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으름 꽃은 숨어 피는데

김창집 2015. 5. 14. 12:34

 

깁스나 풀어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며

1주만에 병원에 갔더니

 

X-lay를 찍어보고는

뼈가 붙기 위해 잘 진행되고 있다며

그냥 풀어 소독솜으로 몇 번 쓱쓱 닦고는

새로 붕대를 감아주며 하는 말이

통증이 없으니 약 처방도 없다면서

2주 후에나 다시 오란다.

 

오른쪽 손목을 못 쓰니

답답하고

더워지는 날씨라서

속이 가렵고 땀이 난다.

 

말이 2주지

그 많은 날을 어떻게 기다리지?

 

이 으름덩굴 꽃처럼

그늘에 꼭꼭 숨어 있을 수도 없고….

 

 

♧ 으름덩굴(241) - 손정모

 

다섯 갈래

손바닥 닮은 잎새로

덩굴마다 손 내밀어

하늘 향해

가만히 귀 기울이다가

 

연보랏빛 우아한 맵시로

바람이 지나다니는 길목

민감한 레이더처럼 더듬더니

솔숲에서 훌쩍이는

가슴 잃은 산새

고독을 건져 올린다

 

산중의 정밀로

떨어져 내리는

개화의 설렘

마음껏 몸 태우며

음미하다가

휩쓸리는 바람결 타고

청아한 음률로 흩날린다.

   

 

♧ 으름 - 김승기

 

지내고 보니

모든 것이 손바닥 위에 있더이다

아무리 으르고 어르고 윽박질러도

잎이 돋고 꽃도 피더이다

덩굴지는 세월의 더께 위에서

바나나같이 소시지같이

달콤 짭짤한 열매 열리더이다

순간순간 가슴을 찌르던 설움과 아픔

부드럽고 하얀 손길로

어루만지며 달래어도

검은 씨로 맺히던 눈물과 웃음,

아람으로 벌어져

하늘 밖으로 떠나가고 나면

아득한 추억이 되더이다

길고 좁다란 골목길에서도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내리고

그렇게 살아지더이다

안 되는 일

으름장 놓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더이다

모두 놓아버리고 홀가분한 지금이지만

때때로 가끔은 잠결 속

눈시울 젖는 밤이 있더이다

잊어버렸다 싶은 기억의 더껑이

꿈으로 찾아와

춤추며, 구름으로 흐르며,

강물 되어 넘실거리더이다

 

 

 

♧ 그곳에 가고 싶다 - 반기룡

 

봄이면

달래 냉이 씀바귀 캐던 그곳

돌멩이 슬쩍 들추고 가재 잡던 그곳

 

여름이면

어린 시절 물장구치던 그곳

참외 서리하다 들켜 줄행랑치다 숨던 그곳

산 벚나무 찾아 멍석 깔고 후드득 후드득

버찌 털던 그곳

삽으로 막고 여뀌 풀어 메기 모래무지

미꾸라지 피라미 잡던 그곳

 

가을이면

숨바꼭질할 때 꼭꼭 숨어 술래가 찾지 못하던 그곳

동네 사람들 눈을 피해 사랑의 꽃을 활짝 피우던 그곳

지난해 눈 여겨두었던 계곡 찾아 활짝 벌어진 으름 따던 그곳

 

겨울이면

새 덫을 만들어 참새 콩새 방울새 잡던 그곳

화투놀이하다 진 사람이 밥 서리 모의하며 떠들던 그곳

 

그곳에서 부르는 듯한데

멀게만 느껴지는 세월의 간격과 간극

 

세월이 무뎌지기 전에 그곳에 가고 싶다

 

 

♧ 서진암 가는 길 - 권경업

 

산에 길 있네

시작은 나였지만 끝은 어디인지도 모를

 

허상(虛像)의 내가

허상뿐인 나를 찾아 헤매이던 길

 

잘게 분해된 시간

빛바랜 햇살로 증발하는 오후의

느릅나무 숲, 으름 덩굴 사이로 열려 있네

 

털어버려, 그냥

훌훌 털어버리라는 허허로운 바람의 길

 

시월이 멈추어 선 산자락

내 젊은 날이 중년(中年)의 내 어깨에 손 얹으면

야윈 오솔길은 제 혼자 두런거리며 간다

아득한 그리움 지나 더 아득한 그리움으로

산 넘어 산, 그 넘어 산으로

 

백장암 뒤란 대숲을 건너, 저 - 편

잊혀진 어느 가을의 모퉁이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사람아

만남과 이별,

어제와 내일이 윤회(輪廻)할 그 길 위

네 눈빛만큼이나 한없이 투명한 하늘

아쉬운 날들의 사랑 같은 노을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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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암, 백장암: 지리산 실상사 건너편에 있는 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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