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애월문학 제6호의 시와 어성초

김창집 2015. 6. 8. 08:31

 

어제는 애월읍 중산간에 자리한

증조부모 이하 아버님 어머님까지 모신 가족묘지의

여름 중간 벌초 행사에 참가했다.

 

오른 손목을 다쳤기 때문에

예초기를 괴롭히는 자갈을 줍는 게

나에게 주어진 임무여서

베어버린 잔디 위에 뒹구는 자갈들을 모아 나르며

모처럼 조상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침 일찍 가서 시작하였기로

일찍 끝낼 수 있었고 간단히 차례까지 지냈는데도

아홉 시밖에 안되었다.

 

마침, 집에 가는 길 가까운 곳에 위치한 녹고메에서

애월중학교 총동창회에서 둘레길 걷기 행사를 가진다던데 

기 동창들이 생각나 전화해본즉, 몇 사람 참석 안했는데다

일행은 벌써 정상 가까이에 이르렀다 한다.

 

그래, 이왕 나선 김에

간단히 바람이나 쐬려고

궷물오름 정상에 올라보니,

22회 졸업생 후배들이  모여 간식중이다.

 

마침 여동생네 동창들이었고

아는 후배 몇이서 권하는

막걸리와 홍어 안주를 맛나게 얻어먹고

사진 몇 장을 찍고 내려왔다.

 

오늘은 지난 번에도 몇 편 소개했던

'애월문학' 제6호의 시를 몇 편 옮겨

요즘 한창인 어성초(약모밀) 꽃과 함께 올린다.

 

 

♧ 멀미 - 강연익

 

장애물이 없는 바다에도

울퉁불퉁 꼬부라진 길이 있다

미끄러지듯 매끄러운 수면 위로

달려드는 하얀 포말의 파도를 만나면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고

객실 안 승객은 스멀거리는 어지러움으로

초롱초롱 빛나던 눈동자가 가자미처럼

반쪽 눈을 감은 채 하얗게 질려간다

그 순간 낯선 사람도 한마음이다

고통을 참고 있노라면 어느새

혼절하는 그리움으로 땅을 밟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세상이나 만난 듯

고통은 까마득히 지우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로 인사하며 헤어진다

 

 

♧ 엄장포 소금빌레 - 김옥순

 

화산암

검디 검은 빌레 위

하얗게

하얀 서리 앉았다

 

바닷물 가두워

소금 만들어내던 너럭바위

 

덩그라니

몰아치는 짠바람 노래가락만

너울 넘친다

아리랑 아라리요

 

 

♧ 파래 - 김재훈

 

옛날 옛적에

어머니 따라 간 바닷가 갯바위

 

밀가루 산산이 뿌리고

전복 껍데기로 살살 긁어모아

 

낭푼이나 소쿠리에 담아

깨끗한 물에 여러 차례 헹궈내어

 

그 파래로 국을 끓이면

파래국 사발 안에 바다가 가득했었지

 

 

♧ 여름날 산사의 오후 - 김창화

 

매미가 우는 한낮엔 그 소리만으로도

두메 마을 절간은 시끌법적하다

 

밀물처럼 밀려와 좀체 빠지지 않은

대낮의 햇살

매미의 교향곡 따라 화염처럼 일렁이고

 

어선 가득히 채우고 항구로 들어온

만선의 깃발처럼

절 마당에 펄럭이는 청솔의 짙은 그늘

 

강림하는 칠성신 7월 7석의 불공

향내음 가득 찬 법당

부처상으로 몰리는 기원의 눈망울들

해탈하듯 촛불에 몸 사르는 불단의 황초

 

법당 문밖으로 흐르는 화엄과 금강경이

목탁소리에 버무려져

인기척 뜸한 절 마당 외로움 벗기는데

 

덤불 속 숨어 우는 풀벌레 소리

중생들 업을 삭히는 공양인 듯

산사의 오후는

기원의 염불로 휘감겨 조여지고 있다

   

 

♧ 박달나무 꽃피다 - 문순자

 

박달나무 박달나무 긴 주걱 따라가면

밥 달라 밥 달라는 예닐곱 살 구엄바다

무쇠솥 처얼썩 철썩

휘젓는 어머니의 노

 

제천장 좌판에서 그 주걱 또 만났네

한세월 거슬러온 박달재 고갯마루

어버지 낮술에 묻은 ‘희망가’도 따라왔네

 

오늘은 김장하는 날, 친정집은 잔치마당

젓갈이며 고춧가루 세상사 휘젓고 나면

한겨울 긴 주걱 끝에

덕지덕지 피는 꽃  

 

 

♧ 제비꽃 - 박우철

 

꽃이면 어떠하고

풀이면 어떠하리까

새우란 떠난 빈자리에

햇살 한 줌 물 한 모금

공양했을 뿐인데……

다정한 눈길로 합장하는

이름까지 착한 제비꽃 

 

 

♧ 아라한(arahan) - 양태영

 

마음을 줄 수 있는 곳

그곳이 어디이더냐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

그곳이 어디이더냐!

인생이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곳

마음 밭에 정착하여

깨달아 마음(心)이 평화롭고 자유롭다면

아라한에 불국정토 아니더냐!

달은 밝아 고요하고

구름은 흩어지니

사방이 다 문이로구나!

변한다는 것은 고통이 씨앗이거늘

한 세상 마음 비워 청정하니

마음밭 터전 일군 곳

여기가 아라한이로구나.

 

 

♧ 자목련 - 장승련

 

앙상한 가지 위

자목련 눈망울들이 하늘을 향해

접은 날개를 펼치려 하고 있다.

 

자, 이제 봄이야

새들처럼

푸른 봄 하늘을 날아야지

 

날다가 비록

힘이 부칠지라도

 

1년을 기다린

새 봄을

훨훨 다시 날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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