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오라동 산 76번지
25만평의 대지 위에 메밀꽃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사진이 올라와
부랴부랴 카메라를 메고 다녀왔다.
올해 지역주민들 중 넓은 곳에 메밀을 재배해
관광 자원화하려는 생각을 갖고 심었다는데,
이 메밀밭에서 내년부터 축제를 열기 위해
10일부터 프레이벤트를 열 계획이란다.
가산 이효석의 봉평을 무대로 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힘을 빌어
그곳에선 이미 이런 축제를 가진 지 오래지만
메밀 농사는 제주도도 그곳 못지않게 많이 해왔다.
며칠 전부터 벌써 알려져 교통이 혼잡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느라 야단이었다.
다만 햇빛이 나지 않아 빛나는 사진은 아닐지라도
그런 대로 볼만하였고, 구름과 안개 때문에
한라산을 배경으로 찍지 못하는 게 섭섭했다.
그렇지만 주변에 억새가 피어나고
잘 찾으면 가을 들꽃도 많아서 볼만하였다.
벌써 메밀가루로 지지는 제주 고유의 ‘빙떡’도 팔고 있는데
기왕 시작하는 거 잘 준비해 좋은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 메밀꽃 밭을 지나며 - 고재종
누이야, 달빛 한 자락만 뿌려도
서리서리 눈물 떼 반짝이는 이 길을
사나이 강다짐으로 그냥 넘으라는 것이냐
누이야, 잔바람 한 자락만 끼쳐도
마음의 온갖 보석들 싸하니 이는 이 길을
사나이 꺼먹꺼먹 차마는 못 넘겠다.
지나온 절간에서 댕- 울리는 종소리가
한 귀에서 다른 귀로 빠져나가는 순간
영혼의 쇠든 것이 싸악 씻기는 경우였다
그리하여 멧새 몇 마리 뒤척이며
깃에 묻은 이슬 부리는 소리에도
환약 먹은 듯 환약 먹은 듯한 마음 자린데,
누이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나는 더 더욱 명부의 꽃밭은 모르고
이렇게는 메밀꽃밭을 그냥 넘으라는 것이냐
소금 같은 소금 같은 눈물의 보석 일구어
은하수 하늘에다 서걱 서걱 옮기어 놓고
이렇게는 이 가을 차마는 못 넘겠다.
♧ 메밀꽃 - 주근옥
산등성이 고추 밭머리 너머
반쪽 다랑이로 쫓긴 메밀꽃
불쑥 나타난 내 모습에 파르르 몸을 떤다
숨어서 사는 뜻을 뉘 알랴
그래도 발 디디고 서서 하늘 우러를
땅이 남아 있으니 서럽도록 고마울 수밖에
쓰러진 꽃대를 세우면서
배고파 쳐서 먹던 겨울밤의 묵을
애가 없어 쫓겨날 듯한 누이를 떠올린다
인삼밭이 산봉우리를 차지해도
끝까지 버티면서 활짝 웃어제낀 메밀꽃
고추잠자리 떼가 머리 위를 맴돈다
♧ 메밀꽃 - 한상숙
나즈막한 언덕에 하얗게 쏟아내는 포말
은은히 들려오는 노래소리에
나는 한 무리 메밀꽃이 되었네
초록 대지위에 하얗게 펼쳐진 침대
한 마리 나비가 순백색 드레스 입고
빙글빙글 춤추고 있네
삶에 조바심 내던 마음 던져버리고
산과 들로 펼쳐지는 하얀 메밀꽃 향기에
높고 낮은 산들이 화합을 하네
피어나네. 피어나네
온 산이 하얗게 눈부시도록
마음속에 하얀 추억하나 간직하고
♧ 메밀꽃 피는 밤 - 이남일
하얀 메밀밭에
싸락눈이 내려앉는 밤
가을 볕 소금밭이
이보다 더 하얄까.
억새밭 한숨이
이보다 더 차가울까.
차라리 한밤을 기다리다
하얗게 얼어버린
서릿발이었으면 좋겠어.
♧ 메밀꽃 여인 - 김대원(瑞耕)
장미꽃 같이 아름다운 그 모습에
메밀꽃 향기 안고 있는 여인이여
사랑을 덩어리째 간직하고도
구름처럼 떠다니는 여인이여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라면
어찌해 이 사나이 멍들게 하고
미련과 아쉬움에 병들게 하느냐
아름다운 장미꽃 그 얼굴에
메밀꽃 향기 바른 여인이여
내가 너를 그토록 사랑하는데
그대 어찌 나를 잊을 수 있을까?
사랑함으로써 괴로워하고
사랑함으로써 하나 되길 거부하는
여인이여!
위대한 순결을 소중히 간직한
메밀꽃 향기 품은 그 여인이여
더 이상 구름처럼 떠다니지 말으시고
저 꽃처럼 내 집안에 향기 풍겨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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