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태풍, 그리고 다려도 일몰

김창집 2015. 7. 12. 14:33

 

태풍 ‘찬홈’의 영향으로

오늘의 오름행은 취소되고

이것저것 뒤적이다

결국 사진 정리를 하는데

2007년 7월에 찍은 다려도 일몰이

눈에 띈다.

 

당시 카메라를 구입해 얼마 안된 때여서

이것저것 돌려보며 그냥 막 찍었는데

그런 거친 사진이 뭔가 울림이 있어 보인다.

 

아침에 엄청나게 쏟아지던 비도 멈추고

지금 날씨는 조금 어둑한 채로 바람도 멈춘

고요한 정적뿐인 낮이다.

 

 

♧ 태풍 - 홍일표

 

  독수리, 독수리떼다 너무 무거워 날지 못하는 고만고만한 삶의 덩어리들 머리채 휘어잡아 날려버린다 뒤집어버린다 지상에 게딱지처럼 달라붙어 전후좌우 가지런히 정돈된 질서가 마뜩찮은지 어지러이 흐트려놓는다 난동이다 야생의 거친 짐승이다 한 번도 젖어본 적 없는 유리창의 차가운 가슴을 부수고, 자리 한 번 옮길 줄 모르는 소나무의 외고집을 뿌리째 뽑아던진다 항아리의 숨통을 막고 있는, 무거운 모자 뚜껑이 날아가고, 허명으로 번쩍이던 거리의 간판도 한순간 떨어져 부서진다 수천 리 질주하던 바람이 자진하여 쓰러진 지상의 한켠, 하늘에 새로 돋은 별들이 파란 눈을 반짝이며 폐허의 한 귀퉁이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

 

 

♧ 태풍 - 권오범

 

바다가 열 받아 낳은 외눈박이

영양가 많은 어미 체온 먹고 거리낌 없이 자라

어미 뱃가죽 출렁이게 짓밟고 회오리치는

불효막심한 것

 

비구름 끌어안고 성숙해지면

힘 주체 못해 몸부림치다

뭍에 올라

파괴본능 드러내놓고 천방지축

 

종요로운 다리 잘라 팽개치고

산허리, 냇둑, 길 예저기 베어 먹은 지난 상처

아물지 못해 벌겋게 덧났건만

다시 넘보는 피도 눈물도 없는 몹쓸 것

 

온난화와 정분나

다산 소문 파다한 바다

심심하면 쑥대밭 만들러 올 고집불통 등쌀을

억겁의 붙박이 바위인들 어떻게 버티랴

   

 

♧ 태풍이 온다 - 鞍山 백원기

 

가을 태풍 볼라벤이 온다

괴괴한 세상

곧 닥칠 것만 같은

정적이 감돌고 있다

사면은 어둡고

자연의 숨소리조차 멈춘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해가 생기고 달이 생기며

별이 만들어 지던 때

가득히 밀려온다

창문이 흔들리고

나뭇잎이 경련하듯

떨고 있는 불안한 시점

 

무시무시하게

호통 칠 듯 하늘이

땅을 노려보고 있다

나무가 뽑히고

유리창이 깨지는

칼처럼 휘두르는 위력

B-29 비행 음이 가까워지고

기상 캐스터 목소리가 다급하다

   

 

♧ 태풍 유감 - 오보영

 

제발

아무 흔적 남기지 말고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숨죽이고 있는 몇 시간이

마치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길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네 못된 성정을 익히 알고 있는 터이라

 

혹여 네가 이전처럼 마구 할퀴고 지나가

 

여린 가슴에 큰 상처 남길까

 

염려함이라

 

 

♧ 태풍의 눈 - 강효수

 

오만과 교만으로 충만한 무지한 것들

열섬에 갇혀 거짓에 충실한 것들

고요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위해

나는 큰 춤을 추노라

기쁨은 슬픔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흐름을 거역한 왜곡을 위해 나는

거꾸로 돌며 돌며 진한 푸닥거리 하노라

 

내 숨소리는 거칠어도

내 춤사위는 세상을 뒤집어도

나는 큰 눈물 흘리노라

나의 눈은 정온하나니

나의 심장은 평화롭나니

너의 영혼을 위탁하지 말지어다

원망은 없어라 슬픔은 없어라

 

귀 열고 거친 숨소리를 들어라

느껴라

크게 눈 뜨고 거대한 흐름을 보아라

느껴라

들리지 않거든 보이지 않거든

죽은 심장 주물러 벌써 죽어 있음을 느껴라

내가 내가 아님을 느껴라

 

나의 눈은 정온하나니

나의 심장은 평화롭나니

나는 흐름에 충실한 흐름일지니

나는 이제 크로노스를 죽이노라

나는 다시 카이로스를 살리노라

나는 흐름의 평화로 눈 감으며

나의 눈은 온전한 질서로 소멸하나니

 

 

♧ 태풍 - 오보영

 

바람이어라

정녕

 

한순간

발길 멈추게 하고

가슴 얼얼하게 만드는

이 강한 부딪힘은

분명

 

휘몰아친 소용돌이 태풍이지만

틀림없이

 

등 돌리고 잠시

제자리에 머물러있기만 하면

금방

스치고 지나가는

 

곧 흔적 없이 사라져갈

 

덧없는 바람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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