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오승철의 시와 뱀딸기

김창집 2015. 7. 21. 12:35

 

 제주의 아픈 역사를 두고 공적 담론은 반복해왔다.

“터무니없다”고! 오승철 시인의 제3시집은 시적 언어로

반발하고 저항한다. 그리고 무너진 집터를 찾아

역사의 흔적들을 짚어가며 여기 소리치고 있다.

“터무니 있다!” 

                        -박진임(문학평론가, 평택대 교수)    

 

 

♧ 겡이죽

 

어선 멏 척 태흥포구

경매도 다 끝나고

세멘 바닥 윷판이라도 벌일 것 같은 오후

가끔씩 도둑고양이 순찰하듯 다녀간다

 

이곳에서는 ‘게죽’이나 ‘깅이죽’이라 하지 말라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없는 파도처럼

“뭐 마씸?”

되묻기 전에

말하시라 겡이죽!

 

따져보면,

수평선은 넘겨야할 낙선落選이다

모로 가든 도로 가든 사람팔자 윷가락 팔자

장마철 생비린내도 녹여낸

저 겡이죽

   

 

♧ 행기머체

    -제주에 이르시거든 행기머체 앞에서 “고시레” 하고 가시라

 

그게, 그러니까

정말로 거짓말 같이

누가 단을 쌓고 설법한 것도 아닌데

멀쩡한 봄의 들판에 솟아난

놋그릇 바위

 

이 세상 어느 허기 돌아오질 못하는가

오름 두엇 집 두엇

갑마장길 무덤도 두엇

사람이 왜 왔느냔 듯 수군수군 갈기 몇 개

 

성읍에서 의귀리

또 거기서 가시리

<4.3땅> 화산섬의 범종 같은 바위 앞에

“고시레” 허공에 고하는

메아리로 젖는다

 

 

♧ 몸국

 

그래, 언제쯤에 내려놓을 거냐고?

혼자 되묻는 사이 가을이 이만큼 깊네

불현듯

이파리 몇 장 덜렁대는 갈참나무

 

그래도 따라비오름 싸락눈 비치기 전

두말떼기 가마솥 같은

분화구 걸어놓고

가난한 가문잔치에 부조하듯 꽃불을 놓아

 

하산길 가스름식당

주린 별빛 따라들면

똥돼지 국물 속에 펄펄 끓는 고향바다

그마저 우려낸 몸국,

몸국이 되고 싶네

 

 

♧ 가파도 3

 

가파도 남녘 길은

배흘림 몽돌담길

허물거니 올리거니 바람의 손 사람의 손

바다는 섬을 그렇게

길들이고 있었다.

 

이승 다음 저승이라면

저승 다음 그 뭣일까

포구 곁 살짝 숨은 고인돌만한 할망당

수탉의 꽁지깃 같은 물색 지전 나부낀다.

 

나부낀다 물색 지전

나부낀다 바다 한 자락

빌어도 빌지 않아도

뒤척이는 그리움

도항선 따라오던 섬 고인돌로 놓인다

   

 

♧ 낙장불입

 

공룡 발자국 따라 생각 없이 오던 강,

울주 천전리 각석

그냥 가질 못했는가

몸 한 번 꿈틀한 자국 고스란히 남아 있네

 

그건,

강이 아닌 사람의 일이었네

하늘에 고백하는

나스카 문양이듯

장삿길 나의 아버지 그 목선도 거기 있네

 

이승과 저승이야 흥정하듯 오가는 거

물 쓰듯 세월을 쓰고

본전 생각 간절한 가을

내 생애

회심會心의 일타一打,

아차 싶은

‘풍’ 껍데기

 

 

♧ 이윽고

 

나는 부활이다

신제주 왕벚나무

버찌도 이파리도 다 거둔 겨울 허공

지상의

새 울음 하나만

걸어놓은 저녁 한 때

이윽고,

어슬어슬 불빛들이 돌아오면

‘날 잡아봐라’ ‘날 잡아봐라’

되살아나는 뫼비우스 띠

골목길 못 달랜 허기 싸락눈발 끌고 온다

밤새 누굴 향해 떨구던 낙엽일까

아내의 가게 앞에 일수, 달돈, 반라의 여자

쓸어도 다시 홀리는

안부 같은 명함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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