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여름 자귀나무 꽃

김창집 2015. 7. 18. 18:47

 

어제와 오늘

여름 숲길을 걸었다.

 

어제는 오름 강좌 9기생들과

물영아리오름과 물보라길

 

오늘은 오름 3기출신들과 한라산 둘레길

이승악과 사려니오름,

그리고 사려니숲길 일부 구간.

 

여름이어서 꽃이 별로 없었고

조금 늦었지만

이 자귀나무 꽃만 자랑스럽다.

 

금슬 좋은 부부를 상징하는 합환목

그 야들야들한 분홍빛 가는 꽃술

 

이 꽃이 지고나면

다시 가을꽃을 기다려야 하는 숲길.

 

 

♧ 여름예찬 - 임영준

 

불볕이 아니라면

어이 바람을 품으랴

 

달큼한 밤이라

별이 더욱 가깝구나

 

싱그러운 녹음방초에

그늘도 맛깔지다

 

아이야

더욱 눈부시구나

 

계곡에 들면 물이 되고

바다에선 노래가 되는구나

 

알몸으로 어디든

당당히 스며들어도 되겠다

 

 

♧ 여름나무 - 오보영

 

바라볼 수 있는 네가 있어

복되다

함께 하는 너 덕분에 기쁘다

 

너로 인해

세상일

다 잊어버릴 수 있어서 좋다

네 품에서

쉼을 한껏

누릴 수 있어서 좋다

 

흐트러진 맘

다시

다독일 수 있어서 좋다

 

흐려진 눈

다시

맑게 할 수 있어서 좋다

 

넌 언제나

 

품어주니까

 

같은 맘으로

 

반겨주니까

 

 

♧ 여름, 숲에서 살리라 - 김덕성

 

뜨거운 햇살을 피해

숨을 양 숲속에 깊숙이 뭍이니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푸르른 잎들

 

맘껏 숨을 들어 마시니

온 몸에 시진대사가 일어나

새 정기로 갈아주며

잘 오셨다고 속삭인다

 

하늘이 싫어선가

온 통 가린 틈새로

가느다란 햇살만이 스며들고

이따금 구름이

넘나들고

 

산새들은

나무사이에서 노래하는

평화로운 한마당이 열리는 숲

내 영혼이

씻은 듯 맑아지고

 

난 이 여름, 숲에서 살리라.

   

 

♧ 여름에는 - 박종영

 

진한 여름이 피어납니다. 누가 재촉하지 않아도

노랗게 아니면 파랗게 여름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한적한 밭 귀퉁이에 도라지가 푸른 빛깔 하늘 옷을 입고

줄기마다 다섯 개의 각을 이루며 피는 꽃,

파스름한 웃음이 마음에 수를 놓습니다

언덕배기엔 햇살 속을 걸어온 자귀나무가

다정스레 부챗살 꽃술을 포개고,

밤이 되자 비밀스레 별빛을 모아

일손 지친 부부의 방에 사랑을 넣어줍니다

여름의 꽃 개망초는 푸대접에 한이 되는 듯,

꽃진 자리 추스려 후덥한 바람을 밀어냅니다

그 옛날 여름이면 식은 보리밥 찬물에 말아

풋고추 집 된장에 찍어 먹던 가난은 가고,

이제 평화로운 시절 모두가 얼싸안고 살아가는데

세상 가장 황홀한 빛깔로 으스대는 나무들의 뿌리에

여름은 늘 푸름의 의무를 다그치는 절기라,

오늘은 비와 바람의 기억으로 다정한 들꽃 이름

막힘없이 불러보는 것으로도 행운입니다.

   

 

♧ 여름 산책 - 김근이

 

오늘

산책길에서 만삭이 되어

냇가에 내려앉은 여름을 만났다

서로 어깨를 겨루며 자란 풀들이

작은 바람에도 서로의 부대낌에

신경을 곤두 새우는 오후

산 그림자가

고인 냇물에 내려 앉아 목을 축인다

 

온통 푸른 열기가

산비탈을 타고 내려와

내 등줄기를 파고들며

여름의 미감을 전해온다

 

인간이

이 더위에 익숙해 질 때 쯤 이면

여름은 저 산 위에서

가을을 분만하고

서서히 돌아갈 채비를 차릴 것이다

산비탈을 타고 흘러내리는

가을을 받아 들고

인간은 또 다른

새로운 것에 만취할 것이다

 

이 여름의 무지한 폭염에

매 말라 가는

땅속에 뿌리내린 생명들이

하나같이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데

서산에 걸린 햇볕은

내 안경 너머로 눈 부신다.

   

 

♧ 여름 숲에서 - 박인걸

 

당신의 기운이 충만한

칠월의 숲속에서

아담의 이비인후의

루하흐를 경험합니다.

 

참 솔이 내뿜는

살균의 효능이나

떡갈나무 잎의

피톤치드가 아닙니다.

 

정수(淨水)된 공기와

아침 같은 고요가

찬란한 햇살과 섞여

한껏 채워지는 편안함보다

 

더 충만한 생명의 신비가

오염된 영혼을 감싸며

무성(無聲)의 광선으로

세속의 욕망을 녹입니다.

 

누구도 채워줄 수 없고

이끌 수 없는 힘이

숲속을 걷는 나의 온 몸을

강력하게 포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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