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양전형의 봄꽃 시편

김창집 2016. 2. 18. 10:57

 

아침 일찍 3층 옥상에 올라

터진 수도관 복원공사를 하는데

정말 바람살이 독했다.

 

그러나 해가 떠오르고

차츰 하늘이 걷히면서

파란 하늘이 열리고

바람이 잦아들며 기온이 조금씩 오르는지

견딜 만하였다.

봄이 오는 증거이리라.

 

내일이면 우수(雨水),

우수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데

얼어붙은 이 강산에

언제면 봄이 오려나.

 

 

♧ 진달래

 

다시는 나를 부르지 마라

내 맘 속 천 리 먼 길

사랑의 티가 박힌 늑간살을 지나

어질증 폭발처럼 흐드러지게

알몸 도발을 다시 해야 하느니

나를 부르지 마라 피지 않겠다

어디 한 번

눈물 괴이도록 열매 하나쯤

벅차게 달려준 적 있었는가

헤픈 늦삼월

고요만 무성한 허기진 숲속

제발 내 이름 부르지 말라니까  

 

 

♧ 제비꽃

 

울고 싶었구나

동긋이 핀 눈망울에 초롱초롱 자줏빛 이슬

너 곧 울겠구나

내 사랑 잃던 날

오늘처럼

야트막한 오름까지 먹장구름 앉았음을

누가 일러 주더냐

그때 내 안에 내리던

하염없는 장맛비가 생각나

너 금방

왈칵 울고 말겠구나

 

 

 

♧ 산자고

 

봄들판 마파람에 바짝 엎디어

날마다 감치는 그대 생각

가슴이 아리겠다 눈이 고프겠다

그러나 그립다 하지마라

그립다는 말은 하는 게 아니다

먼 하늘 보며

꽃몸 하나에 생각 한 송이

민얼굴로 피어있으면 그리움이다

 

 

♧ 피뿌리풀꽃*

 

뿌리에 흐르는 피 끌어올려

꽃소리로 나를 말하겠네

뒤안길엔 아린 무자년도 있지만

속세의 각다귀판은

가풀진 오름 깊이 묻었네

 

제주 민중의 피가 이리 곱게 사붉었네

노을도 부끄러워 조용히 눈 감는데

누구든 내 핀 가슴 보면

먼발치서 애간장만 태우시게

 

저 하늘에다 대고 청정하지 못한 사람

그 가슴패기 함부로

나를 만지려 들지 말게

온몸 피 다 쏟아내며

오름 비탈에 눕고 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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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뿌리풀꽃 :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청정 오름에만 자생하는 멸종 위기의 꽃

 

 

♧ 철쭉꽃

 

다 펼친 게 아름다운가

다 숨긴 게 아름다운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거침없이 속 다 꺼낸 너를 용서한다

붉은 고백 하나로도

너는 죄를 다 씻었다

네 붉은 입술에 하늘이 내려앉아

묵묵히 불타고 있구나

아, 너의 뜨거움을 바라봄으로

너의 소갈머리 닮은 꽃눈이 지금

북풍설한의 빙점 똟고 돋아난

내 안의 꽃눈들이 지금,

아아 나는 몰라요 그대여!

나 지금 철쭉이어요 피고 싶어요

 

 

♧ 설앵초

 

그리움이라 해야 하나

수줍어서 말을 못하겠네

잔설을 녹인

앙증맞은 앵둣빛 가슴앓이

 

망막을 거슬러 한 천년쯤

저 편 아득한 기억

단칸방 서늘한 이불

불 지피던

아, 설레어서 도무지

무슨 말을 못하겠네  

 

 

♧ 각시붓꽃에게

 

너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면서

숲 속에 숨어

시골처녀처럼 고개 숙여 피었지만

나는 잘못이 많으면서도

엄숙한 태양의 면전에 고개 번쩍 쳐들고

건방지게 피어 있지

 

너는 결코 작은 게 아냐 내가 아무리 곱게 핀다 한들

너 한송이 자태만 못하지

내가 아무리 정열적으로 피어 세상을 사랑한다 한들

너 한송이, 그 열정과 색깔을 낼 수가 없어

 

너처럼 예쁜 눈도 없고

너처럼 조용조용 말도 못하지

너 앞에 서면 나는 정말 작아져

내 꽃잎 화르르, 단숨에 지고 말아

꽃이 안 되고 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