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이산 시인의 '어머니'

김창집 2016. 9. 12. 09:19



어머니

 

산나물 한 소쿠리와

이틀 밤 고은

곰탕을 싣고

 

엄마 젖 그리워

더듬어 가는 그믐날

밤길

 

초저녁잠 많으시어

일찍 주무시란 전갈은

어머님의 발꿈치만

높였나 보다

     

 

눈물

 

대문을 따라나서시던 어머니가

올 때는 좋은데 갈 때는 너무 서운하다며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며 뒤돌아섰다

메마른 몸 어디에 오아시스를 숨겨 두셨던가?

격하게 역류하는 어머니의 눈물이

돌아오는 발자국을 무겁게 적시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목어의 메아리가 들려왔다

- 아들아! 잘 가

저 멀리 어머니의 야윈 손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늙은 자동차

 

몇 달 전부터 배를 움켜쥐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가는 길

 

더운 공기를 몰아쉬는 에어컨으로

자꾸만 눈길이 가는데

 

- 차도 늙었나 보다. 미라 손을 보지 그랬니?

 

어머니의 주름진 목소리가

초복의 등줄기를 시퍼렇게 훑는다

     

 

독립국

 

모든 인간은 독립국이다

 

고뿔로 타오르는

애호박 같은 이마에

엄마는 문턱을 낮추며

물수건을 얹었다

 

결코

물러서지 않는

애잔한 눈길에도

내 고통의 요새는

함락되지 않았다

     

 

서낭당

 

현관문을 열면

마루 한편에 서낭당이 있다

 

시나이 산마루에서

고향 가는 오솔길에서

빅토리아*에 사는 아들 집 마당에서

노을이 깊어가는 해변에서

그리고 무명의 시간과 공간에서

가져온

일생의 어머니 마음이다

 

모양도 볼품없는 돌들이

저마다

샛별처럼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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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벤쿠버 섬에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주도

   

 

 

옹이

 

  어머니는 내가 상을 타고 박사학위를 받거나 시집을 낼 때마다 눈물을 쏟는다.

 

 - 너에게 정말 미안하다. 다른 것들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나도 형처럼 ○○학교를 가고 싶어라고 한 말은 잊히지 않는구나.

 

  요즘 들어 점점 기억창고가 무너져 내려 열쇠수리공을 미안하게 만드는 어머니다. 몇 개 남지 않은 어머니의 기억 속에도 40여 년 전 작은 아들의 애절한 눈빛은 옹이처럼 단단해지는가 보다

     

 

 

허세

 

 아침 햇살을 타고

 천리포수목원 가는 길

 어머니가 둥근 낮달을 보고 물으셨다

 

- 달에도 땅이 있니? 얼룩이 있네

   “땅만 있어요

- 뭐가 사니?

   “아무것도 못 살아요. 물도 없고 산소가 없어서

 보기에만 좋구나

     

 

연어

 

가을비를 거슬러

산란지를 찾았다

 

수리 중인 성당에서

못에 찔려 다리를 절뚝이는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 바순

호두를 내 입에 물리셨다

 

-바쁜데 뭐하러 내려왔냐?

그런데 네가 있으니 사는 집 같구나

 

당신의 산란일도 묻어버린

깊게 파인 주름살이

환해지는데

 


* ‘우리’ 9월호 테마 소시집에서

     -사진은 지금 한창 피고 있는 칡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