렇게 가까워지기도 하고
안 보면 멀어지는 것을.
몇 컷 찍어다
화려하던 시절의 옛 모습을 보강,
양전형 시집 ‘꽃도 웁니다’의 시와
같이 싣는다.
개모밀덩굴은 쌍떡잎식물 마디풀목 마디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적지리(赤地利)라고도 하며 양지바른 바닷가에서 자란다.
줄기는 길게 뻗으면서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며 덩굴 모양이 되는데,
잎은 길이 5∼9cm로 어긋나고 타원형이며 끝이 뾰족하다.
잎 가운데에 화살표처럼 생긴 짙은 녹색 무늬가 있다가
꽃이 필 때쯤 잎의 한 부분이 붉은빛이 되기도 한다.
8∼10월에 가지 끝에 여러 개의 꽃이삭이 달리는데,
꽃은 분홍빛을 띤 흰색이고 화피의 길이는 3mm 정도이다.
♧ 꽃도 웁니다
너도 꽃이고
나도 꽃이지요
우리들은 모두 꽃숲에 삽니다
꽃처럼 울며 살아라는 말은 없어도
꽃처럼 웃으며 살라고들 하지요
밤낮 없이
아무데서 만나도 웃고
싹둑 잘라 꽃병에 꽂아놔도 웃고
몸 팔려
이 사람 저 사람에 옮겨져도 웃고
발길에 밟히거나
바람에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며 웃고
차가운 땅바닥에 꽃말림 소재가 되어도
꽃은 마냥 웃지요
꽃도 웁니다
휘황한 불빛아래
사람꽃들 소란스러운 벚꽃축제장 꽃숲
한 무리의 바람이 찾아듭니다
무슨 사연 전했는지
꽃눈물들 한 잎씩 우수수 떨어집니다
눈물보다 더 아프게 날립니다
세상이 서럽도록
하얗게 웁니다
꽃은 방실방실 웃는 것만이 아닙니다
꽃샘이 차가운 밤
꽃숲에 앉은 나도
꽃송이가 허무해서 웁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품고 꺼이꺼이 웁니다
♧ 사계리 해당화
너울지며
바람 이고 달려와
산산조각 부서지는 숙명 파도가
흐드러진 꽃무더기 보았는 듯
오늘따라 갈기 높이 세웠다
갯마을 해당화는
바람의 속내를 단숨에 읽는다
그렇게 수십 년
모래밭에 내린 꽃의 뿌리는
외로움만 무시로 밀어 올린다
외로움으로 피워 낸 꽃은
풀풀 나는 향기가 요요롭다
어느 바다에서 흘러온 바람도
이 향기를 비켜갈 수 없다
이 잠결의 꽃잎을
한 번씩 품고 나서
풀린 다리 휘청이며 풀숲에 스러진다
외로운 향기 흐드러진
사계리 해당화
몰려드는 바람 모두 품으며 산다
멀리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가끔, 눈물 뚝뚝 떨구며 산다
♧ 외로워서 못 가겠다
가도 가도 다 못 가는 건
정말 외롭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가는 길
폭풍바다 뒤집어진들
불바다 너울에 삼켜진들
큰 걸음으로 달려가지 못 하겠나
어느 빙하에 가두워진들
녹여내지 못 하겠나
강 건너 북망산 올레길
함께 가지 못 하겠나
가도 가도
외로워서 못 가겠다
그대 안에 내가 없어
허전해서 못 가겠다
♧ 책장 속 군중
쉬는 날 정말 간만에
연륜 깊은 제주도서관
책장 안을 가만히 본다
저마다 다른 생각을 품고
혼잡한 세상 틈 비집으며
일제히 일어서서
골 빈 내 허상 다 읽은 듯
궁시렁궁시렁
나를 비판하는 군중들
♧ 마라도
누가 살가운 아이 하나 낳아
이리 멀리 보내두었나
태평양 닮은 어미 소곱에서
염치없이 보채던
내 염통 한 토막인 듯
모태 속 내 둥근 낮잠인 듯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져
아스라이 떠있는 섬
외롭다고 울 필요는 없다
끼룩 끼룩
괭이갈매기 젖 보채는 소리
바람 타고 저승문 두드릴 때마다
젖가슴 다 내주고도 모자란
굽은 등 내 어머니
흰머리 날리시며
남단 바닷길 허위허위 달려오신다
♧ 가을 이야기
1
가진 것 탈탈 다 털어 내는
은행나무
버려진 것들은 바람 몫이다
바람이 비틀비틀 굴리며 간다
맞다 맞다
가을은
떨어져 내려와서 구르며 가는 것
2
가을은
혼자서 왔다가 혼자 가는 것
포르르 떨며
내 안에 단풍들 내려 쌓인다
홀로 내게 들어와
낙엽을 바삭바삭 밟고 있는 누구여,
이제는
바람을 휘휘 감아 넣겠으니
어깨를 움츠리고 옷깃을 세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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