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 좋은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구경할 게 많아서 그런지
그도 저도 아니면 공짜로 갈 수 있어서인지
언제나 해동 용궁사海東龍宮寺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이제는 또 갈맷길로 이어지는 곳,
12지 신상부터 시작되는 절 입구에서
곳곳에 세상 좋은 글귀 다 모으고
동전 던지는 곳도 만들고
용도 만들어 놓고
한쪽 편에 이렇게
동자승들을 모아 놓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다른 데서는 안 찍히던 카메라가
이곳에서는 아무 저항 없이 찰칵찰칵 잘 찍혔다는 거였다.
고 녀석들이 티 없는 모습 앞에
카메라 지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많이도 찍었다.
♧ 동자승 - 김정호(美石)
속세의 꿈은 산사에 묻고
푸르나니 깍은 머리 빛은
해탈을 꿈꾸는가
세월의 주름을 접고
참선을 하는 동자승이 되어
여린 가슴에 업보를 새긴다
목탁을 두들기는 것이
불심이며 묵시의 가르침이라고
백년을 이겨내며
또 다른 세상을 연다
너는 정녕 그 풋사랑
연민의 정을 잊을 수 없어
목탁소리로
세상의 고뇌를 대신하는가
♧ 가을 칠장사 - 김승동
칠장사의 가을은 지금 묵언 중이다
법당 한쪽에 들어앉은
동종도 고개를 숙이고 있고
처마 끝에 메 달린 목어도
눈을 감고 있다
동자승이 빗질을 한 듯
하늘은 칠현산 가장자리에
구름을 밀어 놓은 채
쪽빛을 풀고 있고
선방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 한 켤레 위에는
햇살도 시간도 멎어있다
나한전 앞에 촛불을 켜고
엎드려 두 손을 모은 불자도
고욤나무 아래 허리를 굽힌 채
부처의 말씀을 줍고 있는 중생도
모두 말은 없고 고요한데
해소국사가 대숲에 새겨놓은 법어만
대웅전 마당으로 내려와
들릴 듯 말 듯 풍경을 흔들고 있다
♧ 염불암 - 박얼서
금시 염불소리가 버선발로 뛰쳐나온다
백팔번뇌 부여잡고 미소 짓는 불심
이어진 발길마다 마음 씻는 도량
겉치레 이미 해탈한지 오래되었다한다
웅려하고 너볏한 대웅전 하나 없고
두 손 모을 돌탑 하나 서 있지 않아도
고향집처럼 굴뚝새 마음 놓고 드나드는 암자
자신 있게 궁해 보이는 소박한 법당이
부처를 실천하는 계율이로다
큰 바위 얼굴 같은 위상이로다
동자승 산만한 예불 속의 풍경화
따끔하게 정신을 맑히는 죽비의 낭만도
긴 여운으로 속세를 깨우려는 공명
범종도 제 나름대로 사명을 다하려는
포교자로서 아픔의 순간일 텐데
문화재급 앞세운 매끈한 예술혼쯤이야
살아있는 부처 산짐승만도 아니 된다며
메아리가 노승을 붙잡고 설법을 한다
♧ 숲 - 정일남
울창한 숲을 보는 것은
신간서적을 읽는 것과 같다
숲에 작은 절이 있다, 암자라고 부를까
절[寺]은 글자를 뜯어보면
한 치의 땅에 세운 집이다
절은 작아야 한다
그 절집에 어린 부처를 키우며
스님이 차를 달이고 있다
갈때마다 녹차를 달인다
녹차의 향기에 숲이 묻어있다
차를 마시는 순간에도 나는 나이를 먹는다
스님과 어린 부처와 하늘은 나이를 먹지 않는데
나만 나이를 먹어 미안하다
바다로 심부름을 갔다 온 동자승은
이미 부처가 되어 있었다
나무에 앉은 파랑새도 부처가 아니겠는가
이들 모두가 숲에 사는 한
숲 전체가 경전이다
스님은 또 녹차를 달인다
내 삶은 나무뿌리에서부터 생각의 힘을 얻는다
♧ 연못가에 노는 동자승을 보며 - 이복란
아이야,
네 그 손장난이 어미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는 원망으로 비춰지는 구나
뉘 어미의 가슴엔들 그렇게 안 비추겠니
전생의 연으로 이어진 까까머리가 애처롭고 또 애처롭다.
고 조그만 가슴속에서 부처님도 가끔은 눈물을 흘리실 게다.
아이야~
연못, 그 심연 속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단다.
하나 하나 보물을 찾아내어 가슴을 키우는 일은 네 몫이란다
때로는 연못의 물보다 더 많은 눈물, 쏟을 일 있을 게다
그러나 얘야
찰랑찰랑 못물 넘치는 그런 사랑도 있다는 것을...
훗날, 너의 우주는 가사장삼 소맷자락에서 돌고 또 돌겠지...
그래,
백팔염주알 굴리듯 그렇게 또박또박 순리대로 걸어보자꾸나
얘, 아이야.
내게 오지 그랬니?
이 허허 벌판에 고사목으로 사그라지는 내 빈 가슴에 꽃으로 오지 그랬어
내게 오지 그랬어.
아이야. 내게, 내게, 내게...
♧ 사하촌에 뜨는 소문 - 김영천
기름 몇 방울 떨어뜨리고
지지지직 부침개를 부치듯
꼬순 달 하나 떴다
시지부지
시늉이나 내는 요사채의 30촉 전구알은
겸연쩍어 빛을 죽인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꾸벅거리며 졸고 있는 동자승의 까까머리만
외려 빛난다
설렁거리며 드나는 바람을
어느 시앗이 부러 떨구고 간 것인지 참 매섭기도 하더니
환한 달빛에 제 진면목이 노출되는 것이 두려웠을까
서둘러 뒷산으로 오르며
비밀처럼
동백나무 숲으로 숨는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 말고도 그런 속엣말 하나씩을
품고 사는 것이어서
세상 눈치를 모올래 보는 것이지만
꺼억꺼억, 山門 밖으로는
삼킨 달을 하얗게 토해내는지
오늘도 돌무더기 같은 업장 하나씩을 또 쌓았다
아무래도
내일쯤엔 우리의 봄에 대해
풍문이 좀 돌겠다
소문이란 또 얼마나 재빠르며
생생하며
쉬이 부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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