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름 8기 팀들과
북돌아진오름에 올랐습니다.
지금은 그런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동물오름으로 부르고
지도에도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제 가을인가 봐요.
길 벌판에서
여러 가지 꽃들을 만나고 나서
바로 오름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물봉선입니다.
물봉선은 봉선화과(科)에 속한 한해살이풀로
높이는 60cm 정도이고,
잎은 어긋나고 넓은 피침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습니다.
꽃은 8~9월에 홍자색으로 피는데,
꿀주머니는 넓으며 끝이 안쪽으로 말립니다.
피침 모양의 열매는 길이가 1~2cm이며
성숙하면 탄력적으로 터집니다.
산골짜기의 시냇가에서 흔히 자라며
우리나라, 중국 동북부, 일본 등지에 분포합니다.(daum사전)
♧ 물봉선의 고백 - 이원규
내 이름은 물봉선입니다
그대가 칠선계곡의 소슬바람으로 다가오면
나는야 버선발, 버선발의 물봉선
그대가 백무동의 산안개로 내리면
나는야 속눈썹에 이슬이 맺힌 산처녀가 되고
실상사의 새벽예불 소리로 오면
졸다 깨어 합장하는 아직 어린 행자승이 됩니다.
하지만 그대가
풍문 속의 포크레인으로 다가오고
소문 속의 레미콘으로 달려오면
나는야 잽싸게 꽃씨를 퍼뜨리며
차라리 동반 자살을 꿈꾸는 독초 아닌 독초
날 건드리지 마세요
나비들이 날아와 잠시 어우르고 가듯이
휘파람이나 불며 그냥 가세요
행여 그대가
딴 마음을 먹을까봐
댐의 이름으로 올까봐
내가 먼저
손톱 발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며
맹세를 합니다 첫눈을 기다립니다
내 이름은 물봉선
여전히 젖은 맨발의 물봉숭아 꽃입니다
♧ 물봉선(14) - 손정모
한기가 살얼음처럼 깔리는
만추가 되면
개울을 따라 번지는
선홍색의 꽃물결
5학년 동급생이어도
말 한 마디
없었던 아랫동네
소녀
늦가을 한낮에 들러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엄마의 재 뿌리는데
좀 도와줄래?
나룻배에서 재를 날리고
석양이 지는 강둑에서
눈물 글썽이며 흐느끼고는
마을 떠난 그녀.
꽃잎에 내비친 실핏줄마다
상기된 소녀의 얼굴
자줏빛 저녁놀에 잠겨
불길처럼 일렁인다.
♧ 당신이 그리운 날은 - 이복란
빛 부신 아침이오나
제 마음 외진 곳엔
석양빛 곱게 내려앉는 저녁입니다.
안식처를 찾지 못해 고뇌하는
영혼이 가여운 사람의
그림자를 밟고 선 이 시간도
그리움의 살을 메기어 쏘아 올린 활촉이
더 이상 다가서지 못해
절망하며 되 돌아와 박히는
침상 위에 엎디운 저물녘,
물봉선화 여린 꽃잎 위에
님의 모습 겹쳐 수를 놓는
선홍의 수줍은
눈. 물. 방. 울 입니다.
♧ 물봉선 - 권오범
외로움이 터전인 심심산천
태어나자마자 최대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야 하는 팔자기에
늘 허출한 깔때기가 되었다
꼬리마저 살짝 말아 내린 채
오매불망 미지의 사랑만 그리다 보니
홍 자줏빛으로 달아올라
열없이 건넌 성하의 강,
호시절 지나 처참하게 사그라진 꿈
가까스로 추슬러
부르르 떨리는 조막손만 남았는데
고추잠자리야 헤살부리지 마라
장맛비 유달리 지짐거려
외로움이 독이 되어 서린 몸
나를 건드리지 말아다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으니까
♧ 물봉선 - 김승기
예전에는
논밭둑 도랑가에서도 지천으로 피었지요
장마철에 홍수 일면
물에 쓸려 허리 부러져도
금새 뿌리 뻗어 새롭게 꽃을 피웠지요
가슴에 품은 정열
건드리면 터져 버릴까
꽤나 조바심도 떨었지요
이제 깊은 산에서 살아야 하는 몸
지나간 꿈으로 남았네요
더 외로워지겠어요
씨방 하나 제대로 맺지 못하고
뿌리로만 뻗는 몸 될지라도
내가 있어야 하는 곳
당당하게 꽃 피우겠어요
날로 더럽혀져 어지러운 세상
내 몸 자리잡을 한 줌의 땅덩이 남지 않을지라도
가장 청정한 물가만을 골라
터 잡고 꽃 피우는 고집
버리지 않겠어요
♧ 사랑 - 제산 김 대식
갈참나무 우거진 숲으로
키 작은 풀 나무들이 듬성듬성 돋아난
아무도 없는 낯선 길을 걸었다.
쑥대밭을 지나 외진 길가엔
초롱꽃이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나비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비치고
작은 나무 사이에 고개 내민 꽃
팔랑이는 나뭇잎과 가지 사이로
정 깊은 박새의 사랑이 살았다.
그 외진 골짜기에도
물봉선화 고개 숙여 웃고 있었고
냇물이 하루종일 조잘거렸다.
산새들 즐거이 노래 불렀고
솔바람은 골 사이로 불고 있었다.
그곳엔 너를 잊으려 왔던 한 바보가
지천으로 깔린 너를 담으며
쓸쓸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광덕고개에서 - 윤인구
늙은 작부 개팔자 같은 길
추적추적 서글프게 안개비 내리네
비에 젖은 날개쭉지가 무거워
산새들도 울며 쉬며 넘어가는 고갯길
옛날 옛적에 조금 모자라는 산적이 한 명 살았다는데
개나리봇짐장수 나그네를 만나면 무슨 애기들 했을까
머나먼 고향 버지니아의 푸른 잔디를 노래하며
카라멜 한 조각을 씹으며 고개를 넘어가던 키 작은
흑인병사는 지금 어디서 혼자 쓸쓸이 늙어가고 있을까
비척거리며 넘어가는 물봉선화 피는 여름 끝자락
노인 몇 명 태우고 덜컥거리며
하루 두 번 사창리행 버스는 가고, 가끔은
다정한 여인의 품이 그리운 남자가 되기도 싶었지만
당신의 길은 언제나 안개속 이었고 불은 라면처럼
꼬여있었지, 오늘도 국망봉을 바라보지 않기로 하자
한때는 당신의 깃발도 저 봉우리 어디쯤에 흔들거렸는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 안개속에 보일 듯 말 듯
당신 젊은모습 같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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