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까이에 조그만 가시덤불 있어
그곳에 하얗게 찔레꽃이 피었다.
하긴 입하가 지난 지
사나흘이 지났으니
찔레꽃만이 아니라
온갖 여름 꽃이 다 피어난다.
지구 온난화로 아열대로 변해
봄가을은 짧고
여름겨울은 길다는데
꼭 그대로 되는 것 같다.
식물들이 계절에 순응해 꽃을 피우듯이
우리도 자연에 순응한다면
큰 해는 없을 것이다.
♧ 찔레꽃 2 - 권도중
꽃잎 따 손에 쥐고
돌아보던 자갈길
붉은 순 꺾어 먹고 배고프던 아이야
주고픈 선물이 있다
마음속에
남았는
흰 저고리 붉은 치마
별자락에 묻히며
갱변에 신발 들고 하얗게 서서 있던
그 꽃잎 꽃잎 사이로
가시처럼
갔던가
볼 수 없이 살아도
보지 않고 살아도
사는 게 절절하여도 피어 찔레꽃
하늘 끝 세월 속으로
묻어두고
피는 꽃
♧ 찔레꽃 연가 - 심의표
짙푸른 송림 사이 달리는 화심
게으른 뻐꾸기 울어 시샘해도
수줍은 듯 뽀얀 얼굴
내 고향 뒷동산 한 자락 깔고 누워
낮 익은 길손 마음 설레게 한다.
활짝 핀 그리움 하나
연녹색 풀섶에 살며시 묻고 서서
뿌옇게 떠오르는 달빛 맞으며
정든 임 기다리는 열아홉 순정
순애보 같은 사랑을 안고
꽃향기 풀어 순수의 눈빛 열어간다.
♧ 찔레꽃 사랑 - 양전형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못한다
풀과 나무는 물론 세상 무엇이든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으면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 넘치고 넘쳐 마침내
찢어진 가슴 열며 상처투성이 꽃
왈칵왈칵 구구절절이 피워내는 것
그리고 아품이 큰 꽃일수록
고웁고 향기 더 나는 것
사랑은 아프게 해야 한다
꽃이 아프게 피어나듯
가슴이 찢기도록 해야 한다
상처는 정녕코 아름다운 것이므로
아, 저 하늬 길목 갯도랑 찔레꽃
한겨울을 얼마나 아파했을까
온몸 가시에 뚫리는 고통 견디며
누굴 저리 활활 사랑했을까
♧ 찔레꽃 - (宵火)고은영
보아주는 이 없는
깊은 산,
그래서
물빛 서러움일레라
하이얀 미소
순결의 서약으로 떠도는
슬픈 입맞춤
외로운 몸짓일레라
우수수
소리도 없이 떨어지는
깊은 언어의 침묵
아, 고독한 사랑일레라
천년을 기다려도
만날 수 없는 임을 그리다
이는 바람에 포물선 그리는
너의 하얀 비망록
♧ 찔레꽃 향기에 쌓인 그리움 - 하영순
찔레꽃 향기에 쌓인 그리움
모퉁이 돌아돌아
산길 어귀
찔레꽃 향기 초여름 햇살 젖어든 오월
세상에 태어나서
탯줄 떨어진 자리
채 마르기도 전에
하얀 꽃가마 타고 가신 님
그때는
서러움도 그리움도 미처 몰랐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찔레꽃 향기 가슴을 적시면
심장에서 치미는 그리움
목젖을 막아도
그립다. 말 못하고
찔레순 꺾어 씹어 삼키며 참아온 세월
서산에 산 까치 지저귀는데
찔레꽃향기 고개를 넘어
아카시아 꽃잎으로 피리를 봅니다
그리워 그리워서
피리를 붑니다
찔레꽃 하얀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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