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꽃귀띔’ 제6집의 시와 개망초

김창집 2015. 6. 7. 06:20

 

정드리 문학회 동인지

‘꽃귀띔’ 제6집이 나왔다.

 

길벗이자, 글벗을 내세운

정드리문학회가 결성 15주년을 맞아

제6집을 엮어낸 것이다.

 

이번 호는 ‘시인 인터뷰’로 서안나 시인을

‘이 회원을 주목한다’는 안창흡 시인을 취재했다.

 

그리고 아쉽지만

모두가 좋은 시인으로 활동하기를 소망하며

그 간판을 내렸다.

 

시 몇 편을 골라

요즘 제주 들판을 장식하는

개망초 꽃과 같이 올린다.   

 

 

♧ 꽃귀띔 - 강영란

 

네가 온다고 했다

 

작은 구릉을 넘고 매혹의 바다를 지나

물이끼의 시간을 스치듯 건너

자작나무 울창한 얼음의 골짜기를 가르며

은빛가루로 부서져 내리는 달빛비늘을 뚫고

단숨에 달려온 푸른늑대의 이빨 사이로 번뜩이는 오리온좌

불타는 눈빛을 내리감고 깊은 숨 고르며 마침내

내 귀에 저격하는 단 한발의 총성

 

네가 온다고 했다. 이 봄에

   

 

♧ 송악산 으아리꽃 - 문순자

 

기어이 허공에 올라 별이 되고 말리라

기도이듯, 절규이듯 절벽을 차오르는

초가을 파도소리를

감아올린 으아리꽃

 

그리움은 지상의 일, 하늘은 허공일 뿐

종일 땅바라기 그 끝에 바다바라기

육지와 바다도 그냥 물끄러미 쳐다볼 뿐

 

마라도 가파도가 쏘아올린 이 꼭대기

몹쓸, 몹쓸 모슬포바람 온몸으로 울고 마는

하산길 내가 서 있던

그 자리도 하늘이었네

 

 

♧ 금성호 - 송인영

 

어떤 마음 지녔는지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

 

아득한 먹빛 하늘

별이 되고 싶었던 사람

 

간절한 기도를 마친 뒤

제주바다 끌어안네

 

외삼촌 채낚기 어선

어디에 가 닿았을까

 

자리돔 가시 같은

빳빳한 자존심으로

 

오늘도 파도 관절 주물러

뭇별, 건져 올리는

 

 

국 - 오승철

 

그래, 언제쯤에 내려놓을 거냐고?

혼자 되묻는 사이 가을이 이만큼 깊네

불현듯

이파리 몇 장 덜렁대는 갈참나무

 

그래도 따라비오름 싸락눈 비치기 전

두말떼기 가마솥 같은

분화구 걸어놓고

가난한 가문잔치에 부조하듯 꽃불을 놓아

 

하산길 가스름식당

주린 별빛 따라들면

똥돼지 국물 속에 펄펄 끓는 고향바다

그마저 우려낸 국,

국이 되고 싶네

   

 

♧ 백치미 사랑 - 윤행순

 

서산에 해 걸리고 낙엽이 떨어진다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나는 마른 잎새들

민오름 저 둘레길은 또 그렇게 지쳐간다

 

외진 돌무덤 가에 한 남자 앉아있다

산길 접어 남몰래 감춰둔 으름열매

그 남자 둘레길에서 백치미 사랑 잃고 말았네

 

길 막고 홀로 선 저 소나무 누굴 기다릴까

사랑해야 할 사람 미쳐 알지 못하여

그리움 가슴에 묻고 길 떠나는 둘레길

   

 

♧ 연분홍 목소리 - 이경숙

 

풀죽은 나를 보고 긴 목 빼어 들더니

“뭘 하면 행복하니?”

“뭘 먹으면”

그랬다

그 영혼 하늘로 떠났는지

푸석한 껍데기만이 섰다

 

이월 느릅나무에 생기가 돌았다

참새 세 마리가 물고 뜯고 신났다

얇아진 햇살 한 줌이 엉덩방아 찧었다

 

 

 

♧ 이별은 봄에 하자 - 이명숙

 

첫눈 아직 이른데 그새 다녀가셨네

동백 아직 이른데 동박이 벌써 우네

여승은

보이지 않고

코끝 붉은 종소리

 

삼 일간 사랑하고 백 년을 헤어지네

허전히 잡은 목숨 달래는 사면석불

눈감고

먹먹히 듣는

수덕사 풍경소리

 

자꾸 크는 그리움 여간 서러워야지

아무래도 이쯤서 불을 끄고 싶은데

난감히

들키고 마네

잊힐 리 없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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