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칠석날에 빛나던 흰부용화

김창집 2015. 8. 21. 17:10

 

어제 칠석날

모처럼 만난 흰부용화

아침에는 일기예보가 그랬지만

낮에 별 이상이 없어

비가 안 오는 줄로 알았다.

 

요즘 같은 개명천지에

일기예보 안 맞을 리 있겠냐 하면서도

금요일 오름 가서 실행하는 강좌 때문에

은근히 안 맞기를 고대했다.

 

밤에 별 몇 자리

구름 사이로 보이고

몇 시에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지 몰라도

두어 시 넘어 억세게 비가 내렸다.

 

아침까지 내린 비가

도저히 야외강좌 못하겠다고 여기며

차를 타고 현장에 갔는데

비 한 방울 안 맞고 무사히 마쳤다.

이제야 생각해 보니

견우직녀만 어젯밤에 못 만난 것 같다.

 

 

♧ 그리움 - 草岩 나상국

 

이날만 기다렸다지

보고 싶어도 그리워도

건널 수 없는 강 끝에서

이날만 기다렸다지

단 하루의 해후를 위해서

삼백예순 나흘을

기다렸다지

칠월칠석날 밤

가만히 귀 기울여

까마귀 까치의 날갯깃, 등 잇대어 만든

烏鵲橋오작교 밟아

베 짜던 여인 치맛자락 휘날리며

소 몰던 남자 오작교 건너며

진한 눈물 배인 그리움

토하며 목 놓아 울었다지

겨울 눈 내리는 날만 기다린다지

전설 속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을

내 사랑 향한 그리움 속으로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길

소원하며 기다린다지

그 진한 그리운 날을

   

 

♧ 칠석(七夕)에 내리는 비 - 강세화

 

이승이 저승 같아서

그리움은 길길이 자라고

낮은 음성이 애틋하게 내립니다

철렁철렁 흐르는 물은 가슴에 넘칩니다.

 

조바심에, 조바심에

베틀소리도 밀쳐두고

오작교 서두르는 더운 숨이 오죽할까

만나자 이별인 밤이 아득하게 젖습니다.

 

서러운 내력인데

잊을 수는 없습니다

멀찍이 퍼지는 그늘을 환하게 여기면서

사분사분 느끼는 정이 눈물처럼 고였습니다.

   

 

♧ 머슴 - 권달웅

 

  칠석날 낙동강에 은하수가 걸리면 안동포 백 필이 머슴의 가슴에 널리더라. 숨어 울던 새댁아, 시퍼런 강물에 안동포 흔들어 빨고 살아온 한이 까마귀떼 울음으로 사무치던가. 등급은 허리로 남도 수심가를 부르는 머슴아, 오늘은 물고기떼 새까맣게 몰려와 네 울음 칠성판에 흩어주고 있다.

   

 

♧ 그리운 곳으로 나 돌아가고파 - (宵火)고은영

 

나 돌아가고파

숲의 정수리 햇살 머금고

물총새 날갯짓 하늘을 꿈꾸는....

어둑한 대기와 푸른 안개 정원

물오른 생명의 순결한 서약

신비로 영원히 머무는 곳

 

봄,

이슬비 소리 벗삼아

수런거리는 굵은 줄기 나무들

천년을 버티다가 단비를 마시는 목젖으로부터

그 목젖으로부터 새움이 돋는 곳에 이르면

녹색의 살 같은 분분히 날리는 바람 한 올

흐르는 강물에 부유하던 찬란한 꿈을 묻던 시간

툭툭 터지는 숲의 환희로 나 돌아가고파

 

청명한 별빛으로 등불 삼고

은하수 다리를 건너 365일 칠월 칠석의 해후처럼

멍든 가슴으로 밤새 눈물 흘리던

첫 사랑 가난에 배곯아 서럽고

초라한 그리움이 신작로를 휘적거리며

지구 바깥, 이방의 거리를 배회해도

설렘 한 삼태기 부화하는 날

 

수치도 모르고 알몸으로 여름내 바다에 물장구치던

오줌싸개 시절로 돌아가고파

그 시절로 돌아가고파

   

 

♧ 어정칠월 - 권오범

 

휘황찬란한 도회지에서

너나없이 유리걸식하는 세상

밤낮 분간이 어려워

매미들 사랑노래 따라 가출한 잠

 

두레풍장 소리 잊고 살다보니

칠석날 하늘마저 맨송맨송해

견우직녀 눈물의 상봉도 없는 것 같아

얼큰했던 늴리리쿵더쿵 시절이 그립다

 

배동바지부터

장마와 열대야가 번갈아 쥐어짜

물퉁이 되어 건너는 성하의 강에

징검돌처럼 놓인 입추 말복

 

어정버정할 수도 없는

현대판 머슴살이

처서가 더위 팔아버리고 나면

소문처럼 모기 입이 삐뚤어지려나

 

 

♧ 하늘에서 뿌려대는 직녀의 눈물 - 서지월

 

  일상의 우리들은 피어나는 꽃의 감사로 늘 평온하게 살아가지만 저 異國같은 別離의 하늘나라 직녀는 무얼 싸안고 살아갈까요. 생각하면 그런 삼백 예순날의 직녀의 설움은 울음을 대는 강물과 같은 것, 특히 밤공기가 유난히 푸근하고 철철 넘쳐흐르는 은두레박같은 달이 밝은 밤 직녀는 무얼 하겠어요. 우리는 평상(平床)에 누워 배를 드러내놓고 밤하늘 별을 보면서 天上의 그 많은 별들이 다 찬란히 빛나는 것인 줄로 알지만

자세히 보면 눈물 글썽이며 돋아나는 별 하나……, 저 별은 누구의 별일까요. 地上의 춘향이가 감당해 낸 업보보다도 더한, 베를 짜다가 원통하면 옥에 갇힌 춘향이처럼 설워 뿌려대는 淨淨한 눈물.

 

  그런 날의 우리들은 견우와 만난다는 칠석날을 고대하면서 마음 뻗는 가지마다 붉은 석류꽃을 피워대지만 춘향이 마음 같지 못할 거라구요. 직녀 마음 같지 못할 거라구요. 까마귀들이 윤이 나는 실한 다리를 놓아서 限 풀어주려 할 때면 아무리 사악한 사람도 그날 밤은 마음 정갈히 해서 솟구치는 풀벌레 소리 소나타로 귀를 열며 축하의 메시지를 날려 보내지요.

 

  그런 하염없는 직녀의 눈물 속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간간한 소금기도 들어있어 반짝반짝 비쳐오며 우릴 인내하게 합니다. 요는 사랑이라는 거 없이는 못 살아가는 일이고 보면 그만큼한 非情도 인간사 위의 별들이 더 잘 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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