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스승의 날이라
두 제자와 그 동창들이 차려 놓은 사은회에 다녀왔다.
지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해마다 옛 선생님들을 모셔 놓고 벌이는 행사.
몇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너무 부담이 될까봐
빠지기도 하지만
몇 달 전부터 전화로 메시지로 확답을 받는 등
그 진정성을 알기에
부담 없이 참석하게 된다.
남처럼 크게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높은 지위나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해마다 동창 녀석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고 선생님을 맞는
제주중앙고 22회 졸업생 강달수 군,
지금은 그 뜻에 동조하는 동창 한의사 한태만 군과
같이 행사를 치르고 있다.
오늘날 참 스승이 없고
진짜 제자도 없다는 시기에
그 고마운 뜻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평생 교편을 잡았던 일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제주를 밝히는
참꽃같은 제자들…
♧ 스승 - 유용선
깊은 강 앞서 건너가
뒤따라올 지친 몸 기다리는 이
높은 산 먼저 올라서서
어진 손 내밀며 웃고 있는 이
그가 있어 가쁜 숨 돌리고
그가 있어 저린 몸 쉴 수 있으니
바다에 닿으면 벗이 되고
하늘에 닿으면 한 이름이 되는
스승,
배고프고
가슴 아픈 그 이름
♧ 참스승 - 목필균
꽃 이름만
배우지 마라
꽃 그림자만
뒤쫓지 마라
꽃이 부르는
나비의 긴 입술
꽃의 갈래를 열어
천지(天地)를 분별하라
몸으로
보여주는 이
♧ 스승 - 김종제
캄캄한 어둠에
한 줄기 빛을 던져주어
꽃도 나무도 눈을 번쩍 떴으니
새벽, 당신이 스승이다
얼어붙은 땅속에
숨 쉬고 맥박 뛰는 소리를 던져주어
온갖 무덤의 귀가 활짝 열렸으니
봄, 당신이 스승이다
정수리를 죽비로 내려치며
한순간 깨달음을 주는 것은
말없이 다가오므로
스쳐가는 바람처럼 놓치지 않으려면
온몸으로 부딪혀 배워야 하는 법
흘러가는 강물과
타오르는 횃불과
허공에 떠 움직이지 않고
바닥을 응시하는 새와
제 태어난 곳을 거슬러 올라가
알을 낳고 죽어가는 물고기도
감사하고 고마운 스승이다
죄 많은 우리들 대신에
십자가에 사지를 못박히는 일과
생을 가엾게 여기고
보리수나무 아래 가부좌하는 일이란
세상 똑 바로 쳐다보라고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 스승의 사랑 - 오보영
주고 싶은 마음에
한줌을 더 얹었는데
행여
넘쳐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더 주고는 싶지만
한 모금을 덜어 냈는데
행여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건네었으니
준만큼은 채워졌기를
바랄 수밖에요
♧ 나무스승 - 나태주
아까부터 창 밖에서
손 까불러 부르는 이 있다
떠나보라고 어디든
떠나가 보자고
꼬이는 사람 하나 있다
필경 그는 키 큰 미루나무거나
버즘나무다
나무를 찾아가 나무의 어깨에
내 어깨를 비벼본다
하늘은 순하고 어리신 바다
찰랑찰랑 자그마한 물결소리까지 데불고 와
눈썹 끝에 걸리고
먼 천체 밖 떠도는 별들의
가쁜 숨소리라도 들려올 듯…
사람 대신 쓸쓸해 하는 나무
사람 대신 슬퍼하고
절망하는 나무.
[html]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5주기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0) | 2015.05.18 |
---|---|
‘우리詩’ 5월호의 시와 금낭화 (0) | 2015.05.16 |
으름 꽃은 숨어 피는데 (0) | 2015.05.14 |
세 여류시인의 시와 아카시아 (0) | 2015.05.13 |
권경업 오월 시편과 실거리나무 꽃 (0) | 2015.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