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부용화
전세자금 부족한가 봐
부용화 마른 봉오리
이삿짐 다 싸놓고
장독대만 닦고 있네
보따리
보따리 이고
*신구간도
그냥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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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간: 제주도에만 있는 이사 기간
♧ 수국 - 김연미
밤마다 머리맡에 푸른 등을 달았어
소나무 숲에 살던
도깨비 불빛들이
계집애 재잘거리듯 꿈속에서 놀았어
잠에서 빠져나온 개구쟁이 얼굴들이
돌담아래 숨어들어
꽃인 양 시침 떼는
제 모양 제 색깔대로 재잘재잘 피어났어
시간 따라 변하는 게 꿈만은 아니었어
무성해진 수풀 사이
두려움과 호기심 사이
꽃 안에 꽃을 피우며 길을 찾고 있었어.
♧ 보리수 열매
까까머리 성범이
볼이 빨간 영희도
눈이 큰 정미는
지금 봐도 예쁘네
늦가을 햇살 아래서
방글방글 웃고 있는,
토산교 졸업사진
여기에 있었구나
망오름 돌아가는
웃토산 올레길
보리수 가지가지에
그 얼굴들 보인다
♧ 겨울 억새
적자 계산 메꾸기 위해
머리숱 다 빠져버린
십오 도쯤 고개 숙인
억새들이 서 있다.
북서풍 목소리 높이며
먼 들판을 깨울 때
고위직 소나무들
슬금슬금 붉어지는
방제선도 뚫려버린
적자생존의 저 들판
침묵의 느낌표들이
다수결로 서 있다.
♧ 인동초
하늘의 뜻이 닿아 향기 이리 진하구나
흰나비. 나비 나는 유월의 돌담 위에
초록의 터전을 고른 선녀들의 발이 곱다
손발 묶인 혹한에도 몰래몰래 모아둔 피
겨울을 견디어야 그 이름 붙는다지
가슴이 하얘질 때 쯤 폭탄처럼 피어난
양심의 넌출들이 사방으로 일렁일 때
그 그늘 그 아래에 무심한 햇살의 뒤편
노랗게 떨구어내는 저 야속한 땅의 정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 그도 악의 편이라던
가을을 만나는 밤 함께 켜든 유지의 촛불
광야의 뒤편에 서서 푸른 웃음 짓는다
♧ 목련
1.
나이 한 살 더 느는 게
영 못마땅했던 거야
이파리 뚝뚝 떨궈 놓고
털외투 푹 뒤집어쓰고
겨우내
문 걸어 잠근
고집쟁이 저 영감.
2.
친 손녀 재롱에는
왕고집도 다 꺾여
봄 햇살 웃음소리
가지 몇 번 흔들더니
슬며시
방문 열었네
벙글벙글
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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