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징검다리 연휴 마지막 날입니다.
이번에는 잘 조정하면 5일간의 여유가 있어서
가족끼리 모여 제법 많은 시간 동안
정(情)을 나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북으로 나뉜 이산가족
70년이 지나도 만날 길이 요원합니다.
이제 헤어진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돌아가시고 나면
그 후손들끼리라도 만날 날이 올까요?
요즘 여기저기에서
평생 서로 못 만나도록 정해진 상사화만
그리움으로 빨갛게 불탑니다.
♧ 상사화 2 - 여울 김준기
-꽃무릇 전설
술래야, 슬픈 술래야
선혈이 낭자한 알몸으로
사랑 찾아 곤두박질하는 술래야
깨물고 깨물어서 야위어진 연두 빛 여린 목
주홍 면사포가 눈부셔
차마 뜨지 못하고 내려감은 속눈썹
잡힐 듯 잡힐 듯
임은 초록 망사 치맛자락 노을처럼 끌며
겨우 한 발짝 앞서 걷는데
술래야, 슬픈 술래야
쫓아가고 달아나고 다시 쫓겨 가는 술래야
진주홍 면사포에 이슬이 마르면
금방 또 금방
초록 망사치마를 입을 수 있겠지
내일도 끝나지 않을 술래야
오늘도 그리움으로 타오르는 너
이제 지쳐 쓰러질 술래야
그래도 넌 다시 그리움으로 일어설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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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무릇 ; 학명은 석산, 꽃무릇은 흔히 상사화라고 불리는 꽃 가운데 하나. 잎과 꽃이 서로 다른 시기에 피어 함께 만나지 못해 잎은 꽃을, 꽃은 잎을 그리워한다는 상사화란 꽃말이 붙여짐.
♧ 꽃무릇 피는 산사(山寺)에서 - 김정호
물 비늘같은 푸른 안개
산부리를 덮을 때
깊은 산사(山寺) 법고(法鼓) 소리 들려오면
소녀의 초경처럼 피어오르는
저 꽃들의 현란한 탄생
저렇게 붉은 함성이
깃발처럼 일어선 자리아래
푸른 향기 가녀린 잎으로 일어선다
이승의 사랑조차 죄가 되어
하늘 끝에 사무치다
꽃으로 다시 태어나도
눈빛 한 번 맞출 수 없는 운명
남 몰래 꽃눈물 번지는 가슴앓이
다음 세상에는 이런 어긋난 사랑도
거슬러 올라가는 강물의 숙명처럼
그대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그 때에는 숲 속에 바람 집을 짓고
네 사랑
목숨처럼 지켜주고 싶다
♧ 꽃무릇 - (宵火)고은영
내 가슴에 그대가 심기운 날부터
몽환에 이른 서늘한 달빛에 넋을 태우다
망각의 강도 건너지 못하고
안개 덩굴로 정적을 여는 숲
다홍 빛 기다림으로 서있었다
나는 그대를 만날 수 없는가
정녕 가벼운 눈 인사조차 허락되지 않는
충일한 고독으로 홀로서면
사랑은 나를 모른다 도리질했다
사랑의 조건은 영원한 이별로 밖에
설 수 없는 그대와 나의 지극한 형벌인가
그대를 구애하면서도
천년이고 만년이고 어긋난 길로
지나쳐야만 했던 운명 속에
세속도 모르고 살았건 만
나의 눈물은 기화(氣化) 되어
사뿐히 하늘 위를 날다가
저 높은 나무 꼭대기에 앉아
지나는 바람에 그리움을 물었다
♧ 꽃무릇 - 안수동
잡은 손 놓으신 날
끈 끊어진 연鳶이 되고서야
저도 어미가 되더이다
어머니
당신을 여의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통한이 되고서야
살가운 딸이 되더이다
어머니
당신 가신 꽃자리에
이슬로 고인 녹색 그리움을 마시며
상사화는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바람도 볼 수 없는 설움에
꽃잎만 마냥 흔드는데
갈래
갈래로 찢어진 갈래꽃
꽃무릇이여
불효한 여식의 삼베 적삼을
핏빛으로 물들인
사모의 꽃이여
♧ 꽃무릇 - 강려후
난
널 알지 못한다
널 보지 못한다
멀리서 들었다
멀리서 보았다
너에 관한 많은 얘기들
아마 내가 널
깊이
알게 되고 보게 된다면
머리에 꽂을 것 같다
널
내 안에 들이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
번뇌는 그만 할란다
내게로 오지 마라
♧ 꽃무릇 - 박종영
꽃무릇 너,
상사화 흉내 내듯
온통 붉은 울음으로 그리움이다
그냥 임을 가늠하고 솟아올라도
꽃대는 푸른 잎 감추고 너를 이별하고,
네 생애 단 한 번도
찬란한 얼굴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 슬픔으로
붉은 눈물 뚝뚝,
지상에 흩뿌려 한이 되것다
오늘도 강산은 핏빛이네,
하늘빛 싸리꽃 너머
흔들리는 억새 춤을
불타는 네 가슴에 안겨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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