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오름 8기 회원들과
절물오름엘 올랐다.
자연휴양림으로 더 잘 알려진 절물오름.
숲 어디선가 가을 향기가 흐른다.
털이슬에 맺힌 이슬방울
드디어 벌어지기 시작하는 누리장나무 열매,
상사화는 이미 다 지고
쑥부쟁이 수줍게 피어난다.
더 숨길 수 없는 가을은
산딸나무 열매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 좋은 가을이 오는데 - 김덕성
팔월의 끝자락
폭염의 팔월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늘의 순리라 말들 하지만
미움도 있었던
참 긴 여름이었지요
이제 내 곁을 떠나는 그대이기에
아픔이 있어서도
정으로 덮어야지요
가슴엔
좋은 가을이 오는데
모두 그리움으로 담아 두면서
사랑의 마음으로 보내드리렵니다.
사랑의 그대 팔월이여
♧ 어느새 온 가을 - 조남명
느지막 여름 가뭄 속에 풀죽은
파란 잎새들에 내려진
새벽 이슬방울을 따라
가을은 어느새 왔습니다
숨 막히는 무더위
있는 문은 다 열고 뒤척이던 여름밤
새벽 창문을 닫는 서늘한 바람을 뒤따라
가을은 들어 왔습니다
목이 쉰 처량한 매미소리를
나지막이 누르는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를 용케도 듣고서
가을은 비집고 왔습니다
높아진 짙푸른 하늘에 떠가는 새털구름을 타고
나날이 더 숙여 인사하는
벼, 수수, 과일들의 진솔한 모습에 반해서
가을은 성큼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여름을 다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 어느새 가을인가요? - 박종영
아주 작은 기쁨의 들꽃들이
문득 은밀한 곳으로 파고들어
푸른 가을을 조몰락거리고 있을 때,
한동안 잊고 지내던 여인이
불쑥 앞을 가로막고
구절초 향기 한 아름 가슴에 안길 때,
산동백 꽃 진자리 부끄러워
풋내나는 열매 추스르다
허리춤 드러내 보일 때,
어느새 거기도 가을인가요?
♧ 가을빛 - 鞍山 백원기
추석이 코앞에 닥치니
벌써 가을인가 보다
여인네와 길을 가다 보면
양산을 펴 고운 얼굴 가리는데
나도 들고 있던 서류봉투로
따가운 햇볕을 가린다
볕은 아직도 여름이지만
바람은 벌써 가을
빛은 여름빛이 완연해도
파고드는 계절은 어느덧 가을
하늘은 푸르고 광활한데
땅 그림자는 진하게 따갑다
한낮이 뜨겁게 끓는 것은
결실을 위한 몸부림
여름빛 고개 넘어 가을빛이 보인다
♧ 가을의 기도 - 필봉 허명
깊어가는 가을엔
죄와 가책을
낙엽처럼 포스스 털어내며
연민하는 구도자이게 하소서
가슴에 노을이 손을 얹으면
요적의 들판으로
고독을 떨치며
가을엔 사랑하게 하소서
모든 고통은
아픔에서 성숙에 이르러
준열한 순리에
피와 땀의 진리이게 하소서
사랑하는 이의 안부를
가을꽃 진자리
영롱히 맺힌 이슬에서
나의 눈빛을 투영하며
한 폭의 동양화에 펼쳐진
가을 초원에
행복으로 머무르게 하소서.
♧ 가을, 너를 부른다 - 가향 류인순
갈색 그리움이 창가에 서성이다
마시는 찻잔 속으로 똑 떨어지고
깊숙이 묻어둔 사연 한 줌
구절초 향기 안고 그네 탄다
풀잎 향기 서린 뒤뜰엔
제풀에 지친 뙤약볕이 힘없이 드러눕고
한여름 내내 실눈 뜨고 있던 귀뚜라미
청아한 선율로 목청 높인다
하늬바람 소풍 나온 하늘가
양떼구름 새털구름 모여
쪽빛 도화지에 하얀 붓 터치로
화려한 그림 솜씨 뽐내고 있다
용을 그렸다가 여우를 그렸다가
미루나무 은빛으로 잠드는 밤
밤송이 달빛 먹고 속살 찌우고
감나무 가지 사이로 지나는
건들바람의 부드러운 애무에
풍요를 꿈꾸는 풋감들이
살짝 볼 붉힌다.
♧ 초가을 느낌 - 박인걸
한낮의 햇살이 여름이라 우겨도
새벽 한기는 옷깃으로 스며들고
매미들 자취를 감춘 뒷산에
풀벌레들 노래만 구슬프다.
지난밤 퍼부은 빗줄기는
한 여름 흔적을 지우고
말쑥하게 피어난 쑥부쟁이가
가을 인사를 하며 웃는다.
석양 깃든 창가에서
노을 빛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까닭 없이 스며드는 외로움이
가슴 언저리를 적신다.
지난 해 이맘때도
오늘 같은 맘이었는데
살아 온 삶이 버거워서일까
가을을 타는 남자여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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