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김연미 시조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에서

김창집 2016. 2. 20. 11:51

 

♧ 겨울 부용화

 

전세자금 부족한가 봐

부용화 마른 봉오리

 

이삿짐 다 싸놓고

장독대만 닦고 있네

 

보따리

보따리 이고

 

*신구간도

그냥 보내

 

---

*신구간: 제주도에만 있는 이사 기간

   

 

♧ 수국 - 김연미

 

밤마다 머리맡에 푸른 등을 달았어

소나무 숲에 살던

도깨비 불빛들이

계집애 재잘거리듯 꿈속에서 놀았어

 

잠에서 빠져나온 개구쟁이 얼굴들이

돌담아래 숨어들어

꽃인 양 시침 떼는

제 모양 제 색깔대로 재잘재잘 피어났어

 

시간 따라 변하는 게 꿈만은 아니었어

무성해진 수풀 사이

두려움과 호기심 사이

꽃 안에 꽃을 피우며 길을 찾고 있었어.

   

 

♧ 보리수 열매

 

까까머리 성범이

볼이 빨간 영희도

 

눈이 큰 정미는

지금 봐도 예쁘네

 

늦가을 햇살 아래서

방글방글 웃고 있는,

 

토산교 졸업사진

여기에 있었구나

 

망오름 돌아가는

웃토산 올레길

 

보리수 가지가지에

그 얼굴들 보인다 

 

 

♧ 겨울 억새

 

적자 계산 메꾸기 위해

머리숱 다 빠져버린

 

십오 도쯤 고개 숙인

억새들이 서 있다.

 

북서풍 목소리 높이며

먼 들판을 깨울 때

 

고위직 소나무들

슬금슬금 붉어지는

 

방제선도 뚫려버린

적자생존의 저 들판

 

침묵의 느낌표들이

다수결로 서 있다.

   

 

♧ 인동초

 

하늘의 뜻이 닿아 향기 이리 진하구나

흰나비. 나비 나는 유월의 돌담 위에

초록의 터전을 고른 선녀들의 발이 곱다

 

손발 묶인 혹한에도 몰래몰래 모아둔 피

겨울을 견디어야 그 이름 붙는다지

가슴이 하얘질 때 쯤 폭탄처럼 피어난

 

양심의 넌출들이 사방으로 일렁일 때

그 그늘 그 아래에 무심한 햇살의 뒤편

노랗게 떨구어내는 저 야속한 땅의 정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 그도 악의 편이라던

가을을 만나는 밤 함께 켜든 유지의 촛불

광야의 뒤편에 서서 푸른 웃음 짓는다

 

 

♧ 목련

 

1.

나이 한 살 더 느는 게

영 못마땅했던 거야

 

이파리 뚝뚝 떨궈 놓고

털외투 푹 뒤집어쓰고

 

겨우내

문 걸어 잠근

고집쟁이 저 영감.

 

 

2.

친 손녀 재롱에는

왕고집도 다 꺾여

 

봄 햇살 웃음소리

가지 몇 번 흔들더니

 

슬며시

방문 열었네

 

벙글벙글

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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