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오승철 시조와 녹차밭

김창집 2015. 6. 30. 08:20

 

 

6월 마지막 날도

비 날씨로 마감할 듯

 

오승철 시조집 펴고

‘터무니 있다’ 되뇌다가

 

시원한 차밭 사진에

몇 편 골라 옮긴다.

   

 

♧ 매봉에 들다

 

하늘은 말씀으로 세상을 거느리고

도랑물은 구름으로 하늘을 거느리네

봄날이 다하는 길목

누가 나를 거느리나

 

볼 장 다 본 장다리꽃

설렘도 그쳤는데

삼십년 외면해온 그 오름에 이끌렸네

첫 시집 못 바친 봉분

무릎 꿇고 싶었네

 

사랑도 첫사랑은

한 생애 허기 같은 거

주거니 받거니 잔 돌리는 장끼소리

봄 들판 깽판을 놓듯 푸릇푸릇 갈아엎네

 

 

♧ 가파도 2

 

가파도 한 생인들 가파르지 않겠는가

낮은 데로 임하신

납작섬 고추잠자리

물 건너 모슬포 하늘 성호를 긋고 있네

 

섬에서도 바다로 끝나지 않는 길이 있네

더러는 자맥질하듯

마당으로 들어가

한동안 호박꽃 속의 숨비소릴 엿듣네

 

승선권 한 장이면

돌아갈 길 예약 받듯

<천국 가기 쉬운 교회

지옥 가기 어려운 교회>

그 곁을 스쳐만 가도 천당길이 보이겠네

 

 

♧ 제주골무꽃

 

떴다!

포롱포롱 봄이라 꽃들이 떴다

 

잠시 방심한 사이

오종종 내민 숟갈

 

춘궁기 꽃자리마다

떼거지

그리움 떴다

 

 

♧ 주전자

 

기차처럼 떠나네

 

그리움 다 내뿜고

 

달강달강 온몸으로 감당해낸 끌탕의 세월

 

가을볕 아래서 보면

 

아,

 

저 금빛 관음불상!

   

 

♧ 내 사랑처럼

 

어쩌다 이끌려와 아침 저녁 조아리던

조천포구 그 뱃길들

말끔히 지워지고

아직도 유배 중인지 연북정*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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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北亭 : 유배인들이나 관리들이 기쁜 소식을 기다리며 임금이 계신 북녘을 향해 절하던 정자.

 

 

♧ 원담*

 

누군가 별빛들을 말끔히 거둔 새벽

일순 물때를 놓친 멸치떼가 파닥인다.

덩달아 세상 왔다가 돌아가질 못한다.

 

잠잠한 바람에도 바닷길은 믿지 마라.

언제 그대 안에 내 그리움 갇혔는지

다시금 밀물이 와도 못 나가는 돌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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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담: 밀물에 들어온 고기들이 썰물 때 나가지 못하도록 돌로 쌓아 만든 제주도의 전통적인 자연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