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산림문학' 여름호의 시들

김창집 2017. 7. 12. 09:45



계곡에서 - 김귀녀

 

계곡을 오른다

 

참매미가 운다

빈손으로 찾아간 나에게

물은 소리를 건넨다

 

먹잠자리가 날아온다

꼬리를 물속에 담갔다가 꺼내길 서너 차례

그리고 날아간다

피라미들이 꼬리를 흔든다

 

물웅덩이를 본다

내 어린 시절 물장구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래 그때, 그 소리도 있었지

 

시원한 계곡물에 지그시 손 넣어본다   

 

 

자귀나무 사랑 - 김금용

 

지구가 둥글어서 반밖에

보이지 않는 세상 저편 하늘가

먼저 가 있을 너를 찾는다

불을 크게 지피면 볼 수 있을까

너는 늘 한 발자국 뒤에 있어서

가슴으로 밀쳐 내지 못했다

 

세상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자귀나무

전하지 못한 말씀들을 대신 껴안고

사유 밖으로 붉은 꽃그늘을 던지는 너

지나온 길 안개 속인 듯싶어도

돌아보면 투영되는 맑은 개울물 시간들,

흰 광목 보자기로 단단히 묶어둔

질긴 기억으로부터

이제 너를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나날이 푸르러지는 한여름 길목에

그리움 따위 자나가는 바람이라 하고

   

 

 

느티나무 - 김종호

 

떠날 수도 없으면서

떠나는 꿈을 꾸고

오지도 않을 누군가를 기다린다

 

바람이 스치면 함께 떠나자

할까봐 화들짝 놀라고

아침 안개가 짙게 낀 날이면

안개 속 헤치고 누군가

올 것만 같아 가슴 두근거린다

 

밤이면 무수한 별들이

어서 오라 손짓하여 잠 못 이루고

어느 땐 옅은 소금 냄새 낀

바람까지 마음을 흔든다

 

우두커니 저 오솔길 바라보며

누군가 오실까 기다리며

아침이 되면 가방 하나 싸들고

떠나는 꿈을 꾸곤 한다

 

떠나면 누구를 만나는지도 모르면서

기다리는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매일 떠나고 기다리는 넌 내 마음의 느티나무

     

 

유월 숲속 아침 산책길 - 박일소

 

아침은 새소리로 와서

희뿌연 안개 속에

너울을 펼치고 있다

 

누워 자던 풀잎이

이른 잠에서 깨는 아침

홀로 걷는 산책길에

발위에 이슬이 앉는다

 

밤새 논을 갈던 머슴새도

휘바람새가 불던 휘파람소리도

딱따구리 나무찍는 소리에 묻혀

G장조로 깊은 산의 정적을 깬다

 

원시로 돌아가

꿈과 낭만을 추던 애증

아스라한 꿈속으로 밀려가고

신선한 사랑으로 하나 가득 품은

산의 정기로

신은 자연을 빗질하며 안겨준다

 

풀잎으로 누워 자던

그리움이여

밤꽃향기에 잠 못 들던 여인의 옷깃에

이른 아침 숲속은

불나방 앞장 세워

오늘을 또 연다 


 

 

천태산 은행나무 - 윤준경

 

천태산 오르는 길에는

천살 먹은 어르신은행나무가 있네

몸에는 누대의 인생길

시난고난 붉은 얼룩이 있네

고난이 있어 인생은

살아 볼만하다고

속절없이 허리가 휘셨네

 

눈물이 아니었다면

어찌 황금사리를 품었겠는가

바람이 아니었다면 어찌

굳센 뿌리를 가졌겠는가

 

나무는 오랜 상처를

훈장처럼 드러내고

잠시 쉬어가라고

열두 폭 노란 융단을 펼치시네

     

 

대나무 - 장찬영


바람결 두드리는 울림 두려워

마디 마디 분단된 매듭지어

한자리에 지켜 곱게 서 있다.

속이 텅 빈 따뜻한 상처

오래도록 가슴에 품은 채

옹골찬 뼈의 마디만 추스려

단단하게 겉 문신 새기는 세월.

그 끝으로 뻗은 푸른 기상

빗금 긋듯 바람결에 쓸려도

쉽사리 쓰러질 줄 모르고

골수의 살 모두 빼 버린 채

곧게곧게 하늘 향해 오늘도 키 높인다.


      * '산림문학' 2017년 여름호 시(통권 26호, 사단법인산림문학회 간) 중에서

                      * 사진 지난 일요일 한라산 숲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