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우수, 가는 곳마다 매화가

김창집 2016. 2. 19. 17:36

 

오늘은 우수(雨水).

서귀포 시가지 위에 자리한

쌀오름과 각시바위에 다녀왔다.

 

가면서 오면서 보니

제주시나 서귀포시 모두

매실나무란 나무 모두가

꽃을 난만히 피웠고,

가까이서 보면 벌써 한물갔다.

 

그렇게

그렇게 계절은 속일 수 없는 것

이제 겨울의 찌꺼기는 모두 날려버리자.

 

 

♧ 우수(雨水) - 박덕중

 

견고한 마음 다독이며

작은 불씨 하나로

한 시대의 살얼음 길목

어둠에 싸여 안으로만 울던

풀씨들,

당신의 거룩한 눈물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죄없이

한 동안 칼바람에 강타 당하고

메마른 눈물 삼키며

머리 끝 화관을 쓰고자

떨며 몸부림치며

차가운 하늘 아래 눈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 당신의 체온을 기다려 왔다

 

이제 어깨를 펴고 가슴을 펴고

눈물의 세례 받고

어둠을 젖히고 깨어나

눈을 뜨고 새로운 세상을 본다

 

당신은 한 동안 우리에게

차가운 고난을 주시다가

가엾은 마음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봄을 주시는가

 

닫혀진 마음들이

이제 창을 열고 나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심지에 불을 켜들고

푸르게 달려 가리라

 

 

♧ 우수(雨水) - 권경업

 

언제부턴가

엄동의 조개골 비집고

실낱같은 물길 열더니만

 

보세요, 큰일 났어요

 

그 물길 콸콸 그리움 되어

밤마다 내 가슴엔

막막한 홍수

 

 

♧ 우수절(雨水節) - 위선환

 

  남쪽에 내린 비가 땅을 적시며 올라오더니 내다보이는 길바닥이 척척해졌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머뭇거리는 빗발은 차고 비를 맞지 않아도 나는 목덜미가 식는다. 비는 어둡도록 내리다가 굵은 빗소리를 두드리며 문득 들어서는 것이므로 문을 잠그지 않는다. 작은 뜰을 잠깐 적시고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흐르고 빗물 뚝뚝 흘리면서 들어와서는 여러 겹으로 젖은 제 몸을 한 겹씩 벗어 내리는 것인데, 빠진 발톱 두엇도 집어내고 반 넘게 센 머리칼을 헤집어 털고 그리고는 내 팔을 끌어다 베면, 간 겨울에는 참 많이 야위었구나, 뼈마디가 잘게 걸리는 등허리에서 매만지는 손가락이 마르고 속울음 깨물며 울고 어깨가 얼어서 떨면서 비는 춥다. 어쩌겠는가. 조심스럽게 내 가죽을 벗어서 빗줄기를 덮고, 깊게, 더 깊은 안으로 끌어안는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