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입하에 내보내는 이팝나무꽃

김창집 2015. 5. 6. 00:07

 

월요일,

평화로에서 애조로로 넘나드는 길목에서

또,

연북로 KCTV에서부터 중앙로와 만나는 길까지의 분리대 화단에서

제주에서는 쉽게 보지 못하던

소담스러운 꽃을 보았다.

 

‘여름에 들어서는 입하에 꽃이 핀다.’ 하여

그리 명명되었다는 입하목.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던 시절

부잣집 밥상에서나 볼 법했던

쌀밥처럼 새하얀 꽃.

 

여름의 길목

입하 아침에 내보낸다.

 

 

♧ 이팝나무 - 권오범

 

냉동돼 비몽사몽 했을 희망

5월의 친절한 해동에

한소끔 끓어오른 입하

 

은근한 불땀으로 한 사날 뜸 들여

군침 돌게 고슬고슬

싱그러운 양푼에 담아놓은 고봉밥

 

오가는 바람들이 입맛 따라

달빛 별빛 날비에 말아

며칠씩 포식해도 줄지 않아

 

오도카니 햇볕에 비벼먹다

도리깨침 등쌀 못 이겨

징글징글한 보릿고개 너머로 달려간 내 넋

 

 

 

♧ 이팝나무꽃의 노래 - 서지월

 

저렇게 많은 할 말이

높은 가지 위에서 손사래 치며

아우성인 것을,

우리가 위로만 쳐다보며 살아온 나무들처럼

이같은 보람 한번 만나지 못하고

높이 쳐다보는 것으로 해가 지고

새들이 제 집 찾아 떠나가듯

돌아오는 길섶에 앉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소리

그냥 내버려 두는 수밖에

 

 

♧ 이팝나무 - 이희숙

 

달빛이 집짓고

바람이 뼈를 묻는 시간

이팝나무가 수상하다

때 아닌 윤사월에

이토록 많은 눈

저토록 황홀한 별들

기별도 없이

거리도 없이

내리고 돋아나고

 

 

 

♧ 이팝나무 - 이승복

 

신록의 푸른 숨결이

오월의 눈꽃 속에

그리움이 여물 즈음

살폿한 자태 뒤에 오는

공복(空腹)의 욕구

 

봄의 싱싱바람이

가슴 파고든 손놀림

간지럼 입힌 미소는

사랑, 그 고운 사랑이

만개한 순결의 몸짓

 

추억을 화관 만들어

흰 눈처럼 머리에 얹고

붉게 익은 겨울 사랑을

회상하는 입하목으로

오래 사랑하자던 님

 

여망의 날들 위해

젖어오던 눈물 흔적

흐드러진 이팝꽃 위에

오월 나비는 얼굴 맞대

입맞춤으로 달랜다.

 

---

*입하목 - ‘여름에 들어서는 입하에 꽃이 핀다.’ 하여 이팝나무를 지칭함

 

 

♧ 오늘은 입하(入夏) 중 - 김영천

 

 

어깨에 떨어진

꽃잎을 툴툴 털고 일어서니

우루루 돋아난 새잎들이

모든 길이 된다

 

가고 오는 것들

늘 감회롭긴 하나

꽃 진 자리마다

저 푸른 하늘

 

오늘은 미리 봄을 여의고

새로운 소망처럼

네 안에

불쑥 들어와 설까

 

그 허당 안에

눈물 같이

동그랗게

나를 맺는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경업 오월 시편과 실거리나무 꽃  (0) 2015.05.11
찔레꽃 벌써 피어  (0) 2015.05.09
5월 고향 바다  (0) 2015.05.04
5월에 보내는 남방바람꽃  (0) 2015.05.02
4.3 소리굿 ‘한 아름 들꽃으로 살아’  (0) 2015.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