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랑의 시에는 말들이 맛있게 놀고 있다. 시 맛을 나게 하는 말 맛이 좋다. 시는 말씀의 집이다. 말씀이란 말을 제대로 올바르게 씀을 뜻한다. 말씀이 잘 되어 있어야 집이 튼튼하고 오래 살아남게 된다. 도시살이를 접고 시골로 내려가 어떻게 사나 했더니 그곳에서의 생활이 바로 사랑의 시가 되었음을 이번 작품을 통독하면서 알게 되었다.
시는 나의 이야기요, 내 주변의 이야길 수밖에 없다. 내가 제일 잘 아는 것을 찾아 노래할 때 시는 쉽고 재미있고 진실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사랑의 시는 시를 거창하게 생각하고 폼을 잡는 이들에게 하찮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시의 본질을 충실하게 쫓고 있는 이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더욱 상상력을 증폭시켜 주변의 가장 작고 하찮은 것들을 잡아 재미있게 포장하고 노래하는 순수한 열정과 시에 몰두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홍해리(시인)
♧ 들꽃
들판에,
가을이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었다
제비들 전선에 빼곡히 앉아 있었다
누가 수렁논에 꽃 농사 지었는지
온통 고마리꽃 여뀌꽃 지천이다
세상에나 세상이 이렇게 환하다니
그러나 눈부시진 않았다
누가 본다고 피었겠는가
꼭꼭 숨어 주소가 없어도
나는 너를 찾는다
고마리야 여뀌야
너희도 꽃이라고…
꽃 한 번 피워보겠다고…
가을 들판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냥 울었다
맥없이
♧ 함평천지
서울에서
서해고속도로 타고
남쪽으로 남서쪽으로
하행하다 졸음이 밀려올 때쯤
소똥 닭똥 돼지똥 냄새 나면
거기서부터 전부
내 고향이다
사람 떠난 집터엔
대나무숲 청청히 우거지고
천지 지천 갓동꽃 피고
지고 나면 배롱꽃 피고
지고 나면 싸리꽃 피고
지고 나면 꽃무릇 피고
지고 나면 억새꽃 피는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무심히 정자를 지나던 바람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소리 한자리 뽑아내지 않고는
그냥 못 가는
---
*한하운, 「전라도 길_소록도 가는 길에」
♧ 그리운 서정시
꽃뱀이 숨어 울던 그 돌담불
장광에 배부른 항아리
아궁이와 절절 끓던 방구들
사랑이 피어오르던 굴뚝
녹슨 함석지붕의 지시락물
쇠죽 호박죽 시래기 끓이고
엿기름 고던 가마솥
통보리쌀 통고추 마늘 갈던 그 돌확
자운영 갈아엎던 쟁기와 일소
해와 달, 밥을 지어 나르던 지게
담 너머로 오가던 정
청국장 냄새나는 사투리
젖 달라고 보채던 울음소리
벙어리가 된 학교 종
마을로 구부러진 황톳길
소문의 발원지인 샘터
그 샘을 지키던 두레박
막사발에 고봉밥 먹던 장정
다들 어디로 갔을까?
사람냄새 나는 푸짐한 그 인심
기차에 가난을 싣고 떠난 사람
어디 가면, 어디 가서
서정시 한 편 만날 수 있으려나?
오늘도 동구 앞 느티나무는
떠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 소 울음
앞집 소가 운다
밤새도록 울고 아침나절 또
운다 내 새끼 묶어놨다고
서럽게 운다.
우지 마라!
어차피 매여 살아야 할 생이다.
지금 우리는 삶이란 고삐에 매여
한 계절을 건너가고 있는 중이다
소처럼 울면서 울면서
♧ 헛꽃 산수국
산 속 적막을 지키며
바스락 바스락 떨고 있다
이 겨울 왜 그렇게 슬퍼 보이는 것이냐
나 속고 속아서 헛헛한 반생을 살다
누구에게 헛꽃처럼 살지 못하고
이제야 허와 참, 겸손을 배운다
당신을 유혹한다 말하지 말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말해 주세요
너는 중심을 위해 변방에서 베풀었더냐
누구를 위해 착한 거짓말로 죄 지은 적 있더냐
참을 위한 거짓으로 참사랑 맺어 주고
욕심 없이 고개 숙인 수행의 꽃 아니더냐
꽃 없는 계절 그늘진 숲이 또, 쓸쓸할까봐
마른 꽃잎도 떨구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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