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마지막 날도
비 날씨로 마감할 듯
오승철 시조집 펴고
‘터무니 있다’ 되뇌다가
시원한 차밭 사진에
몇 편 골라 옮긴다.
♧ 매봉에 들다
하늘은 말씀으로 세상을 거느리고
도랑물은 구름으로 하늘을 거느리네
봄날이 다하는 길목
누가 나를 거느리나
볼 장 다 본 장다리꽃
설렘도 그쳤는데
삼십년 외면해온 그 오름에 이끌렸네
첫 시집 못 바친 봉분
무릎 꿇고 싶었네
사랑도 첫사랑은
한 생애 허기 같은 거
주거니 받거니 잔 돌리는 장끼소리
봄 들판 깽판을 놓듯 푸릇푸릇 갈아엎네
♧ 가파도 2
가파도 한 생인들 가파르지 않겠는가
낮은 데로 임하신
납작섬 고추잠자리
물 건너 모슬포 하늘 성호를 긋고 있네
섬에서도 바다로 끝나지 않는 길이 있네
더러는 자맥질하듯
마당으로 들어가
한동안 호박꽃 속의 숨비소릴 엿듣네
승선권 한 장이면
돌아갈 길 예약 받듯
<천국 가기 쉬운 교회
지옥 가기 어려운 교회>
그 곁을 스쳐만 가도 천당길이 보이겠네
♧ 제주골무꽃
떴다!
포롱포롱 봄이라 꽃들이 떴다
잠시 방심한 사이
오종종 내민 숟갈
춘궁기 꽃자리마다
떼거지
그리움 떴다
♧ 주전자
기차처럼 떠나네
그리움 다 내뿜고
달강달강 온몸으로 감당해낸 끌탕의 세월
가을볕 아래서 보면
아,
저 금빛 관음불상!
♧ 내 사랑처럼
어쩌다 이끌려와 아침 저녁 조아리던
조천포구 그 뱃길들
말끔히 지워지고
아직도 유배 중인지 연북정*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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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北亭 : 유배인들이나 관리들이 기쁜 소식을 기다리며 임금이 계신 북녘을 향해 절하던 정자.
♧ 원담*
누군가 별빛들을 말끔히 거둔 새벽
일순 물때를 놓친 멸치떼가 파닥인다.
덩달아 세상 왔다가 돌아가질 못한다.
잠잠한 바람에도 바닷길은 믿지 마라.
언제 그대 안에 내 그리움 갇혔는지
다시금 밀물이 와도 못 나가는 돌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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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담: 밀물에 들어온 고기들이 썰물 때 나가지 못하도록 돌로 쌓아 만든 제주도의 전통적인 자연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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