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권경업 시집 '동물의 왕국'에서

김창집 2016. 11. 2. 10:25


사람들은 소산을 서정시인이라 국한하여 부르지만,

오랫동안 인터넷에 발표하는 그의 작품을 옆에서 지켜본 나는

그의 시의 소재가 그의 인간관계만큼, 스펙트럼이 넓다고 생각한다.

주로 서정적인 시를 쓰지만 날카로운 세태 풍자시도 그의 장기다.

그는 시사적인 소재를 가지고, 촌철살인 같은 표현으로 독자를 서늘하게 한다.

그런 시는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이때까지 발표한 시집들이 서정적인 소재였다면,

이번에 묶는 이 시집은, 이때까지 소산이 쓴 민중시의 집합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이 시집에 실린 시편들은 뿌리 뽑힌 자들을 향한 연민과,

가진 자들의 허위의식을 꼬집는 풍자와 조롱으로 일관되고 있다.

                                                                                         -전홍준(시인)

    

 

 

별빛만 있어도

어둠 속 환하게 써 내리는 것

사랑이니 그리움이니 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 집어치우고

소리칠 힘도 없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외치는 것

독재와 불의를 엿 먹이는 것

민주와 정의를 찬양하며

더불어 세상 아름답게 읽어가는 것

        

 

 

따뜻함이란 단어의 상상성에 대한,

    -붕어빵들에게

 

너희를, 이 땅에 내 보내려고

멀미 앓는 울렁거림을 속 가득 품고

삶의 불 위에 온몸 던져

세상의 뜨거움이란 뜨거움은

다 맛보고 휘돌아 온 그분의 고통

아직 잊지 않았겠지

 

누군들 다르랴만

제 어미의 배 고스란히 가르고 나와서는

그 곁에 머무는 것도 잠시

채 식지 않은 자신들의 따뜻함을 내세워

뿔뿔이 제 갈 길 찾아 떠난다 할 때도

볼품없는 세간살이, 케케묵은 일간지

혹은 쌀포대 종이지만, 겹겹

너희 어깨 정성스레 감싸주며

아무쪼록 따스함을 잃지 말라던

그 격려의 말씀 어찌 잊을 수 있니

 

처마 낮은 골목 한참을 돌아서라도

작은 봉창 너머 도란도란 불 밝힌 집의

오순도순 정다움 되라던,

마지막 그 당부 차마 잊었겠니

너희를 다 떠나보낸 뒤

어둠이 먹물처럼 배인 쓸쓸함으로

바람 빠진 걸음 절뚝이며 찾아 든

리어카 보관소에서, 이제는

기름때에 절어 굳어가던 몸

벌겋게 녹 슬리고 있다

아마,

더 넓은 곳으로 옮긴다는, 새 거처가

말이 양로원이지

너희들의 관심 밖으로 내팽게쳐 버리는

폐품수집소라는 고물상 한쪽 구석은 아닌지?

        

 

생선 통구이

 

조기나 꽁치 구울 때

배 가르지 않는 것은

은빛 바다 쏘다닌

자유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며

뺏은 목숨에 주검까지 가두는 꼴의

석쇠 사이 넣지 않는 것은

생선을 키워낸, 드넓은

바다에 대한 결례이기 때문, 또는

내장을 통째로 먹겠다는

평생을 품고 온 생선의 바다를

온전히 품고 싶은 때문

 

파도 드센 난바다 알몸으로 헤엄친 생선의

시커멓게 타버린 속

밥상까지 올라온 꽁치와 조기의 내장은 씁쓸하다

차고 맑은 물의 생선이,

속 쓰릴 일 있을까 싶지만, 세상

알고 보면 쓰리지 않은 속은 없다

시인은 그런 쓰린 속을 맛보고

함께 쓰려하고 싶은 것

        

 

 

종북

 

종북, 종북, 그래 종북!

나를 비워 남을 진동시키는,

 

텅 비운 육신 두들겨

이 땅의 지독한 어둠 밀어내고

의로운 가슴, 가슴에 소리쳐

잠들어 있는 영혼 깨우고

남루해진 민족혼 다시 세울 수만 있다면

더덩실 백두대간

어우러져 함께 맞을 신 새벽의

종소리와 북소리

그런 종과 북이 되고 싶다

        

 

소신공양*

 

내 생에 품었던 가장 뜨거운 시()

시퍼렇게 물오른 서른 살 즈음 아닌

퀴퀴하고 누르팅팅하게 변하기 시작한

50 넘긴 초로(初老)

탐스럽게 달아오른 불덩이 하나

쪼그라든 이 가슴 다 태우고, 시커멓게

재만 남긴 숯이었지만, 짐작컨대

백두대간 양지쪽 곧게 자란 참나무였겠지

신기神氣라도 들린 듯 날름대는 붉은 혀

당장이라도 잡아먹겠다던 귓속말

용광로 쇳물이라도 끓게 할

그 불덩어리 위에, 몸 뉘어

야하게 앞뒤 비비꼬던 마른 오징어 꼴의 내가

소신공양 후, 안 사실이지만

콤콤한 것에 동한 참숯의 입덧에

쥐포 소시지 게맛살 어묵 중에서

우연히 내가 선택된 것뿐이라는 사실

한껏 부러움 살 것이란 착각에, 그 뜨거운 불

위에서도 주접스럽게, 사랑하느니 죽고 못 살겠다느니

별별 요상한 소리 다 내던 것, 불쌍하게도

잘근잘근 씹히는 맛의, 기껏

심심풀이 맥주 안주였지만 후회는 없다

가운데 다리부터 시작해서, 좍좍 찢겨

남김없이 다 뜯어 먹히게 해준 그에게

이제 와서야 하는 말인데, 정말 고마워

 

어디, 나만한 보살행도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더 이상 나는, 존재 않는 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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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공양 - 불교에서, 자기 몸을 태움으로써 부처에게 공양하는 일

      

    

 

등불

 

밝히지 마라

그건 어둠에 구멍 내는 일이다

 

백설공주의 잠든 머릿속에

송곳 밀어 넣는 일이다

 

희망 찾아 난바다 헤매는 이들의

별자리 흐리는 일이다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은 기껏해야 걸어 다니는 그림자

잠시 주어진 시간동안

무대 위에서 뽐내고 으시대지만

그 시간 지나면, 영영

사라져버리는 가련한 배우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소음과 노여움에 가득 찬

바보가 지껄이는 이야기”*

 

맥베드의 마지막 대사가 절정일 때

극장의 암막을 찢는 일이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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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섹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 가장 유명한 맥베드(맥베스)의 독백. 권력을 찬탈하고 권력의 유지를 위해 많은 사람을 죽인 맥베드가 자신도 그의 정적에게 목을 잘리는 순간, 권력과 인생의 무상함을 돌아보면서 읊은 독백.

*맥베드 - 11세기 스코틀랜드에 실존했던 인물.

 

 

* 권경업 시집 동물의 왕국’(빛남출판사, 2016.)에서

사진 : 요즘 한창 익어가는 가막살나무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