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입동에 보내는 하늘공원 풍경

김창집 2016. 11. 7. 22:32


셋째 딸 시집보내려고

지지난 토요일부터 어제까지

일주일을 정신없이 보냈다.

 

그제는 서울에서 열리는 피로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시간 맞추느라

쓰레기 더미 위에 꾸민

하늘공원에 들렀다.

 

입동 하루 전인데

아직도 푸른 기가 남았고

억새가 한창이었다.

 

느티나무 잎도 곱게 물들고

주변 풍경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입동 - 이명기

 

바람이 몹시 불어 코끝이 어는데,

빈손 쫙 펴 들고 먼 곳을 배경으로 섰습니다.

다 쓰러진 세상엔 더 이상 흔들릴 것이 없습니다.

거울처럼 잘 닦여진 풍경 속으로 자꾸 얼굴 감추는

길을 갑니다. 이 길 끝에는 드문드문 까치밥이 어는

몇 채의 집과 샛강 건너 돌담을 쌓고,

저물 무렵엔 낮은 지붕 위로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입니다. 몇 남은 잎에 내려온 햇살같이,

기다림이 끓고 있는 곳으로, 이제 한동안

당신을 만날 수 없음을 압니다.



입동 부근 - 송종찬

 

입동이 눈 앞인데 이제야 먼 길을 나서다니

밤나무 잎이 떠가는 냇가에 앉아

협곡을 막 빠져 나온 물살을 바라본다

겨울이 오기 전에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잘게 드러난 주름살 창백해진 손과 발

주술사처럼 강기슭마다 물안개를 피워

사람들이 어찌어찌 살고 있는지 저지대의 안부를 물으며

낮은 목소리로 갈대를 흔들고 지나간다

언제 영어의 몸이 될지 내년 봄까지

어디서 얼음의 제단이 될지

이제야 먼 길을 나서다니

절로 막막해지는 늦가을 그림자 속에서

 

 

입동의 공원벤치 - 권오범

 

성근 각목 등받이에 마음의 각도를

낭만적 분위기로 최대한 맞춘 채

높은 망망대해 구름 따라

자맥질 일삼는 내 마음

 

달력의 계절 음표는 겨울이건만

햇볕이 한여름 같이 머리 어깨 짓밟아

그늘로 피했더니 오슬오슬

빛바랜 팽나무 추억들마저 나를 우수수 덮친다

 

매무새 털고 다시 양지로 옮겨 앉아

잔디밭에 모여 강종대는 비둘기 좇다보니

간기 빠진 내 청춘처럼

어느새 저만치 기울어버린 해

 

북새통인 낙엽에게

허천병 전염되었는지

아까부터 목울대가 공연히 오르내려

돼지국밥에 소주 한잔이 굴뚝같고

     

 

입동 - 김귀녀

 

한낮은 단풍잎처럼 빨갛게

물이 든다

부푼 가슴 다독이며

속으로 갈무리하는

하루는 그녀의 몸 위에 가만히 눕는다

겨울 속으로 가기 위해

재충전하는 아름다운 날

백담사를 오르는 길목엔

수런거리는 가을빛

따뜻하게 달궈진

단풍잎들은 반짝이는 손을 흔든다

어수선하던 마음도

쉴 틈 없이 바쁘던 시간도

아픈 영혼도

단풍잎처럼 빨갛게 물이 든

늦가을의 한낮으로

그녀는 빨려 들어간다

     

 

입동 - 박인걸

 

늦가을과 이른 겨울이 뒤섞인

상수리나무 빽빽한 숲에는

모순되지 않은 조화가 흐르고

아직 가지 끝에 매달린 잎과

바닥에 뒹구는 낙엽들이

묘한 철학을 연출하고 있다.

죽음과 생존의 갈림길에서

거부나 발버둥이 없이

바람이 호명을 할 때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피안의 세계로 춤추며 떠나는

낙엽의 자유가 경이롭다.

만삭의 구름이 신음하며

차가운 눈물을 뿌릴 때면

연약한 쑥부쟁이가 비틀거리고

늦깎이 야생화가 당황하지만

야무지게 서 있는 굴참나무는

당당하게 겨울로 걸어 갈 자세다.

떠나는 존재와 남아있는 존재

버려야 할 것들과

간직해야 할 것들을

자신들의 결심에 따라 움직이는

대자연의 섭리가 경이롭다.

     

 

입동 - 박종영

 

기나긴 밤 못다 한

숨겨놓은 이야기가

반짝거리는 따스한 아랫목,

 

뒤란 대숲 이는 바람에도

교교한 달빛 장지문에 스치는 소리

그리움 솔깃하고,

 

장독대 오동잎 한 개

, 떨어지는 울음으로

겨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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