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째이던가, 갑사(甲寺) 가는 길이
그러나 이번처럼 11월초에 걸어가는 건 처음이지 싶다.
대개는 우리 탐문회가 주로 답사하던 9월이나 2월, 아니면
12월에 내가 재직했던 학교의 국어 선생님들을 모신 적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나들이는 재작년(2012) 5월 16일
오름 가꾸기 우수 단체 회원들과 계룡산 등산을 위하여,
갑사에서 금잔디고개, 삼불봉, 남매탑을 거쳐
동학사로 내렸던 종주 때다.
하지만 이번엔 벌써 색깔이 달랐다.
마지막 남은 단풍과 다른 잎사귀들이
고목들과 함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앞장서서 그 풍경을 탐닉하려는데
카메라가 말썽을 부려 살살 달래며 몇 컷 건진다.
부처님이 다음 단풍이 실할 때 다시 오라는
깊은 뜻으로 알고, 허여한 정도로 만족한다.
계룡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갑사는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백제시대에 고구려 아도화상이 창건했고,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4년 인호대사가 다시 중건한 걸로 알려져 있다.
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256호)와 부도(보물 제257호),
구리가 8천근이나 들었다는 동종(보물 제478호)을 비롯한
보물 6점 외에도 지정문화재 9점,
비지정문화재 10점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참엔 대웅전이 몸을 가린 채
불사를 진행하고 있어,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지난번은 용문폭포 쪽으로 갔지만
이번에는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연천봉, 관음봉에서 삼불봉으로 돌아
다시 남매탑을 거쳐 동학사로 내릴 예정이다.
♧ 갑사 가는 길 - 이운진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는다면
그래서 한 자리에 오래 서 있어야 한다면
거기, 서 있고 싶네
일주문 넘어가는 바람처럼
풍경소리에 걸음 멈추고
그곳에서 길을 잃고 싶네
산그늘 물소리 깊어져서
늙고 오래된 나무 꽃이 지고
꽃 피운 흔적도 지고 나면
말(言)까지 다 지우는 마음처럼
수만 개의 내 꿈들 떨구어 내는 일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저, 먼 길 끝나지 않았으면
♧ 갑사에서 놀다 - 박진성
상수리나무가 도토리묵을 소환할 수 없듯이
내 몸은 병 以後이후다 11월 갑사
술 친다,
조껍데기 동동주가 조껍데기로 환원될 수 없듯이
나는 병에 대해 너무 함부로 말해 왔다
도토리를 알약에 기대지 말자
漫醉만취해서 대웅전 간다
상수리나무 건너 상수리나무,
대웅전이 절 안에만 있는가 오체투지로
간다 술 취하면 어째서
뿌리를 더듬게 되는가
예리하게 절 마당을 자르는 불빛 한 칼
엎드려 구토,
病병이여,
네가 해탈하겠느냐 내가 해탈하겠느냐
토사물이 은행잎에 섞여
지장보살의 병을 받아내리라
상수리나무 거기 있는 이유 알겠다
칠 년 간 몸에 쌓았던 알약,
물관에 섞여 잎을 물들인다
상수리 상수리 독경 소리,
부처다
♧ 갑사 - 심억수
일주문 지나다 있는 저 소나무
백년도 넘게 참선 중이다
그 옆에 웅크려 있는 바위는 또
천년도 더 넘게 묵언 중이다
지나가던 바람이 대신
찰랑이는 또랑물에 목을 축이고는
그 옆 은사시 나뭇잎을 마구 흔들어대며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알고 보면 그 말도 사실은
말로 하는 참선이고 묵언이다
백년도 넘게
천년도 더 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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