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인 지난 12월 8일 월요일,
방송 촬영차
비양도엘 다녀왔다.
배가 뜰지 말지 모른 채
아침 일찍 서둘러 포구로 갔는데
다행히 바닷길은 열려 있었다.
배를 타면
불과 1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인데도
도항선이 작아서인지
무슨무슨 주의보만 내리면
건너가지 못하는 섬.
이장님과 할머니들의 푸념을 들어보니
케이블카를 놓든지
다리를 놓든지
해저터널을 뚫어서라도
쉽게 오가게 해달라는 것들이다.
나처럼 섬의 낭만(?)을 기대하면서
가끔씩 놀러가는 사람들만
섬으로 남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자마자 어제 따온 것이라고
바다에 넣어 두었던 소라를 건져 올리고 있기에
10kg을 사서 우선 몇 개를 까놓고
잘근잘근 씹히는 맛을 즐겼다.
포효하는 파도 속에서
애기 업은 돌도 의연하고
코키리 바위엔
가마우지와 갈매기가 가득 앉아
오히려 하늬바람을 즐기고 모습이다.
♧ 비양도 - 최원정
한림항에서 도항선 타고
바닷길을 가르면
마음 안에 있는 섬,
그 곳에 내가 있네
작은 어선 몇 척
섬을 지키고
전교생이 한 명뿐인 분교 담장엔
갯강구 무리지어 한살림 차리고 있다
검은 화산석 사이에서 자라는 해녀콩
어느 가련한 해녀의 눈물로 피어나
잊지 못한 숨비소리 들으며
천 년 넋을 달랜다
♧ 협재 바닷가 - 김영천
철 지난 바닷가 송림 근처엔
둔덕처럼 보포롬한 砂丘사구가 있는데
우우 기어오르던 넝쿨손이 꽃의
그 이름 알지 못해도
청보랏빛 설웁디 설운 빛깔이
너무 낯익다
곤밥 한 그릇 먹이려고
물질 나간 아비 기다리다
저리 가슴 서걱이는 꽃으로 피었을까
차마 돌아오던 것들도 지치면
저 앞 비양도 쯤에 머무르는지 몰라
바람 한 자락이 물끝 쯤에서
쉽게 숙지 못하고
자꾸만 하얗게 깨어 일어나는 것이
꼭 어떤 그리움을 닮았다면
도무지 방언처럼
내겐 지금 서툴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은
그 간절함은
여기가 아니어도 늘 가슴 속으로는
소금꽃을 피우는구나
♧ 겨울바다 - 김경곤
살갗을 헤집는 삭풍은
짜릿하게 온몸을 휘감고,
얼어 붙은 갯벌에는
떠나간 펄 게들의 무덤과
동체를 묻어 버린 낡은 어선 한 척,
굶주린 바다 하이에나 한 마리만 남았다.
순백한 뽀얀 속살을 드러낸 백사장은
간 밤의 사연들은 다 어디로 보냈는지
숫처녀의 비림(秘林)처럼 깨끗하기만 하고,
사연을 잃어버린 나는
간밤에 쏟아 부은 술잔만큼
가슴속 앙금마저 게워 낸다.
백사장에 새겨 둔 발자국이
바람에 지워져 갈 때면
지워져 가는 발자국처럼
비워져 가는 미련들은
비상하는 독수리의 울음 속에,
매섭게 불어오는 삭풍(朔風) 속에,
멀어져 간 썰물처럼 숨을 거둔다.
♧ 겨울 바다 - 강진규
물안개 서서히 내 몸을 비껴간다
수평선 너머로 밀려가면 그만인
그대는
알몸인 채
낮은 목소리 거느리고 다가와 눕는다
늘 내게서 멀어지는 목소리
성글어져 꿈꾸는 시간마다 외롭다
귓전에 속삭이며
온몸으로 부딪치다가 사라질
나는 바다새 울음에 실려, 실려......
흩어지면 다시 그만인 물결 속에
머무르는 내 꿈 속 바다의 영혼들,
영혼들의 슬픈 발자국
달아오른 생애는 지킬 수 없어
넋을 잃고 몸부림쳐도
남김없이 부서져야 하는 시간의 첩첩한 미련.
끓어오르는 물거품 속에
끌어안아 다독이는 시간의 거친 용서,
용서의 발자국
사라지면서 다시 돌아오는
내 마음 속, 내 어머니의 품안 같은
그대, 겨·울·바·다 ―
♧ 겨울 바다 그리고 사랑 - 권선환
오늘처럼 삭풍이 몰아치면
햇살 잘 드는 고향집 담벼락 앞엔
어촌 아낙이
막 건져 올린 굴을 까고 있을 거야.
파도는 도난당한 석화(石花)를 찾는다고
허연 이를 드러낸 채
뭍으로 뭍으로 달려들 것이고
행여 들킬세라
능숙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한 잎 한 잎 까집다보면
하얀 껍질과 함께 뚝뚝 떨어지는 바다의 눈물,
바다는 또 햇살을 머금고
성난 파도를 달래며 배를 띄울 것이고
불어오는 바람을 잡고
어느 도시의 외딴 섬
또 다른 파도와 싸우고 있을
아이들의 안부부터 물어볼 것이다.
♧ 그리움의 겨울 바다 - 김귀녀
계곡을 타고 달려오는 것 같은
검푸른 바다를 보며
숨길 수 없는 빈 마음에
속눈물이 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모래 숲에 내려놓은 삶의 보따리
함께 뒹굴었던 발자국
숨겨두었던 속 가슴앓이
마음껏 쏟아는 놓았지만
잡지 못한 채
물결 따라 먼 바다로 흘러 간
애틋한 사연
가슴속에서 뱅 뱅 돌기만 했던
지울 수 없는 긴 그리움
겨울 바다
파도 끝에 서서 되새김질 한다
♧ 겨울 바다 - (宵火)고은영
하루종일 기대었던 햇살이 기울어
사무친 바다로 스며들 때
황혼도 그대 닮은 외로움으로 울고 있다
아, 만장을 치는 세월의 무심은 비로소 아프다
늘 허방 위에 널브러져 무심코 그리던 화아(花芽)
익숙한 공간마저도 때론 낯설고
이방인이 되어 흠칫 떨리는 어깨
언제인가 꿈속에서나 보았을 법한
아득한 길에서 실종된 것들의 부재 앞에
상실의 의미로 와 닿는 것들을 손사래 치며
사그랑이* 같아 두려웠던 기억
그대의 지난날들은 행복하였는가
더러 시큼한 가슴으로 겨울 바다에서
한 시름 달래며 그대의 비망록을 펼치면
혜윰*에 와르르 쏟아지는 후회들이
저 물살에 분분하다
---
* 사그랑이 : 다 삭아서 못쓰게 된 물건
* 헤윰 : 생각을 뜻하는 우리말
♧ 겨울 섬 - 오경옥
가슴 한복판에서 마르지 못한 찬바람이 서걱서걱 일었다 소리도 없이 깊게 흐르는 것들 눈과 귀와 머리와 가슴이 기억하는 여울목에 걸리고 만다 가슴 밑바닥에 켜켜이 쌓아 아껴둔 말들, 목안을 표류하다 역류하는 시간 속에 파랗게 파랗게 자맥질을 한다 더 다가설 수도 없는 꼭 그만치의 거리에서 눈과 귀와 머리와 가슴이 기억하는 것들이 마음 한복판을 배회하다 못해 하얗게 얹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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