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
산나물 한 소쿠리와
이틀 밤 고은
곰탕을 싣고
엄마 젖 그리워
더듬어 가는 그믐날
밤길
초저녁잠 많으시어
일찍 주무시란 전갈은
어머님의 발꿈치만
높였나 보다
♧ 눈물
대문을 따라나서시던 어머니가
올 때는 좋은데 갈 때는 너무 서운하다며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며 뒤돌아섰다
메마른 몸 어디에 오아시스를 숨겨 두셨던가?
격하게 역류하는 어머니의 눈물이
돌아오는 발자국을 무겁게 적시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목어의 메아리가 들려왔다
- 아들아! 잘 가
저 멀리 어머니의 야윈 손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 늙은 자동차
몇 달 전부터 배를 움켜쥐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가는 길
더운 공기를 몰아쉬는 에어컨으로
자꾸만 눈길이 가는데
- 차도 늙었나 보다. 미라 손을 보지 그랬니?
어머니의 주름진 목소리가
초복의 등줄기를 시퍼렇게 훑는다
♧ 독립국
모든 인간은 독립국이다
고뿔로 타오르는
애호박 같은 이마에
엄마는 문턱을 낮추며
물수건을 얹었다
결코
물러서지 않는
애잔한 눈길에도
내 고통의 요새는
함락되지 않았다
♧ 서낭당
현관문을 열면
마루 한편에 서낭당이 있다
시나이 산마루에서
고향 가는 오솔길에서
빅토리아*에 사는 아들 집 마당에서
노을이 깊어가는 해변에서
그리고 무명의 시간과 공간에서
가져온
일생의 어머니 마음이다
모양도 볼품없는 돌들이
저마다
샛별처럼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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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벤쿠버 섬에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주도
♧ 옹이
어머니는 내가 상을 타고 박사학위를 받거나 시집을 낼 때마다 눈물을 쏟는다.
- 너에게 정말 미안하다. 다른 것들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나도 형처럼 ○○학교를 가고 싶어’라고 한 말은 잊히지 않는구나.
요즘 들어 점점 기억창고가 무너져 내려 열쇠수리공을 미안하게 만드는 어머니다. 몇 개 남지 않은 어머니의 기억 속에도 40여 년 전 작은 아들의 애절한 눈빛은 옹이처럼 단단해지는가 보다
♧ 허세
아침 햇살을 타고
천리포수목원 가는 길
어머니가 둥근 낮달을 보고 물으셨다
- 달에도 땅이 있니? 얼룩이 있네
“땅만 있어요”
- 뭐가 사니?
“아무것도 못 살아요. 물도 없고 산소가 없어서”
보기에만 좋구나
♧ 연어
가을비를 거슬러
산란지를 찾았다
수리 중인 성당에서
못에 찔려 다리를 절뚝이는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 바순
호두를 내 입에 물리셨다
-바쁜데 뭐하러 내려왔냐?
그런데 네가 있으니 사는 집 같구나
당신의 산란일도 묻어버린
깊게 파인 주름살이
환해지는데
* ‘우리詩’ 9월호 「테마 소시집」에서
-사진은 지금 한창 피고 있는 ‘칡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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