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나뭇잎에 새기는 여름

김창집 2017. 7. 24. 16:28



제주 75년 만의 폭염

도민 여름나기 비상

 

오늘 아침

제주일보’ 1면에 난 기사 제목이다.

 

어제는 더위도 피하고

운동량을 확보하면서

땀도 좀 흘리자고

한라산 남쪽 숲길을 걸었다.

 

마침 꽃이 없는 시기라

숲은 짙푸른 초록으로 덮였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그리 시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숲을 한껏 걷다 돌아온 시가지는

꼭 한증막으로 들어서는 기분,

아무리 전기요금 폭탄이 무서워도

잠을 자려면 에어컨을 켜야 했다.

폭염특보와 열대야의 연속이다.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1 - 박상천

 

나도 밤나무가 너도 밤나무에게

너도 밤나무냐고 물으면

너도 밤나무는

나도 밤나무라고 대답을 한다.

너도 밤나무가 나도 밤나무에게

너도 밤나무냐고 물으면

나도 밤나무는

나도 밤나무라고 대답을 한다.

 

너도 밤나무는 나도 밤나무에게

나도 밤나무냐고 물어야 하는데

너도 밤나무냐고 묻고

나도 밤나무가 너도 밤나무에게

너도 밤나무냐고 물어보면

너도 밤나무는

너도 밤나무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나도 밤나무라고 대답을 하고 만다.

질문과 대답이 기묘하게 엉키고 마는

너도 밤나무 나도 밤나무?

나도 밤나무 너도 밤나무

   

 

 

분단나무 - 김승기

 

남쪽에서 살래요

북쪽으로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지만

오라고 손잡아 끌어도 가라고 등 떠밀어도

지금은 분단시대, 가지 않을래요

70년을 넘게 남북으로 갈라져 아웅다웅

유일한 분단국가

이 꼴 저 꼴 모든 꼴 다 보기 싫어

육지에서도 멀리 떠나 제주도나 울릉도쯤

외딴 섬 후미진 숲속에서 살래요

뭍에서 들려오는 온갖 잡소리는 모두

귀 막고 눈 가리고,

오직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만 들을 수 있는

귀 하나 반쯤 열어놓고

해와 달이 뜨고 지고 별 반짝이고 구름 흘러가는

하늘 바라볼 수 있는 눈 하나 살짝 열어놓고

철학하는 면벽수련으로

오고가는 세월 견디고 있을래요

가끔은 무료하다 싶은 날

벌 나비 유혹하는 농지거리나 하면서

그렇게 한 세상 흘러 보내다 보면

갈매기 물어 나르는 편지 속에

남북통일 소식 함께 담아 오겠지요

그때 가장 먼저 달려가 방방곡곡 하얗게

청정무애의 꽃등불 밝힐래요

지금은 남쪽 외딴 섬에서 그저

꽃으로 앉아

한 세월을 낚는 일밖에는

다른 아무것도 할 일 없어요

   

 

중복中伏 - 안재동

 

매연으로 시꺼메진 가로수들

도시의 거리를 더는 지키지 않겠노라!”

숨쉬기조차 힘든 나무들의 반란이다

빌딩 숲도 이글대는 태양광으로부터

도시 사수를 포기하고 만다

 

중복中伏은 용광로보다 뜨거운

갑옷을 입는다

불칼을 잡고 철길이며 아스팔트며 호수며

크고 작은 산들까지도

사정없이 유린한다

 

습기와 열로 누근누근해진

어느 생명보험회사의 간판 옆

벽시계의 초침이 멈춘다

웃음 잃은 사람들 여름이 길다

   

 

 

여름나무 - 오보영

 

바라볼 수 있는 네가 있어

복되다

함께 하는 너 덕분에 기쁘다

 

너로 인해

세상일

다 잊어버릴 수 있어서 좋다

네 품에서

쉼을 한껏

누릴 수 있어서 좋다

 

흐트러진 맘

다시

다독일 수 있어서 좋다

 

흐려진 눈

다시

맑게 할 수 있어서 좋다

 

넌 언제나

 

품어주니까

 

같은 맘으로

 

반겨주니까

     

 

일어나거라 - 이향아

    -아들에게 2


일어나거라

말 달리고 싶다던

요술 같은 아침

지평선을 바라보면

종소리가 들린다

 

웅덩이 건너면 여우굴이 있느니라

여우굴 지나면 칡덩쿨이 있느니라

잊어버리고 가다가 가다가 보면

소망으로 헐떡이는 낮은 평야와

바다에서 솟아오른 산맥이 있느니라

삼동네 파다하게

아들 낳던 그 소문

소문 먹고 무성한 여름숲이 있느니라

 

망설이지 말고 일어나거라

날마다 큰길로 떠나는

나의 아들아

우뚝우뚝 낯설게

크는 아들아

   

 

, 떠나네 떠나가네 - 박종영

 

, 떠나네,

새벽 안개 두런거리는 귓속말 들으며

둥싯한 마음 접고 황망히 떠나가네,

 

햇살 따라 더욱 뾰쪽한 청단풍,

곱게 분칠하고 요염떠는 저토록

달콤한 몸놀림,

누구에게 빼앗기랴 싶어 눈 부라리며 떠나가네,

 

세상 어느 날인들

소소하게 흔들리는 물소리 바람 소리

가까이 두고 살아갈 것이라,

 

푸른 어둠으로 사랑이 고르게 모아지는 날,

고개 넘어 순단이

단감빛으로 익어가는 젖가슴,

그리움에 콩콩거리고,

 

밟아도 일어서는 새벽이슬 툭툭 걸어간 자리,

훠이훠이 옷자락 참방거리며

, 가을 숲으로 떠나가네.


  * 사진 위로부터 쪽동백나무, 나도밤나무, 분단나무, 황칠나무, 굴거리나무, 쪽동백나무, 사람주나무, 당단풍나무