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안도현 시인 초청 특강 안내

김창집 2014. 12. 5. 07:47

 

안도현 시인 초청 특강이

12월 5일 저녁 7시

제주문학의 집에서 열린다.

 

지난 6월 발간된 그의 <백석 평전>을 중심으로 진행될

이번 특강에는 당대의 많은 시인들을 매료시켰으며,

해방 이후 후대의 시인들에게도 절대적이고

폭넓은 영향을 끼친 백석의 생애를 담은 <백석 평전>.

 

스무 살 무렵부터 백석을 짝사랑하고,

백석의 시가 “내가 깃들일 거의 완전한 둥지”였으며

어떻게든 “백석을 베끼고 싶었다.”

“그 동안 백석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그를 직접 만나는 방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백석의 생애를 복원하는 작업에 몰두한 안도현 시인의 고백을 통해,

 

고향에서 유년을 보낸 시절로부터,

더 큰 세상을 꿈꾸던 오산학교 재학시절과

방응모의 장학생으로 떠난 일본 생활,

<사슴>을 세상에 내고 잘나가던 「여성」지 편집자이던 시절과

백석의 생을 관통한 사랑 이야기까지 백석의 전 生涯와

함흥에서 교편을 잡던 날들을 거쳐 만주에서 유랑을 하던 날들

그리고 북한에서 문단 활동을 하던

백석의 이름이 사라지고 1996년 1월,

여든다섯 살로 세상을 마감할 때까지의 이야기가

저자인 안도현 시인을 통해 생생하게

제주의 독자들에게 소개될 것이다.

 

마지막까지 정열을 품었다 지금은 모두 떨어져버렸을

지난 11월말 한라수목원에서 찍은

검양옻나무 단풍과 같이

안도현의 초기시 몇 편을 올린다.

   

 

♧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를 끝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 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이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히 잠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 기관차를 위하여

 

기관차야, 스스로 너는 힘을 내 달린다고 생각하겠지

하찮은 일에서부터 세상을 움직이는 큰 일까지

혼자 힘으로 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모르고

기관사가 타고 서울역에서 출발하기만 하면

어디든 닿을 수 있다고 너는 생각하겠지

그래서 떠나기도 전에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구나

가령 객차에 한 사람의 손님도 타지 않았다면

화물칸에 라면 상자 하나 싣지 않았다면

비록 떠난다고 해도 너는 우스운 쇳덩어리일 뿐

그 누구에게도 추억이 될 수 없을 거야

 

이 세상 끝에서 끝까지 얼마나 많은

철길들이 서로 어깨 끼고 있는 줄도 모르고

부산이나 목포까지 갔다 왔다고 기적을 울리며

플랫포옴으로 들어오는 기관차야, 자만심을 버려야 해

국경을 건너고 거친 대륙을 횡단하기 전에는

한반도는 슬픈 작은 섬일 뿐이야

내 어린 시절, 기차를 몇 번 타봤는지

얼마만큼 먼 곳까지 타고 갔다 돌아왔는지 내기할 때마다

시골뜨기 나는 미리 주눅이 들곤 했었는데

나중에 커서야 알았지 세상을 많이 아는 것도 어렵지만

세상하고 더불어 사는 건 더욱 벅차다는 것을

이제 슬쩍 너에게만 말해 줄 게 있는데

기관차야, 요즈음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삶은 계란을 잘 사 먹지 않는 까닭을 말이야 그것은

삶으로부터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고

혼자 여행을 떠나는 일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란다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간이역의 이름처럼

앞으로 남은 많은 날들이 너를 녹슬 게 하겠지만

기관차야, 철길 위에 버티고 서 있지 말고

새 길을 만들어 달릴 때 너는 기관차인 것이다

끝이다, 더는 못 간다 싶을 때 힘을 내

달릴 수 있어야 모두를 너를 힘센 기관차로 부를 것이다

       

 

♧ 간절함에 대하여

 

금강 하구를 가로지른

거대한 배수갑문, 그 한쪽에

강물을 조금씩 흘려 보내는 조붓한 물길이 있다

魚道어도라고 하는데,

영락없이 강물의 탯줄이다

강으로 오르고 싶은 물고기는 오르게 하고

바다로 내려가고 싶은 물고기는 내려가게 한다

5월, 내려가는 물고기는 보이지 않고

거슬러 오르고자 하는 것들이 거기 가득했다

더 높은 곳에서 봤더라면

버드나무 잎을 따다

몽땅 뿌려놓은 것 같으리라

숭어떼였다!

바다를 뚫고 억센 그물을 찢을 때 생긴

상처투성이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하나같이 무엇이 간절한

눈부신 숭어떼

큰놈 작은놈 할 것 없이

대가리를 강물 쪽으로 대고

오로지 거슬러 오르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날개를 찰싹 접고 꼿꼿이 서서

꼼짝을 하지 않고 숭어떼를 노려보는

잿빛 새 한 마리

그 긴 부리의 간절함은

또 무엇이었던가!

   

 

♧ 그 작고 하찮은 것들

 

버스를 기다려 본 사람은

주변의 아주 보잘 것 없는 것들을 기억한다

 

그런 사람들은 시골 차부의

유리창에 붙어 있는 세월의 빗물에 젖어

누렇게 빛이 바랜 버스 운행 시간표를 안다

 

때가 꼬질꼬질한 버스 좌석 덮개에다

자기의 호출번호를 적어놓고

애인을 구하고 싶어하는 소년들의 풋내나는 마음도 안다

 

그런 사람은 저물 무렵 주변의 나무들이 밤을 맞기 위해

어떤 빛깔의 옷으로 갈아 입는지도

낮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저녁 연기가 어떻게 마을을 감싸는지도 안다

 

그리고 기다리면 기다릴 수록 버스는

천천히 오거나 늦는다는 것도 안다

 

작고 하찮은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가슴이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 법대로

 

대학을 법대로 가서

판사 검사가 되는 것만이

자신과 조국을 위하는 길은 아니라고 가르치던 그는

교원노조 결성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나이 오십이 넘어 해직교사가 되었다

단체행동에다 명령불복종에다 성실의 의무 위반까지

법대로 그는

파면이 되었다

 

대학을 법대로 가서

판사 검사가 되는 것만이

부모에 효도요 나라에 충성하는 길이라고 가르치던 그는

교원노조 결성을 저지했다는 공로로

나이 오십도 못돼 교장이 되었다

모범표창에다 우수교원상에다 청와대 오찬까지

법대로 그는

승진을 하였다

   

 

♧ 나무 생각

 

나보다 오래 살아온 느티나무 앞에서는

무조건 무릎 꿇고 한 수 배우고 싶다

 

복숭아나무가 복사꽃을 흩뿌리며 물위에 點點이 우표를 붙이는 날은

나도 양면괘지에다 긴 편지를 쓰고 싶다

 

벼랑에 기를 쓰고 붙어 있는, 허리 뒤틀린

조선소나무를 보면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주고 싶다

 

자기 자신의 욕망을 아무 일 아닌 것같이 멀리 보내는

밤나무 아래에서는 아무 일 아닌 것같이 나도 관계를 맺고 싶다

 

나 외로운 날은 外邊山외변산 호랑가시나무 숲에 들어

호랑가시나무한테 내 등 좀 긁어 달라고, 엎드려 상처받고 싶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양도 겨울 바다  (0) 2014.12.10
눈밭에 다녀와서  (0) 2014.12.08
눈 덮인 겨울나무  (0) 2014.12.04
철없는 철쭉꽃들  (0) 2014.12.02
상수리나무로 맞는 12월  (0) 2014.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